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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Mar 23. 2022

서비스의 가치를 드러내는 UX writing

내가 좋아하는 UX writing (1): 네이버 구매 확정 텍스트

좋은 텍스트, 좋은 UX 라이팅이란 뭘까?


요즘 UX 라이팅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져(음지에 있다가 갑자기 스포트라이트 받아서 당황한 사람) 이런저런 서비스 분석글을 보게 됩니다. '오, 이런 것에 즐거움을 느끼거나 좋은 인상을 받는군? 이건 이 사람만 느끼는 걸까, 다수가 느끼는 걸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니, 이건 사용성을 저해하는 텍스트인데 말투만 보고 좋다고 하다니... 사람들에게 UX 라이팅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 걸까...?'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후자일 때에는 실무자로서 씁쓸한 마음도 들고... 뭐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좋은 텍스트, 좋은 UX 라이팅이란 정말 뭘까? 그런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은  매거진에서 UX 라이팅을   주의해야  , 지양했으면 하는 패턴들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이번 회부터 2,3회에 걸쳐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UX 라이팅, 아니 제가 좋아하는 UX 라이팅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좋은 텍스트, 좋은 UX 라이팅, 좋은 콘텐츠 전략을 말할 때에는 다양한 기준, 요소들을 언급할  있기 때문에 모든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겠지만, 다만  가지 사례를 통해 여러분들께 생각할 거리를 안겨드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같아서요.

기초적인 UX 라이팅 원칙을 지킨 텍스트, 그러니까 개론서에 나올만한 사례(정확성, 간결성, 일관성을 잘 지킨 모범 사례)들을 제시하진 않겠습니다. 그건 너무 기본이라서 여러분들을 즐겁게 할 수 없어요(?)


이번 시리즈에서는 개론서에 나오지 않은 특별한 힘(?)으로 제게 또렷한 인상을 남긴 텍스트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UX 라이터로서 제가 리뷰할 때 어떻게 초안을 훑어보고,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도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UX 라이터는 이렇게 생각한다


네이버 쇼핑의 노예. 

네, 그게 제 이름입니다. 한 달에도 수 차례 구매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플러스 멤버십도 가입했고요 구매 완료, 구매 확정 알림 메시지도 자주 받습니다. 오늘의 좋은 텍스트는 이 구매 확정 관련 화면에 있습니다. 일단 화면 흐름을 보며 텍스트를 좀 둘러봅시다.


네, 선크림이랑 사과 질렀습니다. 아니, 이거는 생필품이라고요ㅠㅠ 과소비가 아니라니까요.


네이버 쇼핑의 구매 확정의 일반적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푸시 알림 > 알림 메시지 스레드 > 구매 확정 > 구매 확정 완료 > 리뷰(선택)


저는 리뷰는 잘 안 쓰기 때문에 보통 앞의 4단계의 화면을 반복적으로 보곤 합니다. 자주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추측건대 이 구매 확정 화면들의 포인트는 크게 2가지인 것 같습니다.


1) 사용자가 구매 확정을 하게 만든다.
2) 미수령, 반품, 교환 예정인 사람에게는 구매 확정을 하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인지시킨다.

실제로 사용자 커뮤니티 같은 데에 보면 구매 확정했다가 반품을 못했네, 빨리 구매 확정했는데 나중에 상품에 하자를 발견했네 등등의 안타까운 후기가 종종 있습니다. 쇼핑 중개자 입장에선 구매 확정을 하게 하되, 그렇다고 막 확정하게 하면 안 되는 아주 클리어한 타게팅이 중요하겠죠.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텍스트로 구현했는지를 살펴보는 게 흥미롭겠습니다.



전형적인 대입 논술 강사 첨삭 스타일(...)


구매 확정의 첫 번째 화면을 예시로 제가 리뷰를 할 때 어떻게 초안을 훑어보는지를 맛보기로만 보여드릴게요.

