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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Feb 08. 2022

서비스를 찌르는 단어

어감과 뉘앙스: 사회문화적 맥락을 따져 엄선한 표현만 쓴다.

연휴 잘 보내셨나요.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요즘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파놓은 무덤을 정리하느라 주말에도 약간 바쁩니다. 종종 농담으로 '이렇게 무덤을 많이 파놔서 나중에 죽으면 장지를 어디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곤 해요.

이력서에 '취미는 제 무덤 파기'라고 써야 할까 봐요.


라젠카아 세이브 어스 세이브 어스 세이브 어어어어어스...플리즈


어쨌거나 오늘은 어휘 선정, 그중에서도 어감과 뉘앙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UI 텍스트의 어휘 분야 설명에 대한 포석인데, 사실 마케팅 글쓰기나 브랜드 보이스와도 관련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언어를 보면 서비스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잇따른 말실수가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말, 구어라는 것은 순발력과 상황에 의해 필터링되지 않고 튀어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해야 하죠. 언어는 의식의 직접적인 외화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발화하느냐는 그 사람의 철학이나 생각이 필터링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표현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말하기를 할 때에는 무조건 말을 삼가고, 확실하게 준비될 때까지 침묵하는 게 좋겠죠. 그래서 저는 강의가 두렵습니다(응?)


이런 원칙은 UX writing과 UI 텍스트의 작성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UI 텍스트는 구어와 문어, 상호작용적인 대화와 일방적인 통보 그 어딘가에 있는 텍스트입니다.

사용자가 브랜드나 서비스를 살아있는 인간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성격을 가진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보통은 UI 텍스트에서 그 브랜드나 서비스의 생각, 철학, 입장과 의사를 파악합니다. 마치 상대방의 음성, 높낮이, 말투, 사용하는 단어의 난이도, 종류를 보고 그 사람의 지식과 의식 수준, 평소의 의사소통 방식을 가늠해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특히 문체와 어휘는 서비스 보이스와 , 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문체의 경우 단일 문체만 고집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해요와 합쇼체를 적절히 섞어 곤 하죠. 그래서 사용 비율이 한쪽으로  려 있지 않으면 문체의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지만(근데 은근해서  기분이 간질간질한 느낌) 어휘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휘는 매우 강렬하죠. 마치 날카로운 단도와 같아서 거침없이 사람의 기분을 파고듭니다. 명징하고  뜨겁게 와닿는  바로 어휘랍니다. 그렇게 낙인처럼   인상을 남기면 화상 자국이 화끈거리듯  느낌이 쉬이 가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살다가 어떤  단어에 꽂혀서 그걸로 말꼬리 잡고 늘어지면서 들불처럼 문제를 크게 만드는 사람 만나보신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 사람이 나한테 OO이라고 했다고!"라거나 " 어어어~!!! 방금 뭐라고 그랬어? OO?!! 지금 OO이라고  거야?!!!!" 이러면서 버럭대는 사람을 저는  많이 만났답니다. 뉘앙스, 어감, 어세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사람이 일단 단어 하나에 꽂히면 끝이죠 . 대화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분들과 일을 하거나 대화해야  때는  조마조마한 기분이 듭니다. 어느 단어가  사람의 발작 버튼인지   없거든요. 러시안룰렛 같은 대화는 고통스럽지만, 막상 조심조심해서 지뢰를 피하듯 대화를 마무리 짓고 그이를 이해시키면 그것만큼 보람찬 일도 없습니다.

야... 이 정도로 맞춰줄 수 있게 되었으니, 내가 이제 누구와 대화해도 위험한 일은 만들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UX writing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단어가 지니고 있는 뉘앙스, 사회적 아우라가 개별 사용자에게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몇 번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검토하고, 다른 사람에게 수차례 검수받아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용하는 어휘 풀도 엄격하게 잡아놓고 새 어휘를 그 풀에 넣을 때에는 몇 번이고 고민합니다.

