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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Jun 05. 2016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1034회를 혐오한다

썸day 열일곱번째 날

어째서 <그것이 알고 싶다> 제1034회 '검거된 미제사건-강남역 살인사건의 전말'은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일까. 아니, 이 점을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어째서 모든 책임을 남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일까.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일베'의 악행과 불합리성을 시원하게 고발한 제작진이, 이번에는 마치 '메갈'을 대변하는 것 같은 내용을 얘기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애청해 온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이번 방송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야기는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23세 여성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됐다. 가해자 김씨는 조현병, 우리가 흔히 정신분열증이라 부르는 질환을 앓고 있었다. 부모님이 권하는 치료를 거부, 가출한 채 반년 이상이 지나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상태였다. 수중에 있던 돈이 떨어지자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했고, 그 사이 우리에게는 일상이지만 조현병 환자로서는 짊어지기 힘든 상황들과 맞닥뜨렸다. '여성들이 나를 해하려 한다'는 망상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지난 5월 17일, 채 만개하지 못한 '인생 꽃봉오리'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런데 이 지점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이야기는 꼬이기 시작한다. 사건 당시 CCTV 속에서 울부짖던 남자가 '남자친구'가 아니었다는 데 주목하더니, 기어코 화면 속 남자를 카페로 불러내고야 만다. PD 앞에 앉은 그 남자는 피해자의 선배라고 했다. 대학 때 피해자와 친분이 있었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우연히 다시 연락이 이어진 김에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그러던 중 피해자가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일어섰다고 했다. 피해자가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고, 그래서 화장실 가는 그녀를 별 걱정없이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그 사달'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태클. 왜 제작진은 굳이 그 선배를 불러내야 했을까.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피해자 곁에 있었던 그의 말을 들어봐야 했다'는 이야기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가 왜 강남역에 나왔는지, 왜 남자친구를 두고 그 선배와 몰래 술을 마셨는지'가 아니라, '이 사건이 정말 여성 혐오에 의한 범죄인지,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이기 때문이다. '전후 사정을 안다'는 핑계로 그 선배를 불러낸 행위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그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사건의 핵심과도 전혀 무관한 행위다. 심지어 방송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했을 때도 불필요한 얘기다. 결국 선배를 영상 속에 끌어들인 이유는 분량을 확보하거나 혹은 방송을 자극적으로 꾸미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김상중 씨의 말대로 이 부분은 피해자의 사생활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비밀에 부쳐졌어야 했다. 가해자가 김 씨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피해자를 강남역으로 끌고 와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지 않는가?


그 선배와 피해자 남자친구, 피해자 부모의 한 맺힌 목소리가 전파를 탄 뒤, 화면은 갑자기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클로즈업한다. 이와 함께 화면은 최근에 큰 이슈가 된,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에서의 크고 작은 다툼으로 옮겨 간다. 한쪽에서는 "여성이기에 죽어야 하냐"는 시위자들의 절규가, 다른 한쪽에서는 "죽음을 애도하고 재발방지책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죽은 건 아니다. 가해자는 조현병 환자였다"는 주장이 날카롭게 교차한다. 말싸움뿐만 아니라 몸싸움까지도 일어난다.


이 즈음부터 이번 방송은 편협하고 옹졸한 남성관 및 여성관으로 사건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추모제를 혐오제로 만들지 말라'는 피켓 문구를 보여주며, 김상중 씨는 말한다. "현장에 모인 여성들은 이런 주장이 어이가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리고 '추모집회 참석 시민'이라는 사람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사실 여기에서 누구도 '나는 남자가 싫어요'라고 말한 사람은 없거든요. 자기들이 반을 가르고 이렇게 편 갈라서 싸우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면서 왜 그 책임은 또 여기에 모여 있는 많은 다수의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느냐는 거죠."


추모집회 참석 시민의 주장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왜 너희들이 와서 난리를 치느냐'라는 거다. 그런데 과연 이 주장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수천 장의 포스트잇에는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는 글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오로지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죽었기 때문에 모든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다'라는 취지의 문구도 꽤 많다. 실제로 방송에서 비춘 한 포스트잇에는 '살女주세요. 너는 살아男았잖아'라고 쓰여 있다. 추모집회 참석 시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한 뒤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런 시선이 불편한 일부 남성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 과연 잘못인가? 물론 '핑크코끼리'처럼 마치 혐오 철폐,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척하며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사람들도 있다.(피해자 남자친구가 핑크코끼리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한다.) 허나 그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남성 및 여성 혐오 경계'를 주장하는 남성들을 모두 일베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이고 보편타당하기까지 하다. 나 또한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는 바다. 물론 뒤틀린 생각을 가진 일부 남성들이 '그 시간에 거기 있었으면 정상적인 여자가 아닐텐데', '인구 줄었네', '몇 명이 더 먹을 수 있었는데'와 같은 더러운 한 줄을 마치 배설하듯 써갈기고 간 점은 유감이다. 허나 그런 빌어먹을 남성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번 사건으로 남성 혐오를 부추기는 여성들 또한 극히 일부이듯이. 


