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writing 개노답 삼 형제 (1): 버튼 '-하기'의 폐혜
세상 재미없는 금융 레이블 이야기를 3편이나 쓰고 나니까 이제 재미있는 거 하고 싶네요.
한국어 UX writing 개노답 삼 형제 시리즈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이 나라 UI text에 은근히 넓게 퍼져 있는 문제적 패턴, writing 계의 개노답 삼 형제 이야기는 누구와도 가볍게 나눌 수 있을 것 같고, UX writer 없이 혼자 일하는 주니어 기획자가 이 삼 형제만 기억한다면 최악의 서비스 글쓰기를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요.
오늘은 첫 번째로 한국어 UX writing 개노답 삼 형제 중 큰 형인 '- 하기'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원래 영어에서는 버튼에는 반드시 동사를 씁니다. 사용자에게 뭘 시키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버튼에 명사만 덜렁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동사 원형을 써서 액션을 명확하게 유도하곤 하지요.
반면 한국어는 이 자리에 동사 느낌 나는 명사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어 동사는 어미 활용을 하기 때문에 문장으로 쓰면 순식간에 길어지거든요.
일단 '해요, 합니다'를 버튼에 쓰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가로형 2 버튼 팝업에 잘 안 들어갑니다. 세로로 나열한 2 버튼에는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것도 중간에 조미료로 목적어나 부사 같은 거 넣으면 막 버튼이 터지려고 해요. (디자이너님... 미안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는 버튼에 보통 서술성 명사, 즉 동사의 성격을 가진 명사를 씁니다. 제 경험상 한 90% 정도가 그렇게 쓰는 거 같아요.
자, 그럼 위 이미지를 살펴봅시다. '취소', '확인'은 각각 사용자가 해야 할 동작인 '그만두다', '체크하다'를 의미하는 서술성 명사입니다. 그래서 버튼에 사용할 때는 그냥 그대로 바로 쓰면 됩니다. '취소/ 확인' 너무 간결하고 깔끔하죠? 군더더기가 없어서 읽는데 시간을 거의 들이지 않고 버튼을 탭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저 '취소하기, 확인하기'는 무엇인가요? 이건 진짜 쓸데없이 삽질을 해서 억지로 명사를 만든 거라고 보면 됩니다.
태초에 서술성 명사가 있었다.(취소/ 확인)
->혼자서 잘 있는 서술성 명사를 굳이 동사로 만든다.(취소하다/확인하다)
->이 동사에 명사형 접미사를 붙여서 다시 명사로 만들었다. (취소하기/ 확인하기)
아니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 각각 2음절씩 총 4음절이나 늘려야 하나요?
확실하게 텍스트 간결성을 해치기 위해서? 여러분이 사용자로서 컨펌 팝업을 봤을 때 어떤 레이블을 보고 더 신속하게 액션 할 수 있을지는 굳이 묻지 않을게요. 잊지 마세요. 같은 내용이면 짧은 게 최고입니다.
그럼 '더보기' '돌아가기' '되돌리기' 같은 레이블도 문제인 것일까요?
아닙니다. '-기'에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더보다' '돌아가다' '되돌리다'는 서술성 명사를 어간(동사의 핵심이 되는 의미 부분)으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하다'로 끝나지 않은 그냥 태생이 그런 동사예요. 그래서 이 동사들은 버튼에 들어가려면 명사로 변신해야 합니다.(feat. 명사형 접미사 '-기' 또는 '-ㅁ, 음')
원래 그냥 동사가 있었다. (돌아가다/더보다)
-> 버튼에 들어가기 위해 명사형 접미사를 붙여 명사로 만든다.(돌아가기/ 더보기)
혹시나 여러분이 궁금해하실까 봐 버튼에 음슴체 명사는 안 쓰고 '-기'형 명사를 쓰는 이유를 살짝 알려드리자면, 명사형 접미사 '- ㅁ' 이 아주 아주 미묘하게 과거를 의미하는 뉘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감'과 '돌아가기' 모두 명사입니다만, 속칭 '음슴체'가 과거 서술에 쓰인 용례가 좀 더 많아서, 미래의 액션을 지시해야 하는 버튼에는 '-기'형을 더 많이 씁니다.
만약 사용자에게 과거 행위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면 '-음'형을 쓰는 게 조금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래는 제가 대충 상상해 본 건강검진 문진 팝업입니다. 만들어낸 상황이지만 이런 케이스가 있다면 버튼에 '- ㅁ' 명사를 쓸 수 있겠습니다.