'이거 위험하지 않을까? 이거 중의적이지 않나? 이 말로 오해 사지 않을까?'

라이터들이 자주 하는 , 하루에도 여러  하는  중에 ' 서비스에선  표현은  써요. 우리는  단어는   씁니다. 대신 이런 표현을 써요. 왜냐면...' 있습니다. 사전에 검증해둔 단어군은 안전하니까  안에서 위험하지 않게 움직이겠다는 거죠.

잘못된 말 한마디에 사용자 혈관에 힘줄 돋으면 브랜드 이미지고 나발이고 빠이빠이니까요.

저는 서비스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리스크 매니지먼트팀에게 등짝 맞고 싶지 않아요.


위험한지! 찰싹! 생각을! 찰싹! 하고! 찰싹! 쓰라고! 찰싹! 찰싹!

 


사'용'자의 비늘을 건드리지 마세요


종종 가는 커피 체인의 앱 주문 시스템을 설명하는 배너에서 '합법적 새치기하는 법'이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와 동일한 앱 오더 서비스인데, 왜 카피를 저렇게 뽑았는지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동일한 문구가 친근한 패스트푸드 스마트 오더에서도 사용되었더군요.


개인적으로 '역설' 개념을 좋아하는 담당자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하는 '합법적 새치기'


뭐가 문제일까요? 이 '합법적 새치기'라는 이 표현에는 크게 2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서비스를 어필해야 하는 문구 사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부정적인 단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사전을 보면 아시겠지만, 어느  의미 하나에도 좋은 뜻이라고는 없는  어휘가 서비스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로 쓰일 필요가 없었겠죠. 우리 서비스에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모자랄 판에 어둠의 오오라(고오오...) 붙어있는 새치기 같은 말을 쓰다니   입니다.


새-치기
순서를 어기고 남의 자리에 슬며시 끼어드는 행위. 또는 그런 사람.
중간에 끼어들어 성과를 가로채거나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 또는 그런 사람.


새치기 앞에 '합법적'이 붙어서 더 기분 나쁜 거 인정? 어 인정. 부정적 어휘 앞에 합법적이 붙으면 편법의 이미지, 즉 '나쁜 짓은 맞지만 나한테 뭐라고 할 수 없을걸?'이란 묘한 조롱의 뉘앙스가 붙습니다. 합법적 불륜, 합법적 탈세(라고 쓰고 절세라고들 하더만요), 합법적 체벌처럼 뭔가 나쁜데,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데 어째 사회적 규율이나 규범의 구멍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느낌이 들죠. 비록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사람이 나일지라도(사용자), 영 능구렁이 같은 기분이라서 찝찝함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수없이 좋은 표현이 있는데, 어째서 이런 어둠의 오오라~ 고오오오~ 하는 어휘를 가져다 쓴답니까?


 번째는  표현이 사용자로 하여금 생각나게 해서는 안될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겁니다.'합법적 새치기'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커피나 음식을 주문하는 행위는  경쟁 행위 인식됩니다.


이 서비스를 쓰는 나는 이 서비스를 쓰지 않는 사람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이 서비스를 쓰지 않는다면 나는 새치기당할 것이고 경쟁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다.


커피 주문은 오로지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 사이의 행위임에도 '합법적 새치기'가 상기하는 경쟁 구도의 이미지 때문에 이들 사이에 제삼자, 즉 다른 사용자의 존재가 끼어들게 됩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죠. 이로써 경쟁, 도태, 편법 등의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순식간에 사용자의 머릿속에 상기됩니다.

이 단어들은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맞물려 사용자를 불쾌하게 합니다. 등수, 경쟁, 치열함, 도태, 불공정, 불평등, 편법, 변칙, 뒷문, 뒷구멍 같은 단어들은 잠깐 머릿속을 스치기만 해도 빡치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린(逆鱗)이지요. 아주 짧은 순간에 절대 가서는  되는 어두운 곳까지 사용자의 생각이 미칠  있습니다. 요컨대  단어를 쓰면 라이터가 어세, 어감, 전체적인 화면의 분위기를 컨트롤하기 힘들어진다는 거죠.


