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콘텐츠는 2019년 한국관광공사 둘레길 취재여행 의뢰 후 작성된 여행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자연을 다듬어서 자리를 만드니, 형님 마중하고 배웅하기 위함이로세. 기쁘고 정겨워라 물소리 졸졸, 이별이 아쉬운 듯 봉우리 우뚝 섰네. 냇가 안영협에 나뉜 그림자, 소혼교 다리에서 애태우며, 평안히 넘으소서 험한 고갯길, 내년 다시 오실 약속 지키옵소서.”
퇴계 이황 선생이 친형인 온계 이해 선생에게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해 지어진 시. 그리고 이 시의 배경이 된 장소이자 누군가 에겐 그리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오르던 이 길.
이번 여행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 선조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옛길. 소백산 자락길 제03코스로 정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기차안에서 일출을 보게되는구나.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질릴거 같았는데…’
누구에게 하는지 모르는 혼잣말을 무의식에 중얼거려본다. 소백산맥 그리고 옛길… 누구보다 발품을 파는걸 좋아하고 사진을 찍는것을 좋아하지만 이런 나에게 옛길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언제나 흥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옛길은 안맞을 거란 생각이 앞서서 그럴까? 기차안에서 일출을 보며 오랜만에 기대감이 아닌 궁금증만 가득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희방사 가요. 희방사!”
역 앞에서 열심히 손님을 맞이하는 택시기사의 목소리. 이내 다른 손님을 태우고 유유히 목적지를 향해 달려한 후 희방사역은 고요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이들이 떠난 곳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백산 자락길 03코스 죽령옛길의 출발점이었다.
소백산 자락길 03코스 죽령옛길 이야기
죽령옛길은 신라 이사금5년(158년)에 죽죽에 의해 개척되어 영남지방과 영서, 경기 지역을 이어주던 유래깊은 옛길로서 2007년 명승 제30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이 길은 추풍령, 문경새재와 더불어 영남 3대 관문 중 하나로 많은 선조들이 이 길을 지나곤 했다.
이곳은 삼국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로, 과거응시를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는 선비들 그리고 물자교류를 위해 상인들이 많이 이용하면서 주막들이 성행했었다.
일제강점기에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죽령 옛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적어지자 주막도 없어지고 현재의 울창한 숲길로 남아있게 된 죽령옛길. 지금은 트래킹을 즐기는 여행자들만이 찾는 이 길을 걷다보면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는 각자의 목소리가 이 길목에 묻어나오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조그마한 오르막길을 계속해서 걷다보니 산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산속엔 아직 봄이 찾아왔음에도 겨울을 앓고 있는 흔적이 가득했다. 다른곳은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피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곳은 아직 봄이 오지않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죽령옛길을 올라가다보면 곳곳에 죽령옛길의 역사와 여러 이야기가 담긴 팻말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현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기에 죽령옛길의 역사속에 담긴 선조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놓은 흔적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한번씩 다 읽어본 후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많이 걷던 죽령옛길엔 여러 역사적 배경과 설화가 전해지고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왜구가 죽령을 넘어 단양 일대의 문화재와 물자를 수탈해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이 길을 통해 문화재와 물자를 수탈하였고,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목재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의 소나무를 베어간 아픔이 남아있는 옛길이다. 그리고 이곳엔 또다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죽령의 산신 ‘다자구 할머니’
죽령에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자 자연스레 도적들이 생겨나 약탈을 일삼자 마을 수령의 고민이 커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도적들에게 아들을 잃은 한 할머니가 수령에게 고하길
“내가 도적 소굴로 들어가
‘들자구야’ 하고 외치면 기다리고,
‘다자구야’ 하고 외치면 도적들이 모두 잠든 것이니”
그때 도적을 잡으라고 알려줘 결국 이 도적들을 모두 소탕하게 되었다. 이후 마을 수령이 할머니를 찾았으나 홀연히 사라지고 없어 이 수령은 다자구 할머니의 은혜를 기리고자 죽령(충북 단양군 대각면 용부원리)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다자구 : 다 자고 있다. / 들자구 : 안(덜)자고 있다.)
