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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철 Jan 31. 2018

잠시 마을 주민으로 살아봐요. 하나레 호텔

마을 전체를 하나의 큰 호텔로 만들다

하나레 호텔은 '마을 전체를 하나의 큰 호텔'이라고 봅니다. 자체적으로는 숙박시설과 카페 외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숙박 시 포함되는 아침식사와 간단한 샤워를 제외하고, 식사는 동네 식당에서 목욕은 동네 목욕탕에서 하기를 권합니다. 체크인 후 방에 가면 지도가 있는데, 이 지도에 식당, 목욕탕 외에도 공원, 자전거 대여점 등과 같은 곳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도 앞 면은 낮에 추천하는 장소, 뒷 면은 밤에 추천하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세심한 지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지도가 세상에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사업 계획만 들고 가서는 관심도 없는 가게를 설득하고 설득해서 이 지도를 완성했을 겁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주인장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행동했을까요?  주인장은 그저 예전에 이탈리아 여행을 갔다가  마을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만든 호텔 경험이 재밌어서, '비슷한 호텔이 일본에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시작점에서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작점은 가벼웠지만, 지금의 하나레 호텔의 완성도를 비추자면 진지한 사업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자신의 재밌는 경험을 남들도 재밌게 느끼게 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가볍지만 빠른 시작은 꽤나 중요합니다. 시작은 반입니다.


지도 앞 면은 낮에 추천하는 장소, 뒷 면은 밤에 추천하는 장소가 표시
좌) 방에 놓여 있는 웰컴 카드와 지도 / 우) 지도의 앞면 (영어로도 표기)


하나레 호텔을 이용하기 전에 하기소(HAGISO)라는 건물에 먼저 들려야 합니다. 1층은 카페, 전시실로 사용되고 2층은 하나레 호텔에 리셉션으로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1층은 동네 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꼭 여행객만 들리는 곳은 아닙니다. 용도는 주민센터 같은 느낌이지만 인테리어는 미술관 같습니다. 외부는 반듯하고 내부는 따뜻하게 인테리어 되어 있습니다. 하나레 호텔 안에 리셉션을 두지 않은 이유는 첫 만남부터 하나레 호텔의 스타일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거 뭐지?' 어리둥절 하다가 경험하다 보면 '아 원래 이런 거구나!' 하게 만드는 겁니다.


1) 하기소 2)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3) 1층과 2층 사이에 새장


2층 체크인 장소에서는 간단한 문서 작성만 하면 체크인이 끝납니다. 그 후 전해주는 방 키와 목욕 티켓을 받으면, 스텝분이 방까지의 안내를 도와주는 형식입니다. 하나레 호텔을 예약 사이트에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별한 곳에서 잘거야!라는 마음 가짐으로 조사를 하지 않고서야 절대 찾을 수 없는 곳 입니다. 그런 노력의 이유 탓인지, 스텝분들은 고객을 정성스럽게 대해줍니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아 온 노력에 보상을 해주 듯이 말입니다. 


1) 리셉션 앞 대기 장소 2) 리셉션


하나레 호텔의 방에 도착하면, 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스텝분에 설명을 듣게 됩니다. 방 안에 여러 가지 물건들의 용도 설명, 지도 소개, 목욕 티켓 사용법 등과 같은 것을 천천히 영어로 설명합니다. 설명을 듣고 난 뒤, 지도를 바탕으로 음식 취향, 목욕탕 취향(신식 건물, 전통 건물)을 말하면 스텝분이 장소 추천을 해줍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장소가 워낙 많아, 이때 정보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검색을 하며  찾아야 합니다. 열정을 다해서 질문을 많이 할수록 취향에 맞는 완벽한 장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도시락 가게와 신식 목욕탕을 스텝분께 추천받았습니다.


