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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Jan 22. 2022

자잘한 이야기 몇 가지

'-하기'형에 대한 추가 설명 + LINE Bank 인터뷰

잘 지내시지요? 저도 잘 지내요.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_ _)

요즘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서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누에가 뽑아내는 1일 실 생산량이 한계가 있듯, 하루에 쓸 수 있는 글에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데 낮에 글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까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쓰고 싶어지지 않더라고요. 당분간 몸을 사리며 하던 일이나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꼼지락꼼지락 브런치용 글을 써둔 게 한 편 있긴 한데, 오늘은 그걸 마무리해서 올리기보다는 자잘한 이야기 두어 개를 뭉쳐서 포스팅할까 합니다. 이런 날도 있어야죠.

이번 글에서는 버튼의 '-하기'형에 대한 추가 설명과 LINE Bank UX writing 인터뷰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하기'형이 올 수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다.


가끔 지난 글을 반추하면서 '그때 제대로 설명을  했던가... 모자란  없었나...' 돌이켜 보는데 오늘 불현듯 '-하기'형에 대해 빼먹고 설명을    있구나!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낮에 리뷰하다가 비슷한 사례가 있어서  잔상이 남았던 모양입니다. 지난  하단에 추가를 할까 하다가 그냥 여기에 짧게 씁니다.


혹시 아직 '-하기'형에 대한 글을 안 읽으셨다면, 먼저 아래 글을 읽어 주셔요.


한국어 UX writing 개노답 삼형제 1편

개노답 시리즈 '-하기'형 CS


오늘 추가로 설명드리고 싶은 것은 명사형 전성어미 '-기'의 성격 때문에 '-하기'형을 쓸 수 있는 위치가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정해지지 않은 현재, 미래를 표현하는 명사형 전성 어미 '-기'


명사형 전성 어미 '-기'는 미정인 현재와 미래의 행위를 기술할 때 쓰입니다. 용례적으로는 서술 주체가 미래에 할 행위를 다짐, 기원, 예정할 때 쓰이고요. 이것이 가진 이 '미래성'때문에 '-하기'형을  쓸 수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과업의 시작 지점이지요.



'-하기' 버튼은 과업의 시작 부분에만 사용되는 것이 좋습니다.


버튼에 '-하기'를 쓰면 '우리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또는 '지금부터 게임을 과업을 시작하지'를 암시하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뒤에 전개될 여정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기'형 쓸 수 있다는 거죠.

   바꿔 말하면 상황을 종료하는 컨펌 팝업의 버튼 레이블이나 태스크를 최종 확정하는 버튼에는 '-하기' 어색하다  말입니다.

팝업 버튼이라도 뒤에 이어지는 플로우가 있는 게 명백하다면, 또 그런 플로우를 예고하기 위한 용도라면 쓸 수는 있습니다. '가입하기', '시작하기', '계속하기'같은 레이블은 비교적 덜 어색합니다. 왜냐면 명백하게 뒤에 과업이 이어질 것이니까요. 물론 2 버튼 팝업 버튼은 공간이 매우 좁기 때문에 그런데에 쓰는 건 개인적으로 추천드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쓰지 말라고 옷소매 잡고 말리기도 뭐해요.

 

자, 아래 6개 '-하기'형 버튼 레이블을 보고 적당히 출연 맥락을 유추한 다음, 아무리 봐도 쓰임이 어색한 버튼을 찾아보십시오. 정답은 댓글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품은?)


힌트: 버튼을 누르면 일이 끝날 것 같은 것을 찾으세요!



LINE Bank UX writing 인터뷰: 3개국 은행에 '언어 H-BEAM’을 세우다


이 브런치는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을 담는 공간이라서 회사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데, 오늘은 특별히 일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우연찮은 기회에 LINE Bank UX writing 대한 짧은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개발자님 인터뷰 중간 부분에 비루한 제가 살짝 묻어서 나갔어요. 사기 백이열전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附驥尾而行益顯)처럼 그야말로 천리마의 꼬리에 붙었습죠.


UX 팟캐스트에 출연한 것 외에는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좀 새로운 기분이었습니다.


이전 글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근데 그동안 IT 필드에서 UX writing이나 UX writer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고, 대외적으로 '내가 조선의 UX writer요'하고 쇼 오프를 안 하니까 UX writer들이 있는지 없는지 세상에 알릴 길도 별로 없었어요.

S전자나 L전자에는 저력 있는 writer들이 있는데 회사 보안 때문에 강호(?)에 잘 등장하시지 않죠.

그리고 무엇보다 UX writer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텍스트 양은 실로 엄청 많고, 많은 프로젝트들이 동시 다발로 의뢰되기 때문에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거든요. 매일매일이 붕어빵 UX writing 타이쿤 게임하는 느낌이라서 이 업무를 알리고, 직군을 홍보할 생각을 잘 못해요. 그냥 조용히 글이나 빨리 쳐내자 열심히 쓰자...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듯합니다.


근데 이번 LINE Bank 기사에 감사하게도 UX writing 관련 질문을 해주셔서,  일에 대해 말할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누군가 UX writing 대해서 궁금해 한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요.