요는 이렇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있고, 그 주장이 패륜적이지 않고 타당하다면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실효성 있는 대책과 전 사회적인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다분히 여성의 입장에 치우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충격을 부각시키면서, '여성=피해자'의 왜곡된 등식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여성들이 겪고 있다는 위협과 공포에 대한 사연을 모았다고 했다. 일주일만에 250여 명의 여성들이 가슴 아픈 고백을 보냈다고 했다. 구구절절하고 가슴 미어지는 사연이 나온다. 사춘기 때부터 발육이 남달라 성추행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이야기부터, 친오빠가 열댓 번 성추행을 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그 자체로는 남자인 나로서도 참으로 고통스럽고 쉬이 헤어나오기 힘든 얘기들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여성으로부터 성범죄를 당한 남성들 사례가 소개된다. 그들도 힘들었지만, 남성이기에 주변으로부터 '왜 그러고 사냐'는 핀잔만 들었다는 얘기. 그런데 사연이 소개된 뒤 김상중 씨가 이어가는 말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보신 내용은 남성의 경험담인 것 같지만, 우리들이 직접 만난 여성들의 실제 음성 파일을 변조해서 남성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한 후에, 남자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남성의 경험담처럼 재구성한 겁니다. (중략) 남성 여러분, 불쾌하셨습니까?"


여기서 두 번째 태클, "네, X나게 불쾌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왜 이렇게 이야기를 편향적으로 끌고 가는 것일까. 여자들은 알고 공감하고 경험하지만 남자들은 좀처럼 알지 못하는 이야기라니. 대한민국 여성들 누구나 성추행 경험 한 번쯤은 가지고 있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남성들 대부분이 성추행 가해자라는 말일까. 사연 소개에 앞서 김상중 씨가 꺼낸 전제부터가 틀려먹었다. 이 말을 들은 친한 누나가 분통을 터뜨리며 카톡을 보내왔다. "그럼 남자들만 알고 여자들은 모르는 얘기는 왜 소개 안 해줘?"


또한 피해 여성들의 사연을 남성이 당한 것처럼 꾸며 방송에 내보낸 것은, 명백히 '여성=피해자' 등식을 강화하려는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희는 이런 얘기 당해봤냐, 자식들아? 안 당해봤으면 말을 말아."라고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렇게 나오면 치사하게 군대, 천안함, 남성으로서의 삶의 무게감 등을 늘어놓으며 종국에는 "너희는 왜 군대 안 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다. 어찌 <그것이 알고 싶다> 정도 레벨의 방송이 이토록 편협한 시각을 견지할 수 있을까. 어찌 착하게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99.9%의 남성들을 이토록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할까. 놀랍기만 하다. 


지금의 사례와 비슷한 얘기 하나 하고 넘어가자. 여기 한국군으로 인해 50년간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은 80여 건에 걸쳐 9,0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올해는 그중 최대 규모인 '빈안학살'이 일어난 지 꼭 50년 되는 날. 당시 사건의 생존자 응우옌떤런 씨는 "한국 정부가 이 일에 대해 책임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옥 같은 상황을 몸소 겪었지만 "한국인은 모조리 잠재적 학살자들"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때 그 사람들이 그랬을 뿐,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인을 싸잡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는 않는 것이다. 머나먼 곳의 베트남인이 이럴진대, <그것이 알고 싶다>는 왜 이러는 것일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방송은 기어코 막장으로 치닫는다. 한 가지 실험을 한다며, 20대 여성을 강남역 번화가에 홀로 걷게 하고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걸어가자, 남성들이 힐끗 시선을 준다. 날이 어두워지자 술 마신 일부 남성들이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말을 건다. 때로는 팔을 잡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당기는 남성도 있다. 6시간 동안 다가온 남성은 총 8명. 실험이 끝난 후, 그녀는 소감을 말한다. "따라오는 것도 무섭고, 말을 거는 것도 무섭고, 특히 터치하는 건 정말 불쾌한 것 같아요."


여성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일부 남성들의 행동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은 어떤 시각으로 보든 잘못된 행동을 했다. 그런데 제작진은 그 해결책으로 얼토당토않은 방도를 제시한다. 그런 잘못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방관하고 묵인하는 대다수 남성들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미친, 싸움날 일 있냐?" 이것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가 아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방어다. 제작진이나 김상중 씨에게 묻겠다. 과연 당신들은 열이면 열, 술 취한 남성에게 가서 "당신 지금 성희롱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신들도 하지 못할 해결책을, 그것도 해결책이라며,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서 종국에는 남성들을 바꿔야 한다며,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제시하는 이번 회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라고 인정할 수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 혐오로 인한 범죄가 아니다. 남성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녀간의 다양한 논의가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보다 평등한 시선과 남녀차별적 구조 타파, 그리고 그에 따르는 대책이 뒤따라야 함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허나 이를 마치 "남성이기에 넌 잠재적 가해자다. 너는 모르는 여성들의 억울한 세계가 있다"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방송 말미, 김상중 씨는 이런 말을 한다. "무지보다 더 무서운 건, 알면서도 침묵하는 다수입니다.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구조 속에서 일상적으로 당하는 비하, 조롱, 폭력에 대해서 우리 남성들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남성이니까 당연히 할 수 있고, 그래서 그것들을 서로 암묵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폭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약자인 흑인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마틴 루터킹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상처가 되는 것은 적의 말이 아니라 친구의 침묵이다.' 그 침묵의 결과로 우리의 어머니, 아내, 혹은 딸들이 희생자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아버지와 형제, 그리고 아들들이 그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분연히 일어서서 반박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려 하지 않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여성들과 얘기하고 사회 구조를 바꾸려고 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당한다는 비하, 조롱, 폭력은 생각보다 일상적이지 않으며, 비하, 조롱, 폭력에 시달리기는 남성들도 매한가지입니다. 만약 내가 나서서 해결되는 상황인 동시에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남성들은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또한 남성들은 암묵적으로 폭력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내, 딸들이 희생자가 될 수 있듯, 우리의 아버지와 형제, 아들들도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남녀 평등을 얘기하거나 사회의 차별적인 구조를 비판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정작 그 화살은 남성에게로 향하는 당신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성을 역차별하는 언행과 처사임을 힘주어 말합니다. 이번에는 당신과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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