오해하실까 봐 하는 이야기이지만, 실제 실무에서 이런 포맷을 쓰는 건 아닙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UX 라이팅 요청 형식이 따로 있고, 의뢰받을 때 화면 설계서와 프로토타입 등을 같이 받습니다. 리뷰 코멘트도 매번 이렇게 길게 적진 않습니다. 텍스트를 리뷰해서 보내 드리면 왜 이렇게 고쳤는지 기획자나 디자이너분들이 다 이해하시기 때문에 긴 말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죠. 딱 보면 '아, 고친 게 낫네'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보통 기획과의 협의나 설득이 필요한 할 경우에, 이렇게 고친 이유에 대해 짐작하시기 어려울 것 같은 때에만 인라인 코멘트를 길게 적고, 더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경우에는 Input meeting을 합니다. 미팅에서 스펙이나 현재 상황의 어려움도 청취하고, 내부 가이드나 작성 원칙도 설명드리곤 하죠.

위 이미지는 그저 여러분께 설명드리기 위해 예시로 후다닥 적은 것이에요 : )


UX 라이터는 라이팅 작업을 할 때 정보 양, 질, 반복성, 위치, 시점을 전 화면에 걸쳐서 검토합니다. 화면 하나만 덜렁 보지 않아요. 그 텍스트가 어느 플로우, 어느 화면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를 전체적으로 바라봅니다. 더불어 서비스가 당면한 문제를 텍스트로 어떻게 풀 것이냐, 또는 어디까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냐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죠.

언어적인 측면(문체, 어문 규정, 길이, 브랜드 보이스, 톤)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건 약간 기계적으로 알아서 필터링됩니다. 가이드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가이드와 내 언어 중추가 이미 한 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줄줄줄 알아서 가이드에 안 맞는 건 걸러져서 나옵니다(브리타 정수기야 뭐야...). 물론 아리까리한 것은 내부 텍스트 검색 시스템을 이용하여 검색하거나 리뷰 히스토리 문서들을 찾아봅니다.


아무튼 이런 UX 라이팅의 관점에서 보건대 네이버 쇼핑의 구매 확정 플로우는 음... 외람되지만(...?) 말이 조금 많은 편입니다. 분쟁을 피하기 위해 유의사항을 많이 기재해야 하는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 UI 텍스트를 좀 줄이고, 정보와 형식의 반복만 조금 걸러내도 훨씬 화면이 눈에 잘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바일과 PC(구매 확정 독려 메일) 텍스트에도 이격이 조금 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이 이 화면을 의뢰받은 UX 라이터라고 가정하고 세부 요소를 뜯어봅시다.

1번 같은 경우에는 거의 쏟아내듯 메시지를 뿌리고 있기 때문에 정보를 조절하면서 가독성을 확보하자, 행/버블 나눔 등을 통해 레이아웃을 정비하자는 제안을 할 수 있겠습니다.


2번에서는 어문 규정에 어긋나지만, 이걸 우리 서비스 고유의 룰로 가져갈 것이냐를 봐야 합니다. 한국어 UI 텍스트에서는 합성어가 아닌데 4음절이나 3음절로 붙여쓰기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4/4조의 민족 아닙니까 우리가. 문법적으로는 틀렸지만 그걸 익스큐즈 하고 우리 스타일은 이걸로 하자정의한 다음에, 앞으로  이대로  거냐  거냐를 기획자와 합의해야 하는 거죠. 기획자가 여러 명이면 모두가  스타일에 OK 해야 합니다. 다른 화면이나 기능에서도 계속해서 동일 룰을 적용해야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정말 굳어져버린 업계 패턴('계좌번호', '계좌이체' 이런 건 꼭 4글자를 붙여서 쓰려고들 하시더라고요. 거의 한 단어로 인식하시는 듯. 사전에는 다 띄어쓰기해서 등재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띄어쓰기하자고 말합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암튼 여러분도 가급적 두 단어를 임의로 붙여쓰기 하지 마세요. 나중에 다 고쳐야 할 수 있습니다.(... 응?) 이것 외에도 버튼이 담고 있는 액션 워드가 너무 무겁거나 플로우와 어울리지 않으면 과감하게 쳐내자고 제안해 볼 수 있겠네요.


3번에 대해서는 주변 문장과의 정보 중복을 잡아내고 일관성의 측면에서 버튼 레이블의 일치를 요구할 것 같아요. 왜 괄호나 부연을 구구절절 버튼에 쓰지 않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도 설명드려야겠죠.