골방에서 타자만 치는 UX writer들은  '저 여기 있어요'를 세 번씩 외쳐봅시다!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LINE Bank 프로젝트는 2019년 하반기부터 20년 중반까지 6개월 정도 전력을 다해서 매달렸던 작업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초창기에 조인했는데 당시는 하나하나 화면이 만들어지고, 각종 스펙들이 현지 로컬 오피스 쪽과 확인되어가면서 계속 변경되던, 정말 기획팀이 맨땅에 묘목부터 심고 계시던 때였거든요. 저는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어느  나라도 가본 적도 없는데, 3 나라 은행 앱을 동시에 writing 하려니까 처음엔  난감했습니다.

 

일단 분량에 압도당했습니다. 이체, 예적금, 더치페이  겹치는 UI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은행 3개잖아요. 매일 밥만 먹고 텍스트만 쳐내는데도  끝나... 이런 텍스트 화수분은 오랜만이었어요.

일단 3개 은행에 공통적으로 들어갈 가이드 텍스트를 보편적인 사용성에 집중해서 작성했습니다. 언어의 H-BEAM을 세웠어요. 코어(핵심 공통 텍스트)만 세우면 외장(마케팅 문구, 국가별 특화 스펙 문구)이야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참고로 이 3개 은행 앱에는 한국어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한국어는 그야말로 source  text였기 때문에, 저는 UI를 지탱하는 정보 전달체의 역할에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번역이 용이하도록 보이스와 톤은 모노톤으로 쓰고, 오로지 텍스트에 포함되는 정보의 양과 질,  UI 플로우 적합성만 신경 썼습니다.


당시 십여 분 정도였던 LINE Bank 기획자분들이 다들 너무 깔끔한 기획안을 주셔서 거기에 맞게 순조롭게 writing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 설계가 탄탄하면 writer는 너무 편하거든요. 반대로 IA나 레이아웃에 문제가 있으면, writer들은 괴로워하면서 UI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가 이렇게 되면 구차하게 설명을 길게 할 수밖에 없다, hierarchy를 제대로 안 설정해 주면 하단 메뉴명에 줄줄이 어휘 반복이 계속 생긴다, 이건 일반 유저가 도저히 이해 못 할 UI인데 writer가 말로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설계자에게 이런 말 해야 할 때가 제일 곤란합니다. 서로 낯 붉히고 싶지 않은데 IA의 큰 축이 레이블링 시스템이기 때문에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말을 안 하면 괴랄한 UI와 오묘한 텍스트 세트가 탄생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걸 내버려두면 그게 그냥 릴리즈가 된다니까요. 진짜로요!



고통받는 writer가 하는 일: 이 것(?)의 공식 명칭 짓기,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설명하기, 나도 사실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매력적인 거라고 감싸주기


근데 LINE Bank 작업할 때는 그런 문제가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리뷰하다가 플로우가 일관성이 안 맞아서 공통 텍스트를 적용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엣지/에러 케이스의 빠진 부분을 말씀드리면, 또 바로바로 기획안에 반영해주셨기 때문에 양이 많아도 할만했습니다.

3개국 은행의 공통 UI에는 공통 문형을 적용하고, 국가별로 분화된 스펙은 그 스펙대로 분기 쳐서 작성하고, 현지 특화된 상품/기능은  영어로 찾아가면서 영어 기준으로 적절한 표현을 넣고(한국어, 영어, 현지어 순으로 번역되어야 하니까 영어가 잘 번역될 수 있게 한국어에서 미리 표현을 찾아서 맞춰둠), 마케팅성 문구는 현지 로컬 오피스 의견에 따라갔습니다.

Batch 별로 쪼개서 제가 1차 작성을 하고, 기획자 한 분, 한 분과 마주 보고 앉아서 이슈 되는 부분을 재확인하고, 로컬 오피스에 표현을 문의하고, 답을 받아서 반영하고...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뭔가 엄청 빡센데 또 술술 잘 써지는 아주 신묘한 경험이었어요. 다 기획 덕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많은 걸 영어로 번역하고 감수하느라 우리 영어 writer와 Localization PM님이 엄청 고생을 하셨지만 (ㅠㅠ) 그렇게 꾸역꾸역 언어의 H-BEAM을 세우고 끝냈습니다. 지금은 로컬 오피스에 완전히 텍스트를 넘겨서, 저는 가끔 각 국가에서 LINE Bank가 자리를 잘 잡아서 잘되고 있다는 소식만 듣고 있어요.

2 전에 헤어진 서비스지만 멀리서나마 계속 응원하게 됩니다.


우스갯소리로 UX writer는 자기 자식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곤 해요.

거의 모든 서비스에 참여하지만, 어느 서비스도 내 것이 아니거든요.

'이거 내가 만들었어! 이 기능 담당은 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획자나 PO가 가끔 부러울 때가 있지만... 뭐 괜찮습니다. 이렇게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가끔 생존 신고를 할 수도 있고, 잘되는 서비스가 많아질 때마다 좋았던 기억,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맘이 몽글몽글해지니까요.

이렇게 오늘 LINE Bank 프로젝트를 추억하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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