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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03. 2021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3

겨울의 초입까지, 잠시만 안녕

1.

출근을 하지 않은 지 3일째다. 생각보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본격적으로 수험 생활에 돌입하기 위한 밑 작업을 이래저래 하다 보니 어느새 금요일이다. 실업 급여를 신청해 놓고, (건강이 무너져 공부를 못 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하여 첫 번째 수업을 듣고, 전공 서적과 필요한 자료를 새롭게 구매하고, 무사히 그리고 정말 열심히 6개월간의 근무를 끝마친 내 자신에게 (행운의 상징이라는 '돌고래 꼬리' 모양의 목걸이를 포함하여) 스스로 선물도 했다. 그 선물이 너무 많았다는 게 문제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모교 도서관에서 슬슬 공부를 시작해 보고도 왔다. 그러고 나니 집에 와서 이번 달의 '그 날'이 시작되었다. 어쩐지 도서관에서 유독 졸음이 쏟아지더라니… 딱 좋은 핑계다! 주말이 지나고 다음 주부터 마음 편하게 공부하라고 내 몸이 나를 배려해 주는 것일까. 어쨌든 나는 아직까지 변화를 앞둔 나에게 적응 기간을 주고 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2.

앞으로 몇 달간은 임용 시험과 관련된 책들만 볼 것이 자명한 만큼, (남은 올해 내가 읽게 될 책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부정적인 전제하에) 이번 여름까지 내가 읽었던 단촐한 책들 중 개인적으로 좋았던 책 세 권을 읽은 순서대로 소개해 볼까 한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1)  ⟪2인조 :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이석원/달)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이석원 작가의 산문집을 꽤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 이석원 작가의 작품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쩌다 그의 책 한 권을 읽게 된 이후(아마 그 유명한  ⟪보통의 존재⟫였던 것 같다) 신작이 나오면 꼬박꼬박 찾아 읽고는 했다. 책이 너무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갈수록 그의 책이 더 좋다고 느꼈다. 독자마다 호불호는 달랐겠지만.

   그러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을 그만 깜빡 놓쳤더랬다. 그랬던 것을, 나의 선물로 이석원 작가를 알게 된 한 선배가 이 신작 얘기를 하는 것이다. 속으로 '아차' 하고는 돌아와 바로 책을 검색하고 주문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책이 얼마나 빨리 내 수중에 들어왔겠는가. 그런데 나는 어쩐지, 이 신작을 읽기 전 조금 머뭇거렸다.

   그동안 나도, 이석원 작가도 모두 나이가 들었다. 나는 아주 잠시, 변화한 내가 변화한 작가님을 이해할 확률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요즈음 작가님의 고민과, 삶을 대하는 방식에 공감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아직은 이 작가님의 글이 오롯이 나에게 와닿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리라. 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작가님을 부담스럽게 하는 독자의 욕심인가.

   이석원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잘 지내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평은, 책을 읽고 난 다음 내가 속표지에 남겨 놓은 글귀를 통해 대신하기로 한다. 그 희박한 가능성 속에서도, 이번에도 결국, 이석원 작가의 책은 내 삶과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좋아하는 작가의 다음 책을 읽는 것은 기실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나와 그의 삶의 궤적이,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치관과 사고의 변화가 과연 여전히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을지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므로.
그 두려움 끝에 기적같이 다시 한 번, 거슬림 없이 읽어 낼 수 있음에 기뻤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나'를 사랑하는 삶이 펼쳐지기를.

2021. 7. 28.(수)
1학기 기말고사 직전에 다 읽어 놓고,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후 쓰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진즉 한 권 더 사 두었다. 만나려던 계획이 몇 번이나 어그러져 결국 보지 못하였던 나의 P에게, 당신의 책은 이미 여기 있음을.



(2)  ⟪다정한 무관심⟫ (한승혜/사우)

사실 나는 워낙 독서를 편식하는 사람이라,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어야지' 생각하면서도 잘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내 기억이 맞다면, 위에서 언급한 ⟪2인조 :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를 구매하며 신간을 살펴볼 때였던 것 같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 책은 첫 장부터 끝 장까지 납득 안 되는 부분 없이 읽혔던 신기하고도 귀한 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화두에 대해 섣불리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잘 전달할 만한 능력이 되지도 않지만. 이 책의 내용은 꼭, 한 줄 평이나 요약된 내용만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한승혜 작가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해해 보셨으면. 이 작가님의 프롤로그 ⟨우리는 모두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의 일부 내용을 (조금 길게) 여기에 제시하는 것으로 추천의 글을 대신하기로 한다.