소백산 자락길은 소백산맥을 가로지르며 올라가는 코스다. 처음엔 우리 선조들이 왜 안전한 다른 길을 놔두고 굳이 위험한 이 길을 선택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조사를 해보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소백산 자락길, 특히 죽령옛길은 예로부터 한양과 경상도를 잇는 최단 경로로 알려져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해도 이 험한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10년대까지만 해도 사시사철 번잡했던 길이었다고 한다.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는 선비, 봇짐과 행상을 차고 힘들게 걷는 보부상, 고을에 부임하는 관리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하며 숨 가쁘게 걸었던 이 길엔 천년이 넘는 세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죽령옛길 주막
한참동안 산길을 걸어 올라가니 나오는 쉼터. 안내문을 읽어보니 죽령옛길 주막이 있었던 자리였다.
보통 주막은 사극을 통해 접하게 되는데 보통 주막은 시골 길가에서 밥과 술을 팔거나, 돈을 받고 나그네를 묵게하는 집으로 묘사가 된다.
죽령은 옛날 경상도 북부지역과 한양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많은 사람이 왕래하던 길이었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주막에서 묵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큰 고개나 나루터에는 주막이 있었다. 이런 주막들이 있는 길거리를 ‘주막거리’ 라 불렸는데, 죽령에도 주막거리가 많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에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죽령옛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니 주막도 없어져 현재는 작은 터만 남게되었다. 희방사역에서 쉬지 않고 올라왔기에 이곳에서 잠시 물을 마시며 쉬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적한 공간이 되었지만 과거엔 사람들의 활기가 넘쳤던 주막터를 바라보며 그때의 모습은 어땠을까 잠시 상상을 해본다.
죽령옛길에 전해 내려오는 퇴계 선생과 온계 선생의 애틋한 형제애
퇴계 이황 선생은 친형인 온계 이해 선생이 고향인 예안(지금의 안동)을 오갈때 이곳 죽령에서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마중하고 배웅하였고 전해진다. 당시 퇴계 선생은 형 온계 선생과 헤어지기 전에 석별의 정을 나누기 위한 장소로 동쪽에 잔운대를, 서쪽에는 촉령대를 만들었으나,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이곳 잔운대와 촉령대에서 퇴계 이황 선생과 온계 선생이 나눈 시를 통해 애틋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어 그 안타까움을 대신할 수 있다. 퇴계 선생과 온계 선생의 형제애를 담은 시를 한번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퇴계 이황
자연을 다듬어서 자리를 만드니,
형님 마중하고 배웅하기 위함이로세.
기쁘고 정겨워라 물소리 졸졸,
이별이 아쉬운 듯 봉우리 우뚝 섰네
냇가 안영협에 나뉜 그림자,
소혼교 다리에서 애태우며,
평안히 넘으소서 험한 고갯길,
내년 다시 오실 약속 지키옵소서
온계 이해
어느덧 서산에 해는 지는데,
술자리가 끝나도 다리에 서성거리네,
구름도 산도 분명 내 말 들었으려니,
내년에 다시 올테니 기다리게나.
다시 옛길을 오르니 나보다 앞서 길을 오르던 등산모임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은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던 내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 툭 던진다.
“젊은양반. 혹시 방송일 같은거 하는거야? 열심히 찍네.”
“아. 방송일을 하는건 아니구요. 그냥 사진 찍는것을 좋아해서 카메라를 놓을 수 없네요.”
이후 짧은 대화를 나누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죽령전망대를 거쳐 죽령마루에 이르게 되었다.
죽령마루는 영주시와 단양군,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사이에 위치해 있는 높은지대다. 이곳에선 소백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드라이브를 하는 사람들이 잠시 이곳에 멈춰 소백산맥의 절경을 감상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 초행길이나 등산객들은 죽령옛길을 올라갔다가 다시 희방사역(소백산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호하는데 나는 소백산 자락길 03코스 전체를 걷고 싶었기에 죽령마루에서 소백산맥의 절경을 감상하고 다시 길을 걷기로 한다. 중간 휴게소 그리고 작은 가게에서 파는 도라지, 마, 꿀을 섞은 음료수를 구입해 마시는데 죽령옛길을 오르며 조금 지친 나에게 이 음료는 아주 달달한 보약 같았다.
죽령 옛고개마을
죽령마루에서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오면 보이는 작은 마을. 현재 죽령 옛고개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본래 단양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때 장림역에 딸린 원이 있어 용부원이라 하였다.
