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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May 10. 2024

공원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공원의 위로>를 읽고

도시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


 문명이 처음 시작했을 때의 도시와 지금의 도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도시는 효율성의 상징이자 노동자들의 무덤이 되어갔다. 지금도 사람들의 노동력을 연료 삼아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도시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숨 쉴 틈을 얻으려면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 공원에 가기 위한 시간 또한 돈의 다른 이름이다. 그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담보잡히고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돈을 손해봐야 한다.


 서울역 인근 단칸방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공원은 다 같이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돈되고 보기 좋은 것만을 공원에 담길 원한다. <공원의 위로>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간에 공원은 일상에서 일상의 탈출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공원의 리얼리티는 탈출의 판타지를 허용하지 않는다고(pp.168~169) 이야기한다. 문득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자신만의 장소에 대한 열망과 환상을 온라인에서만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암담할까. 앞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공원의 조성으로 그 환상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누군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사람들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공원의 역할 중에 소셜 믹스에 대한 것도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생각하고 이야기 나눠봐야겠다.


도시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


클라이넨버그가 말하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공간 및 조직"이며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물리적 환경"이다. 도서관과 서점, 학교와 놀이터, 수영장과 체육 시설은 물론 공원이야말로 도시의 건전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공원처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꾸준하게 모여 즐거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위기의 도시를 회복시켜 열린 도시의 연결 사회로 향하는 희망의 전략이다. p.191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적 성장으로 잃어버린 것이 많다. 그중에 사회적 기반시설은 특히 부족하다. 예전 스웨덴에 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주민들이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 가장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어렸을 때 체육관에서 놀았던 기억이 많기 때문일까. 그리고 도서관도 당연히 부족하다. 집 앞에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 예산에서 도서관이나 다른 사회적 기반시설 투자를 줄이고 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당장 위에 언급한 시설이 없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피해가 발생하진 않는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뒤에서야 그 피해가 눈에 보이고 피해를 인식할 때면 이미 늦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 도시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실현될지 앞으로의 서울을 조금은 기대해 본다.



외형적인 것만으로 내면까지 구할 수 있을까


디자인은 도시를 구원할 수 있는가? 공원은 자본주의 도시의 면죄부인가? 녹색 공간은 도시 정치의 만병통치약인가? p.254
"냄새는 시각적 이미지와 달리 과거를 복구시켜 주는 힘을 지닌다"라고 말한다. 시각과 청각과 달리 후각은 환경의 숨겨진 차원을 드러내주며 도시의 장소와 경관을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냄새는 빛이나 소리보다 훨씬 강력한 공간 경험을 형성한다. pp.275~276
악취를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 화학과 의학, 건축과 도시계획을 통해 총동원되기 시작했다. 근대  도시공학의 핵심 수단인 포장, 배수, 환기는 곧 냄새와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로포장은 곧 도시의 냄새를 우리 발밑 깊숙이 봉인하고자 하는 집요한 기획이었다. 위생 도시는 냄새가 삭제된 무취 도시의 동의어였다. 정교하게 계획되고 치밀하게 관리되는 요즘 도시 대부분은 후각의 풍성한 향연을 잃고 하향 평준화되었다. p.277


 도시의 외형만을 바꾸는 익선동 같은 사례는 처음에 내면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간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이후 자본이 개입하면서 컨설팅 업체가 인테리어와 마케팅 등 잘 팔리지만 몰개성과 획일화된 공식으로 익선동을 만들었고 저자가 비판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원도 마찬가지다. 어떤 공원이 잘되면 copy&paste방식으로 다른 공원의 상황에 맞지 않는 설계를 시도하게 된다. 공원은 익선동 같은 상업공간이 아니기에 자본이 없어서 돈을 최대한 절약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예산도 충분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행정이 아니기 때문에 반발도 많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공원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같은 결과가 반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런 책이 더 많이 읽히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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