그래요, 어휘라는 것은 그런 거예요. 그 찰나와 같은 순간에 길고 더러운 여운을 사용자에게 남기는 게 어휘이고 표현입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커피 주문은 편안하고 행복한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새치기를 해서 쟁취해야 하는 피곤한 무엇인가가 되는 거죠.


그럼 뭘 어떻게 쓰란말인가? 하실 겁니다.

보통 온보딩 화면이나, 툴팁, 배너 등에 등장하는 이런 류의 문구들 마케팅 카피와 UI 텍스트 경계선상에 있는 텍스트들입니다. 이런 문구를 쓰려면 카피라이팅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화면 위에 올릴 때에 공간이나 등장 맥락 등을 따져서 다양한 수도 고민해야 하니까요. UI 텍스트로써의 보이스  톤도 무시할  없습니다.


 가지 팁을 드리자면 일단 내가 알리고자 하는 서비스나 기능의 핵심 가치가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르면 기획에게 물어보세요. 이것의 밸류가 뭐냐고. 그리고  가치에 대해 최선을 다해 집중하며 글을 쓰면 됩니다.

예를 들어   오더라는 기능은 빠르게 음료를 받아갈  있다,  기다릴  있다는 것이 밸류겠죠. 누군가에게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음료를 커스텀할  있는 것도 부가적인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 거기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긴다' 결코 강조 포인트가   없다는 것은  가치 숙지 단계에서 바로 자각하게 됩니다.

밸류가 뭔지 확실하게 숙지했다면 그와 연관된 형용사, 부사, 추상 명사, 일반 명사 등을  모으고 조합을 해봅니다. 모아  어휘 재료  어떤 것도 어둠의 오오라가 없는 어휘들이어야 합니다. 아래 수식언들을 보통 많이 쓰는데 구태의연할지언정, 안정적입니다. 조금  개성 있는 표현을 궁리해보셔도 좋지만, 어둠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깔리지 않는 단어를  찾으셔야 합니다.


빠르게, 간편하게, 손쉽게, 간단하게, 누구나, 어디서나,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산뜻하게, 편리하게, 스마트하게


특히 위트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위험한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리는 표현은 UI 텍스트에서는 웬만하면 쓰지 마십시오. '욕쟁이 할머니 소머리국밥, 놀부 부대찌개'처럼 부정적인 어휘와 결합해도 잘만되지 않았느냐 오히려 ~ 임팩트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마시고 '합법적 새치기' 같은 역설 표현을 정말 쓰고 싶거든,  표현을 여러 사람에게 검토받아 보세요. 너무나 훌륭한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 함의나 맥락에 대해서  언어 감각이 의외로 매우 둔할  있습니다. 내가 사회와 사용자의 역린을 건드린 것은 아닌지,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파악할  없습니다. 검토해준 사람 중에  명이라도 '... 이건...'이라는 반응이면 쓰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에 가서 자기 전에 정말  표현 말고는  되겠냐고  번이고 다시 물어보십시오. 내가  아슬아슬한 표현에 딸려오는 모든 리스크를 감당할  있는지. 이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표현인지.

요컨대 UI 텍스트에서는 가급적 역설이나 반어는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서비스의 손해가 사용자에게 득이 된다는 (대륙의 실수 )이거나, 아님 서비스 스스로를 귀엽게 까는 경우(사장님이 미쳤어요 ) 아니라면 말이죠.(아니야 이것도 사실 별로야.  고리타분한 느낌이라고요) 받아들이는 사용자 쪽이 역설적 표현을 개성적이라고 느낄지, 불쾌하다고 느낄지 UX writer 입장에서는 당장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리스크가 있는 표현은 안 쓰는 게 낫습니다. 확실한 길이 있는데 어찌 위험한 길을 가시렵니까.