UX 라이터로 일하면 이런 텍스트를 하루 수십  많은 날에는 백여  이상 리뷰해야 합니다. 라이터가 ! 쓰면 기획자가 ! OK! 하고 술술 넘어가는 프로젝트도 많지만, 버튼 하나로 회의를  번씩 하며 핑퐁을 치는 경우 역시 적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텍스트는 쓰기 어렵다


4번에서 느껴지는 VOC의 기운



4번 같은 텍스트가 보통 VOC를 우려해서, 또는 VOC를 받아서, 아니면 그런 VOC를 줄이기 위해 갈고닦아서 넣는 그런 문구입니다. 물건 안 받고 구매 확정을 해버린 사람들의 슬픈 목소리가 고객센터로 차곡차곡 인입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걸 해결할 텍스트를 넣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 VOC가 너무 많아 뭐라도 해야 해!'라고요. 제 입장에선 '아니 그걸 플로우 조정이나 디자인 요소로 해결할 순 없나요? 이렇게 말로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게 제일 촌스러운 방법인데요...'하고 싶지만, 사실 뭐 뾰족한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텍스트를 넣는 데에 동의하곤 합니다.

 

4번 텍스트를 넣었는데도 문제 해결이 안 되면 5번 버튼 눌렀을 때 컨펌 팝업 '구매 확정을 하면 반품이나 환불을 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확정하시겠습니까?'까지 띄우자는 말이 나오는데, 이미 이 화면이 팝업 스타일(오른쪽 상단에 X 버튼이 있고 하단에 팝업 버튼스러운 버튼이 있음)이라서 팝업을 또 올리는 건 좀 부담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현명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 팝업은 싫다고 할 것 같네요. 팝업은 성가신 인상을 줄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판단력을 얕잡아보는 느낌이죠.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닌 거 같다고 말해야겠죠.

그럼 또 누군가가 5번에 툴팁이라도 붙여서 '물건을 받은 분만 확정해 주세요!' 이런 걸 쓰자는 아이디어를 낼 테고, 그럼 UX 라이터가 '제발 툴팁을 지방 중소도시 회전 교차로에 걸린 갈빗집 홍보 현수막처럼 쓰지 말라' 궁시렁 궁시렁하겠죠. 진짜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고, 툴팁을 써야 하는 케이스는 따로 있다고... 뭐 이런 논의가 핑퐁처럼 오고 갑니다.


뭐든 정답은 없습니다. 4번 텍스트의 진하기나 굵기를 조정하고, 눈에 띄는 색상으로 바꾸든, 컨펌 팝업을 붙이든, 툴팁을 끼워 넣든 다 각 조직의 디자인 스타일이고 개별 상황에 따른 선택일 수 있어요. UX 라이터는 그저 정말 이상한 의견이 채택되는 걸 막으면서(아, 안돼 안돼 그런 이상한 텍스트는 써줄 수 없다고요!)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봅니다.

5번 버튼이나 '확인'에서 '구매 확정'으로 고치자고 말하면서요. 5번 버튼 누르면 낙장불입인데 버튼이 너무 임팩트가 없어서, 어째 다음 화면에서 흐물흐물 한 번 더 결정의 기회가 있을 것 같은 인상이라고. 딱 구체적인 액션 워드로 '구매 확정' 또는 '확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할 테고, 그 주장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화면에 반영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연습 사례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텍스트를 쓰는 것은 실상 간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텍스트를 많이 붙이면 붙일수록 화면 복잡도는 높아지고 가독성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 화면과 관련된 모든 사람(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UX 라이터)의 의견이 교환되면서 전체적인 방향이 정해지는데, 효과가 잘 나타날지는 사실 두고 봐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썼을 때 문제가 해결될지 이 글을 쓰는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죠.

이런 걸로 A/B 테스트 돌리기엔 이런 애들이 하루에 수십 건씩 온다니까요...

일단 저는 뭔가를 걷어내는 데는 적극 찬성이지만, 뭔가를 더 넣어보자는 데는 대부분 반대하곤 해요. 하지만 너무 고집은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전문가로서 조언은 하되 최종 결정은 이 화면 담당자의 의견을 따릅니다.


