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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May 25. 2024

용기라는 단어의 무게감

<그녀가 말했다>를 읽고

용기는 아무것도 없을 때 생길 수 있을까


오라일리 기사가 각본이 되어주었다. 자기 이야기만 가지고 나선 여성은 거의 없었다. p.51


 '용기'라는 단어를 제시해 봅니다. 이때의 용기는 기질적으로 용감함을 지닌 행위적 용기 brave가 아니라, 두려움과 나약함 속에서라도 애써 극복해보고자 하는 용기 courage를 가리킵니다. p.4
<뉴필로소퍼 vol.22 용기에 대하여>


 이 책을 읽으면 '용기'라는 단어가 평소보다 무겁게 어깨에 내려앉는다. 예전에 용기에 대해 읽었던 문장에서 courage로 두려움과 나약함 속에서라도 애써 극복해 보려는 사람들의 매 순간 고민했던 흔적을 잘 담은 책인 것 같다. 물론 기질적으로 용감함을 지녔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애써 용기를 가져보려고 노력할 거다.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상황과 선택을 강요받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일하고 관여하는 공간과 영역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부당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와인스타인 사건을 세상에 알린 것이 두 명의 여성이라고 말하게 되겠지만, 사실 이는 세 명의 여성이 한 일이었다. p.87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간직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운동이었다. 어쩌면 이젠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생긴 덕분일 거다.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용기라는 단어도 사람들이 있었기에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시스템을 파헤쳐야 한다


가해자 개개인을 넘어, 성폭력을 이토록 만연하게 하는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인 시스템을 짚어내라는 과제였다.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만 같은 이런 합의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합의는 문제를 어떤 식으로 은폐하는가? p.52
미국의 법 체계는 성추행 신고를 침묵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 때문에 가해자의 행동을 저지하기는커녕 부추길 수 있다. 여성들이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말할 권리를 빼앗기는 일이 관례처럼 일어난다. p.100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언제나 시스템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는 큰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알아차릴 수 있다. 언제나 피해자의 목소리는 작고 잘 들리지 않는다. 말할 권리를 빼앗긴다는 표현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시스템과 법에 갇혀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으니까.


자기 합리화에 갇힌 세상


밥은 형이 성 중독에 시달린다고 믿었으며, 하비 와인스타인을 멈출 수 있는 것은 하비 와인스타인 본인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자신이 더 이상 손쓰지 않았다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편리하면서도 형편없는 도덕적 선택이었다. p.211
조디는 저임금 근로자들을 취재했는데, 이들의 경험은 구조적인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월마트에서 지하철공사에 이르기까지, 조디가 접촉한 고용주 대부분은 오랫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기존 정책에 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p.307


 어쩌면 우리는 하비의 동생 밥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 그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이다. 최근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보면서 방관자 역시 큰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2017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아직도 저임금 근로자들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이 바뀌었다고 마치 온 세상이 바뀐 것이라 착각하는 것도 방관자가 되어버린 나에 대한 자기 합리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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