하나레 호텔에서 스텝 분과 고객의 관계는 다른 곳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취향을 이야기해야 하고, 스텝분은 고객의 취향에 맞춰 장소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고객은 실제 장소를 방문하게 되고, 스텝 분과 우리는 같은 장소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언제고 우리가 만나면, '거기 어땠어요?', '추천해주신데 정말 좋았어요!'으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친밀한 사이가 되어버립니다.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1) 호텔 방 내부 2) 수건 및 목욕 가방

하나레 호텔은 총 2층으로 되어 있고, 방 내부는 일본의 가정집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1층 방에 배정받았는데, 창문을 열면 거리에 일상적인 모습들이 가까이 보여서 좋았습니다. 방끼리의 벽이 얇아, 큰 소리를 내기 힘든 단점도 있지만, 서로 간의 배려로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1) 하나레 호텔 전체 2) 하나레 호텔 입구


짐만 풀고, 추천받은 도시락 가게로 출발합니다. 신발장에는 외출용 게다(나무 신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장소들은 호텔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대부분 위치합니다. 도시락 가게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얼마 걸리지 않아 도착했습니다. 막상 가게에 가보니 도시락을 포장할 수도 있었고, 가게에서도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방에서 편안하게 뒹굴며 먹고 싶은 마음에, 도시락을 주문합니다.

http://tayori-osozai.jp/

타요리 홈페이지
1) 타요리(TAYORI)의 외부 간판 2) 방에서 먹는 오늘의 도시락

식사뿐만 아니라 커피도 팔고, 반찬도 개별적으로 사갈 수 있는 가게입니다. 특정 반찬에는 생산지역을 알려주는 자그마한 종이가 붙어있었습니다. 또한 가게의 구석에 그 재료의 생산자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먹는 사람의 감사 편지로 생산자는 기쁘게 일에 임할 수도 있고, 따끔한 편지가 온다면 빠르게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연결하는 편지라는 아날로그적 방식이 참 마음에 듭니다. 깊은 고민과 정성 없이는 쓸 수 없는 것이 편지니까 말입니다.


깊은 고민과 정성 없이는 쓸 수 없는 것이 편지
타요리 내부
타요리의 내부, 안 쪽에 모임을 위한 작은 방도 갖추고 있다
1) 생산자가 표시된 반찬들 2) 생산자와 주고받는 편지 시스템


도시락 주문을 기다리다가, 이 가게를 소개해준 스텝분을 만납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질 때,  스콘 두 개를 선물로 드립니다. 방에 돌아와서는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목욕을 하러 나갈 준비를 합니다. 목욕 가방에 큰 수건과 작은 수건을 챙기면, 준비는 끝입니다(일본 목욕탕에서는 수건을 제공하지 않음). 수건을 두 개 챙기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작은 수건은 욕탕 안에서 돌아다닐 때 중요 부위를 가릴 때나, 물 안에서 땀이 흐르지 않게 머리에 올릴 때나, 목욕 후 탈의실로 이동 전에 몸의 물기를 가볍게 닦아주는 용도로 쓰입니다. 큰 수건은 탈의실에 나뒀다가, 마지막으로 물기를 제거할 때 씁니다. 

 

추천받은 신식 목욕탕


호텔에서 받은 목욕탕 티켓을 카운터에 내면 간단하게 입장이 가능합니다. 동네에 작은 목욕탕이지만 전체적으로 시설이 깨끗하고, 노천탕도 있습니다. 조용하게 동네 분들과 같이 목욕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이 차분한 듯 좋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서는 흰 우유를 뽑아 마십니다. 역시 목욕의 마무리는 흰 우유가 최곱니다.

역시 목욕의 마무리는 흰 우유
목욕 후 흰 우유


다음날 간단한 샤워 후에 아침을 먹기 위해 하기소로 이동합니다. 체크인 시에 조식 시간을 정해 놓았기에 자리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아침 정식은 나올 때 음식에 대한 설명서가 함께 나오는데, 음식의 이름과 주요 재료들을 알고 먹을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숙박객 외에도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고, 350엔이라는 낮은 가격에 아침 정식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하기소의 카페 내부
하기소의 카페 내부
1) 외부 자리 2) 아침 정식과 설명서


식사를 마칠 쯤에, 식당 스텝분께서 편지를 주십니다. 무슨 편지인가 물었더니, 어제 식당에서 만난 스텝분이 감사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손편지라는 건 정말 오랜만에 받아봅니다. 어제 도시락은 어땠냐는 이야기, 스콘 잘 먹었다는 이야기, 또 찾아와 달라는 이야기를 예쁘게 적어주셨습니다. 


사네의 감사 편지

이런 특별한 브랜드들은 제 인생의 선택지에서 큰 도움을 줍니다. 게다가 재미도 있습니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호텔, 하나레 호텔 편은 어떠셨나요? 조금은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전 이만.


이 글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후원을 받지 않습니다. 개인 비용으로 체험하고 느낀 것들입니다.


http://hanare.hagis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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