사용자에게 공덕을 돌리는 텍스트


자, 이제 제가 좋아하는 UX 라이팅, UI 텍스트를 소개해 볼게요. 바로 이 화면에 있습니다.

구매 확정 완료 페이지의 중간에 비교적 작은 글씨로 기재된 6번 텍스트가 제가 좋아하는 UI 텍스트입니다.



오매, 네이버 플러스 적립금 보소


OOO님의 구매확정 덕분에 판매자가 판매대금을 더 빠르게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매 확정은 사실 판매자에게만 절실한 액션입니다. 확정이 되면 쇼핑 중개자로부터 전체 대금이 지급되는데, 소규모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에게는 이 대금 지급, 즉 자금 회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거든요. 이 빠른 자금 회전에 대한 자영업자의 간절한 마음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쇼핑 중개자, 오픈 마켓에서 대금 지급을 한 달씩이나 미루는 행태를 벌여 언론 보도가 된 적도 있었죠. 대금 지급이 미뤄지면 소규모 판매자들 속이 타들어간다고요. 중소상공인들이 네이버 쇼핑을 선호하는 이유도 대금 지급이 빠르고, AI를 활용한 빠른 정산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금 회전율을 높인 데에 그 이유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쇼핑 중개자로부터 보조적인 자금 지원책이 있어도 역시 제일 좋은 건 사용자가 깔끔하게 구매 확정을 해주고 대금이 정석대로 지불되는 것이겠죠. 그래서 네이버는 이전에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구매 확정 캠페인을 별도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 구매 확정이라는 것은 사실 구매자에게는 딱히 큰 이득이 없는 행위입니다. 한 때 이벤트성으로 구매 확정을 빨리 하면 포인트를 더 줬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배송 완료일을 기준으로 8일 후 자동 구매 확정 처리된 경우에도 받는 포인트는 동일합니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귀찮게 푸시 알림을 받고 버튼을 눌러 구매 확정을 일찍 해준다고 해도 딱히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구매 행위가 종료되었음을 선언하거나, 구매 리스트를 정리하는 것 정도의 의미가 있겠죠.

앱에 배지가 뜨거나 받은 편지함에 읽지 않은 메일 숫자를 못 견디는 사람이라면 미리미리 정리하는 정도의 장점?

아니면 포인트를 며칠 일찍 받는 것? 그런데 보통은 그 몇 백 원, 몇 십원 포인트가 막 급하진 않잖아요?


요컨대 '당신에게 이익이 있으니까 이거 해보세요'라고 말할 거리가 사실 없다는 거죠.

그래서 사용자 행동 유도가 쉽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이익을 강조하는 툴팁을 쓰긴 썼지만, 사실 이건 확정 안 해도 결국 받을 수 있는 것이라 메리트라고 보기 어렵죠.


쇼핑 중개자 입장에서는 그런 구매자에게 어떻게든 구매 확정을 해달라고 말을 하긴 해야 하고, 그 이유도 밝혀야 합니다. '구매 확정을 하면 판매자에게 대금이 지급되거든요.'라는 사유를 밝히고 확정 액션을 촉구해야 하는 거죠.


바로 그 역할을 이 문장이 하고 있는데....

그런데 되게 묘하지 않나요? 이 텍스트의 스타일이나 위치, 순서가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아주 단순하게 UI 텍스트를 쓰면 푸시 알림이나 첫 화면에 이런 식으로 쓸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OO님이 구매 확정을 하면 판매자에게 판매 대금이 빨리 지급됩니다."
"판매자에게 대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구매 확정을 눌러주세요."


이런 식의 강권은 사실 구매자에게 조금 부담이 될 수 있죠.

'내가 액션을 하지 않으면 뭔가 상황이 변하거나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작더라도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건 좀 투박하고 거친 방식입니다.

지금 우리가 온전히 구매자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은 맞지만, 그게 부담감이라는 부정적 감정으로 사용자의 어깨에 지워지면 곤란합니다. 사용자가 구매를 원데이 투데이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이런 강요를 푸시 알림 메시지로 던지는 건 확실히 구매 확정 플로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테니까요.