그리고 어떤 문장을 쓰더라도 다른 사용자나 다른 서비스를 우리 서비스와 우리 사용자 사이에 넣거나 상기하게 만들지 마세요. 내가 타깃으로  A라는 사용자를 승리자로 만들어 준다고 홍보하더라도, A 사용자는 항상 자신이 패배자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서비스를 쓰지 않으면 나는 경쟁에서 뒤처지게  거야... 이요. 이런 감정은 서비스를 괘씸하게 느끼게 만들죠( 지금  협박하니?).

 B라는 서비스를 언급하며 우리 서비스비교 우위만을 강조하면 B 서비스의 존재만 계속 떠오르게 될겁니다(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래도!!). 그냥 우리 서비스의 가치를 순수하게 강조해 보세요.


'이제 등수가 밀려나지 않아요'가 상기시키는 감정


지난 가을 한 서비스에서 가입 대기 중에 친구를 초대해서 친구가 가입하면 대기 순서를 앞으로 당겨주는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입장 대기 줄에 서있었는데 친구가 별로 없는 아싸에 소심한 I인 저는 그냥 순서가 쭉쭉 밀리더군요. 부끄러움이 많아서 애니팡 하트도 요청 못한 저로서는 당연한 결과지만... 내 잘못도 아닌데 자꾸 등수가 밀리는 걸 눈으로 보고는 서러움이 밀려들었습니다(친구 없는 게 죄냐...). 나는 아침 일찍 은행에 와서 번호표를 분명히 뽑았는데 아싸라고 계속 처리 순서가 밀리다니... 오프라인 은행 창구 경험이 상기되면서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새치기'란 단어가 떠오르려고 했어요.


서러운 건 서러운 거고 그 당시 화면 문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옥장판 다단계스러운 마케팅 이벤트를 안 좋아하는 소비자이지만, 회사의 녹을 먹는 라이터의 입장에서 내가 이 화면 라이팅 담당자면 어떻게 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아... 안돼 제발 '등수'라고 말하면 안 돼!


이벤트 메인타이틀을 개인적으로  썼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새치기를 떠올리지 않게 타이틀을 모호하게 뽑았습니다. 공유만 해서는 안되고 초대한 친구가 가입까지 해야 대기 순서가 조정되었겠지만, 그런 이야기까지  공간도 상황도 아니니까요. 사실 공유하면 어떻게 대기 번호를 올릴  있는지 바로 상상이 안되긴 하는데 상관없습니다. 일단 최대한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만한 어휘, 단초를 최대한 제공하지 말이야 합니다. 공유하면 대기 번호가 올라간다 정도로 모호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낫습니다. '번호가 빠를수록...'같은 문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있으나 마나  서브 타이틀이지만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입니다. 대기 번호 옆에 등급이나 석차를 나타내는 단위인 의존명사 '' 보는 순간 이거 경쟁이야, 새치기야라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합니다. 초대하면 등수가 올라간다는 ' A  > B '이란 화면 구성도 이런 연상에 한몫 단단히 합니다. 대기 번호 숫자에 어울리는 적절한 의존명사는 ''입니다. 그냥 '' 썼으면, 아니 아예 아무 의존 명사도  썼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논란 속에 이 이벤트가 급하게 종료된 후의 안내 문구를 보고 저는 약간 놀랐어요.

이제 등수가 밀려나지 않아요.

'등수'라는 단어는 '새치기'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민감한 어감을 가진 단어입니다. '~에서 밀려나다'라는 표현 역시 어두운 경쟁 사회의 단면을 상기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UI에서 사용 금물입니다.

