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day 열여섯번째 날
햇살이 핥고 지나간 몸매가 경쾌한 바람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요염을 가득 머금은 그 몸짓에 차마 눈 뗄 수 없어 고개가 등허리를 향해 한없이 돌아가고, 얼빠진 턱이 지면을 향해 끝없이 추락한다. 손가락 뻗어 매혹적인 그 허리춤, 밤새도록 더듬고픈 충동에 빠진다. 아, 나는 그녀의 속살을 탐하고 있다. 음흉한 눈빛으로, 떨리는 손끝으로, 닭살 돋은 피부로, 예민해진 세포 하나하나로, 뉴런이 주고받는 짜릿한 전기신호로, 한껏 뜨거워진 명치께로, 절정을 향해 고동치는 심장박동으로. 다시 말해 모든 것 다 바쳐.
이 모든 행위는 명백히 더러운 관음증이되 성범죄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나에게는 그녀라고 불리나, 기실 성(性)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불쑥 나타나 오감을 홀리다가 또 다시 불쑥 사라지는 나의 한시적 연인, 사월의 보라매공원. 그녀와의 네 번째 데이트를 즐기며, 나는 요즘 황홀경에 빠져 산다.
바지 속 대신 머릿속에 느낌표를 세운 채.
사월의 그녀는 섹시하다. 푸른 나뭇잎 블라우스에 색색의 꽃무늬 미니스커트를 차려입곤, 풍만하면서도 잘빠진 맵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들어갈 덴 들어가고 나올 덴 나온 아름다운 입체감에 퓨즈가 나간다. 뇌쇄적이면서도 싸 보이지 않으면서, 기특하게도 생기가 마구 넘친다. 옅은 하늘빛으로 염색한 머리칼은 끝도 없이 투명하고, 목덜미에 바른 향수에서는 싱그러운 풀내음이 휘발한다.
한여름의 그녀는 살진 몸을 가누지 못해 삐질삐질 땀만 흘려대고, 낙엽 질 무렵이면 우수와 고독에 젖어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동장군과 하나 된 그녀의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없어 내 마음을 찢어놓고, 벚꽃 만발할 때의 청순한 그녀는 이성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부족하다. 하여 꼭 이때, 사월이라야만 한다. 그래야 그녀의 섹시한 자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사월의 그녀에게 안달이 나, 멀리 보고, 자세히 보고, 만져 보고, 쓰다듬어 보고, 함께 사진 찍어 보고, 웃음 지어 보고, 향기도 맡아본다. 물론 그들과 다르게, 나의 안달남이 그녀의 섹시에서 비롯됨은 두말할 것 없다. 신사다운 삶은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오로지 본능을 탐침봉 삼아 그녀를 샅샅이 탐해 나간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힐끗거리며 그녀의 애를 태우고, 사람들이 쉬이 발견하지 못하는 은밀한 성감대를 찾아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 곧 희열이 최고조에 이른다.
롤러코스터 같은 사랑이 끝나고 나면, 가만히 그녀 곁에 머문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쾌락이 불러온 풍기문란은 고이 접어두고, 그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살며시 눈을 감는다. 정성스런 애무에 흠뻑 젖은 이마를, 그녀는 산들거리는 손길로 슬쩍 어루만져 준다. 영감은 이 지점에서 피어난다. 본능의 자리를 대신 꿰찬 감성으로, 그녀가 들려주는 자장가 같은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따스한 품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음성이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그녀에게로 더욱더 파고든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답이 바로 그곳에 있다.
그녀는 나의 섹시한 뮤즈다.
얼마 뒤면 필시, 미련 한 조각 없이 훌쩍 날 떠날 사월의 그녀를 위해, 오늘은 나와 그녀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기로 한다. 저급한 표현을 감안하기에는 이 사랑이 너무나 본능적이고 선명하기에, 이 폭발하는 감정을 꾹 참을 만큼 양반도 못됨을 잘 알기에, 그저 느껴진 대로 그녀가 내게 준, 내가 그녀에게 준 그대로를 옮겨 적는다.
이 순간, 공교롭게도 이어폰에서 <유레카>가 흘러나온다.
그녀를 찬양하기에 부족함 없는, 찰진 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