근데 네이버 쇼핑에서는 이 내용을 가장 마지막 결과 확인 화면에 배치했습니다. 상단에는 내가 획득한 포인트를 크게 알려주고, 그리고 그 밑에 결과로써 구매 확정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는 거죠.

'아, 구매 확정하셨군요! 포인트가 이렇게 많이 적립되었고요 구매자님이 구매 확정을 이렇게 해주셔서 소상공인이 더 빠르게 대금을 받는 이런 좋은 일이 생겼답니다!'라고요.


잘 참았어요 정말.

맨 앞에서부터 구구절절 압박하지 않고 잘 참고있다가 마지막에 한 수를 두었습니다.

사전에 강권하거나 요구,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이런 식으로 밝히는 방식이 꽤나 세련되었습니다. '당신이 큰 신경 쓰지 않고 한 일일 수도 있지만, 덕분에 누군가가 도움을 받게 되었어'라는 이 덤덤한 결과 통보를 본 사용자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뜻밖의 작은 보람, 기쁨 등을 느낄 수 있겠죠.


이런 식으로 정보를 드러내면 뭐가 좋을까요?

이 문구는 이번 구매 확정을 동인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다음 구매 확정을 이끌어내는 트리거가 될 수 있습니다. '구매 확정을 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구나'를 강압적이거나 압박적으로 습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구매 확정 알림을 받았을 때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액션을 재수행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또 이 문구를 통해 네이버 쇼핑의 구조, 쇼핑 생태계 내에서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가 은근하게 드러나게 되어, 서비스 이해와 교육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텍스트는 네이버 쇼핑이라는 서비스가 가진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를 원활하게 연결하고, 쇼핑 프로세스가 매끄럽게 완료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중개자로서의 역할이 이 한 문장에서 잘 부각되고 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위치한 이 작은 문구가 여러모로 참 힘이 있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OOO님의 구매확정 "덕분에" 판매자가 판매대금을 더 빠르게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게 누가 이 UI 텍스트 중에서 단 한 단어만 뽑아보라고 한다면 저는 '덕분에'를 꼽겠습니다.

이 '덕분에'가 가진 따뜻하고 겸손한 어감은 말입니다,

판매자를 위해 일부러 수고를 들여 구매 결정을 해 준 이에게는 작은 보람을, 전혀 모르고 무심코 구매 결정을 한 사용자에게는 뜻밖의 기쁨을 가져다줄 겁니다.

그게 제가 이 화면에서 느낀 좋은 감정이었어요.




오늘의 요약


UX 라이팅 작업을 할 때 정보 양, 질, 반복성, 위치, 시점을 전 화면에 걸쳐서 검토합니다. 그 텍스트가 어느 플로우, 어느 화면에까지 영향을 미칠지(공간), 과거, 현재, 미래의 일관성이나 정확성에 영향을 미칠지를(시간) 두루 고려합니다. 만약 덜렁 이 화면만 딱 보고 리뷰하면, 멀지 않은 미래에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조심하세요.

리뷰 코멘트로 기획자나 디자이너와 소통할 수도 있지만, 심각한 이슈는 회의에서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기획자가 지금 이걸 왜 해야 하는 상황인지, 왜 이렇게는 할 수 없는지(일정, 개발 이슈, VOC, 윗분의... 이하 생략)를 은밀하게 말해주기도 하고, 반대로 라이터가 이런 표현을 쓰면 무슨 느낌이 드는지, 사용자에게 어떤 시그널을 주게 되는지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안쓰러워지면서 막 이해가 되고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UI 텍스트의 반절은 정보 제공, 나머지 반절은 사용자에게 뭐 해보라고 시키는 것이라고 하곤 합니다. 그만큼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요구하고 조르는 게 많죠. '사용자의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이유(목적)를 제시한 후 행동을 요구하라, [~하려면 ~하시오]와 같이 패턴화 된 문형을 써라'같은 규칙이 UX 라이팅 일반 기술에서는 종종 회자되곤 하고, 혹자는 그걸 금과옥조처럼 지키지만 말입니다... 사람의 일이 항상 그렇던가요 어디. 때로는 은근한 방식이 더 세련되고 긴 여운을 줄 수 있답니다. 교과서대로 하지 않을 때 더 좋은 경우가 분명 있어요. 글쓰기에 답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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