(…) 개인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가 국가나 사회 등의 집단보다 우선이라 생각하며, 개인을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사상, 사고방식, 가치관, 신념, 태도, 기질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개인주의는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와 대립되는 사상이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그 무엇보다 존중하는 태도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비슷하기는커녕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기주의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개인주의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과 동등한 존재, 똑같은 욕구를 지니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한 까닭으로 개인주의자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오히려 공동체를 소중히 여긴다. 공동체를 개인의 대립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오롯이 개인인 상태로 머물게 하는 일종의 보호막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는 집단과는 다르며, 개인주의자는 연대의 중요성을 안다. 집단의 규칙이기에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서 다른 개인과 연대한다. 타인도 자신처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타인의 욕구와 감정 또한 자신의 것만큼 중요시 여긴다. 자신의 권리가 소중하기에 그만큼 타인의 권리도 존중한다. (…)
   (…)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끌고 온 것은, 우리 모두에게 바로 위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지키며, 간섭과 참견을 하지 않는,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적당한 무관심의 사회. 그러면서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는, 서로에게 다정한 사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다정한 무관심'이 아닐까.
   물론 '다정한 무관심'의 태도를 갖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내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끊임없이 개인주의와 다정한 무관심을 '연습'하며 익혀 나가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러한 태도가 나와 세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내가 좀 더 나다워질 수 있고, 동시에 타인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으며, 나에게 주어진 이 길면서도 짧은 생이 좀 더 의미있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한 명의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라며, 사랑과 용기를 담아.

2021년 6월
한승혜

- ⟪다정한 무관심⟫의 프롤로그(5~19쪽) 중에서 일부 발췌

   


(3)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창비)

이 책을 감히 이렇게 소개해도 될까?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가 코로나 상황을 문학적으로 이겨 내는 법'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편지 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각각의 편지 끝에는 특정한 과거의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는데, 정말로 그 시간과 장소에서 해당 편지가 쓰인 것은 아니다. 다만 김민철 작가님은 그때의 상황과 감정에 충실하게 몰입하여 때로는 친구, 때로는 가족, 때로는 외국에서 잠깐 스친 귀한 인연들에게 편지를 쓴다. 중간중간 수록되어 있는 사진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조성해 준다. 김민철 작가님은 프롤로그 ⟨먼 시간, 먼 곳에서 부치는 여행⟩에서 독자를 향해 이렇게 말을 건넨다.

(…)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의 오롯한 진심을 고이 접어 고스란히 당신 손에 쥐여주고, 과거의 따스한 온기 앞에 지금의 저를 데려다 놓고 싶었어요. 그곳의 공기와 햇살과 바람과 미소와 나무를 잊지 않도록. 여행이 사라진 시간에도 우리의 여행이 계속되도록. 편지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어요. 부풀어 오른 마음도, 절박한 마음도, 그리운 마음도, 전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도 편지에는 빼곡하게 담을 수 있으니까요.
   먼 곳으로부터, 먼 시간으로부터 당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 덕분에 우리가 잊지 못하는 그때의 우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면 그것만으로 저는 다정한 답장을 받은 기분일 거예요.

-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의 프롤로그(11~14쪽) 중에서 일부 발췌

   사실 나는 20대가 된 이후로 여행을 갈망한 적이 잘 없어서인지, '여행을 권하는 느낌'을 주는 책을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기피해 왔다. 그런 책을 읽으면 어쩐지 내가 비정상인 듯 느껴질까 봐, 혹은 젊은 시절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며 꾸중을 듣는 느낌일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그렇지만 이 책은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가 사랑하는 그 시절의 내가 있고, 그 시절 속 나에게는 그 시절 안에서 사랑했던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떠올렸던 어떠한 순간이 존재한다. 이 책은 각자의 그 순간을 소환해 준다.

그 순간에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생각하셨습니까?


3.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근무 마지막 날이었던 8월 31일에 나는 완성된 학교 신문의 최종본을 교장 및 교감 선생님들께 전달해 드리며 학교에 안녕을 고했다. 어쩐지 나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출판사를 퇴사하였던 2015년의 8월 31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날도 나는, 작업하던 책의 최종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고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2015년의 8월 31일로부터 딱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나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 되었고, 나는 분명 직종까지 바꾸었는데, 어쩐지 묘한 기시감이 드는 하루였다. 주변 상황이 바뀌었어도 나라는 사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인가 싶어 어쩐지 씁쓸하면서도, 그 덕에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할 만큼 했다 싶으면, 그래서 후회가 남지 않으면, 그러면 된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에도 딱 그만큼만 열심히 살아 보려고 한다. 시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겨울의 초입까지 모두들 무탈하시기를, 소소하고도 확실하게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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