'- 하기'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간결성을 해칩니다. 굳이 명사를 버튼에 넣은 게 다 간결성, 길이 때문이었는데, 여기에 불필요한 '-하기'를 붙여서 다시 길게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버튼당 2음절씩 늘어나면 화면 내 복잡도 증가, 가독성 저하가 당연히 따라옵니다.
2. 변별성을 떨어트립니다. 화면 내에 버튼이 여러 개 있는데 그들이 모두 '작성하기, 확인하기, 삭제하기, 서명하기...'처럼 동일하게 '-하기'로 끝나면 의미 차이를 빠르게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일반적으로 형태가 다르면 의미 변별력이 높아져 빠르게 인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공통적 요소가 반복되면 무의식적으로 동일성이 상기되기 때문에 의미 변별력이 떨어지죠.
쉬운 예로 족보를 펼쳐놓고 돌림자 쓰는 친척들 이름을 쭉 읽다 보면... 김재경, 김준경, 김석경, 김명경...
누가 누군지 모르겠잖아요. 그냥 한 집안인가 보다... 그런 생각만 들죠.
하나 더 작은 문제를 지적하자면, '-하기'형을 많이 쓰면 약간은 어린아이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분명히 간결한 명사가 있는데 그 명사를 쓰지 못하고 굳이 동사를 활용해서 긴 명사를 만들어 쓰기 때문이죠. 뭐랄까,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아래 1,2번 문장 중 간결하고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무엇인지는 한국어 네이티브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취미가 무엇인가요?
1. 저는 요즘 산책을 매일 해요. 다녀와서 요리와 독서도 하고요.
2. 저는 요즘 산책하기를 매일 해요. 다녀와서 요리하기와 독서하기도 하고요.
'-하기'를 붙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내면 깊숙한 곳에 4음절을 맞추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시조, 가사 교육이 이토록 강력했던가...(아니, 이건 그냥 민족성인가?) 암튼 우리는 굉장히 4음절을 좋아하고 버튼에 4자를 넣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인의 기질을 타고나서인지 몰라도 라임(rhyme)이나 압운법(押韻法)을 구사해서 모든 버튼의 끝을 '-기'나 '하기'로 끝내고 싶어 해요.
그냥 '삭제', '추가' 이렇게 쓰면 뭔가 불안한가 봅니다. '삭제하기' '추가하기'라고 해야 막 안정적이고, 사용자가 저거 눌러줄 거 같고, 통일감이 있는 것 같고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세로로 2 버튼 레이아웃이 있을 때에는 가로로 버튼이 너무 기니까 양 옆에 공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그 공간을 막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거기가 너무 허전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저도 한국 사람이라서 어쩐지 44조 맞추고 싶은 마음, 훌륭한 래퍼처럼 라임을 맞추고 싶은 마음, 공간이 양옆에 너무 많이 남는 것 같아 불안한 그 마음 이해합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꾹 참으세요. '-하기'를 지우고 서술성 명사 2, 3음절만 남겨보세요. 간결하고, 가독성도 높아지고 무엇보다 버튼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입니다.
그래도 버튼이 너무 길어서 양쪽 공간 남는 게 너무 괴롭다면 차라리 톤 앤 보이스를 살려서 문장형으로 버튼을 쓰세요. 제 생각엔 그게 훨씬 낫습니다.
한국어 버튼에는 보통 간결한 서술성 명사를 사용합니다. 서술성 명사 2음절만으로도 충분한데도 억지로 '-하기'를 붙여서 억지로 명사를 만들어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기'를 반복해서 쓰면 텍스트 간결성, 가독성, 의미 변별성이 모두 나빠지게 됩니다. 그런 짓을 왜 하시렵니까?
4.4조 4음절 선호는 민족성 아니, 그저 익숙함 때문입니다. 간결하고 빠른 인지가 가능한 짧은 텍스트를 작성합시다. 긴 버튼에서의 양쪽 여백이 신경 쓰인다면 톤 앤 보이스를 살려서 문장형 버튼을 적용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전체 플로우 앞단에서 '-하기' 한 두 번 쓴다고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막상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표현을 쓰고 싶은 순간에는 쓰세요. 저도 가끔 불량식품 먹듯 쓰고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다만 모든 버튼을 '-하기', '-기'로 끝내려고는 하지 마세요. 서비스 고유의 스타일이라고 하기에는 마치 택배 상자에서 꺼낸 최신형 아이패드에 박스 포장 테이프가 철썩 붙어서는 덜렁거리는 느낌이 나니까요. 그런 군더더기를 붙이기엔 당신의 버튼은 너무나 소중하답니다.
'-하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2개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