급하게 이벤트를 종료해야 하는 상황은 십분 이해되지만 이렇게 써버리면 애초부터 사용자 등수밀려나도록 이 서비스가 잘못 설계되었다는 인상이 뇌리에 각인되어 버립니다. 차라리 아예  썼으면, 그냥 건조하게 '**서비스의 친구 초대 이벤트는 종료되었어요.' 쓰는  나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이벤트와 문장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과 여러 커뮤니티에서 설왕설래가 있었고, 저도 라이터로서 많이 아쉽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고 이런 리스크 있는 어휘를 정확하게 제외하고 라이팅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왜 이런 표현이 그대로 노출되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누가 위험한 시도나 기획을 들고 라이팅을 의뢰하면 보통은 진심 어린 눈망울로 '이거 진짜 해야겠어요? 이거 아닌  같은데...'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해요. 같이 일하는 영어 라이터들과 둘이 눈망울을 흐리며 말합니다. '... 이거 위험한데요... 이거는  위험하거든요...'라고요.

그리고 왜 위험한지에 대해서 라이터로서, 사용자로서 담당자를 설득합니다.

UX 라이터는 프로덕트 팀의 일원이고 UX 전문성을 갖춘 숙련된 리뷰어인 동시에 나름 객관적인 사용자입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를 용기 있게 피드백 줘야 해요.

'니 일이 아니잖아? 니 R&R이 아니잖아?'라고 그러면 그럼 이렇게 말해야죠.

'이게  일입니다.  기획이 문제가 있는지, 부실한 , 위험한지는  기능을 언어로 설명해야   확실히 드러납니다. 언어는 본질의 윤곽선을 또렷하게 그려내니까요. 이게 어떻게 표현될 수 밖에 없는지 한번 보세요.'라고요.

그러고 나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걸 해야겠다 하면 최대한 덜 자극적인 어휘로 기획이 가진 리스크를 커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UX 라이터는 프로덕트 팀의 일원이니까요.




오늘의 요약


사용자는 UI 텍스트에서 그 브랜드나 서비스의 생각, 철학, 입장과 의사를 파악합니다. UI 텍스트에서 문체와 어휘는 서비스 보이스와 톤,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중에서도 어휘는 그 어세와 어감으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 단어가 지니고 있는 뉘앙스, 사회적 아우라가 개별 사용자에게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몇 번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검토하고, 또 검수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용하는 어휘 풀도 엄격하게 잡아놓는 것이 좋습니다. 문서로 정의해도 좋지만 기억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UX 라이터는 자신이 다루는 언어의 문화권, 사회에서 무엇이 부정적인 이미지인지, 무엇이 사회의 금기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금기를 약간이라도 연상시킬 수 있는 단어는 서비스 언어 풀 근처에도 못 오게 해야 합니다. 서비스를 위험하게 할 순 없어요.

서비스를 어필할 때에는 우리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순수한 가치 그 자체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서비스와의 비교, 우리 서비스를 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타자화, 은근한 우월감 등은 사용자를 불쾌하게 만들 뿐입니다.




덧 1: 이 글은 박창선님의 훌륭한 글 '브랜드만의 말투를 만들어 봅시다(2)'를 보고 쓰게 된 글입니다. 글 중간에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 때에는 이런 단어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해요'라는 부분을 보고 너무 공감이 되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했습니다. 여러분들께도 강력하게 일독을 권합니다.

 

여러분, 에러 문구 몇 개 잘못 썼다고 서비스 절대 안 망합니다.

정말 서비스를 찌르는 건 몇 음절의 위험한 단어랍니다.




덧 2: 저는 이렇게 해라보다는 이것만은 하지 마라, 좋은 사례보다는 한 번 고민해봐야 할 사례로 실무 팁을 설명하는 편입니다. 하면 안 될 것만 몇 개 정의해두면, 그거 빼고 다 맘대로 하면 되거든요 : )

그런데 이렇게만 쓰면 '그럼 도대체 좋은 건 어떤 거죠?'라는 질문을 하실 것 같아서, 다음 글에는 좋은 어휘, 표현에 대한 사례를 몇 개 보여드리고 그게 왜 좋은지에 대한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그건 다음 달에, 다음... 달에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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