본디 용부원은 한 개 부락이었으나 1967년에 행정편익을 위해 용부원2리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락길을 걸으며 바라본 죽령 옛고개 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뭉쳐 사는 마을이 아닌 소백산맥 자락 곳곳에 넓게 퍼져 살아가며 각자의 터전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나와서 담소를 나누거나 일을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나름의 소박함을 볼 수 있는 마을이다. 마을을 지나면서 여러 갈림길이 나오는데 곳곳에 이정표가 잘 배치되어 중간에 길을 잃을 일은 없을 듯 하다.
희방사역에서 죽령마루까지는 해발 695m 높이의 산을 오르는 조금 힘든 오르막길 이었다면, 죽령마루에서 도착지점인 당동마을 까지는 천천히 내려가며 소백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길이 펼쳐져 있다. 아직까지는 겨울을 앓은 흔적이 남아있지만 조금 날씨가 따뜻해지고 봄의 흔적이 가득해지는 때가 되면 이곳 소백산맥도 푸른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옛날 선조들이 한양으로 걸어 올라가던 길목. 현재는 소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중부고속도로와 국도 그리고 기찻길이 어우러진 길이 바뀌었다. 이곳 역시 세월의 변화를 받아들여 옛 선조들이 걸었던 산길은 찾기 어렵고, 대신 차와 오토바이가 풍경을 만끽하며 질주하는 드라이브코스로 바뀌었다. 길을 걷다 문득 죽령역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 잠깐 코스를 벗어나 죽령역의 모습을 바라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소백산 자락길의 도착지점인 당동마을. 둘레길 여행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당동마을의 소박한 모습을 감상한다. 이후 당동마을 정거장에서 단양 버스를 타고 단양 시내로 가서 여행을 마무리한다.
당동마을에서는 농어촌버스 외 다른 교통편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택시도 호출이 잘 안되는 곳이 당동마을이다. 그리고 단양 농어촌버스는 배차간격이 긴 것은 물론 일정하지 않기에 오래 기다리게 될 것 같으면 단양버스 사무실(043-421-8800)에 문의하는 것을 권장한다.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밟으며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소백산 자락길. 비록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은 아니지만 소백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 충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나중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난 또다시 이 길을 생각하고 또 찾게될 것 같다.
[필수 정보]
걷기 여행 코스 : 죽령옛길 - 용부원길 – 장림말길 까지 이어린 소백산 자락길 03코스는 총 11.4km에 달하며, 약 3시간 30분 소요됩니다. 중간 휴게소와 화장실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되어 있고 이정표도 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해 쉽게 걷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 입니다.
둘레길 난이도 : 산길 중심인 죽령옛길 코스에선 해발 695m 까지 올라가는 길로 구성되어 있어 초심자에겐 조금 힘들 수 있습니다. 이후 도착지점 까지는 마을을 통해 내려가는 길로 전체적인 소백산 자락길 03코스 전체 난이도는 보통이라 보시면 됩니다.
출발점 가는 방법 : 소백산 자락길 제03코스 출발점은 희방사역(소백산역) 입니다. 이곳을 경상북도 영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기엔 버스 배차간격이 길어 청량리-안동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희방사역에 내려 출발하는 것을 추천하는 편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출발하는 분들을 위해 서울 그리고 경상북도 영주시 기준으로 출발점 가는 방법을 기재하겠습니다.
서울 기준 :
청량리역에서 청량리-안동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희방사역(소백산역)에 내려 출발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경상북도 영주시 기준 :
영주시내버스터미널에서 25번 버스를 타고 희방사 방향으로 가다가 희방사역(소백산역) 입구에서 하차 후 둘레길 여행을 시작하시면 됩니다.
(1일 : 13회운영) 영주버스(054-633-0011~13)
사진찍기 좋은 곳 : 옛길이라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추천을 한다면 죽령마루휴게소에서 소백산맥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것을 추천합니다.
중간에 휴식 취하기 좋은 곳 : 죽령옛길 그리고 죽령옛마을 중간 중간 의자와 정자가 있습니다. 계속되는 트래킹으로 휴식이 필요한 경우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추천 여행 시기 : 겨울의 흔적이 지나가는 4월 그리고 가을에 여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누구랑 함께 가면 좋을까? : 죽령옛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종종 트래킹을 즐기시는 등산모임 그리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소백산 자락길 제03코스는 선조들이 걸었던 흔적을 다시 밟으며 머릿속 가득한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둘레길 입니다. 트래킹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혼자 여행을 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