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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Sep 18. 2017

오프 더 레코드

썸day 스물두 번째 날



1.

혹시 이런 비유를 하면 조금이나마 공감하려나? 아끼고 또 아끼면서 정말 필요할 때만 쓰고 다니던 체크카드가 어느 날 갑자기 두 동강 나버린 거예요. 그 안에는 내 전 재산이 있어. 그런데 은행에 가서 재발급해 달라고 하니 안 해준대. 오직 너만을 위한 단 한 장의 카드라 똑같이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래서 ‘그럼 내 돈은요?’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대. 그냥 다 날아가 버린 거예요, 단 한순간에. 내 평생을 두고 모아 온 피 같은 재산인데, 이제 좀 살만 해서 통장 들여다보면서 행복도 좀 느끼고 하려는 찰나에 말이야. 이천십육년 시월 십일일이 내게는 딱 그런 날이었어요.



2.

전화 받고 정신없었지. 회에 소주 나눠 먹던 일행들은 흐물흐물한 내 양 어깨를 붙잡고, 한 사람은 울고, 한 사람은 진정시키려 애쓰고. 그렇게 서귀포 중문에서 제주공항까지 택시로 쏜 거예요. 가는 내내 현장에 대신 가 있던 형한테 물었어. 당신이 하는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고, 이게 정말이냐고, 말이 되는 일이냐고. 내게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공항에 도착하니 밤 열 시쯤 됐더라고. 항공사가 다 문을 닫았어, 나는 당장 서울로 날아가야 하는데. 그런데 딱 한 군데, 이스타 항공만 열려 있더라고요. 그것도 문 닫으려는 걸 겨우 붙잡은 거야. 막 일어서려는 직원 붙잡고 하소연했지. 제발 표 한 장만 달라, 반드시 가야만 할 사정이 있다. 옆 직원은 내 얘기를 듣더니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더라고. 그런데 없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아니다, 내가 봤다, 몇몇 비행기가 안개로 연착되지 않았느냐, 그중에 이스타 항공 비행기도 있더라. 제발 태워 달라, 나 지금 못 가면 죽는다. 십 분을 미친 듯이 하소연하고, 협박하고, 울고불고, 아무튼 그런 난리는 생전 처음 떨어 봤어요. 


와, 섬이라는 게 그런 공포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 거예요. 이거 못 타면 난 내일 아침까지 꼼짝없이 여기에 발이 묶인다, 이 생각을 하니까 정말 미치겠는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 누가 저기서 뚜벅뚜벅 걸어와요. 아마 직급이 높은 사람인가 봐. 그런데 그 사람이 곧장 표를 알아보라고 그 직원한테 시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같이 갔던 일행 중에 한 명이 이스타 항공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했더라고.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고맙죠. 그래서 겨우 비행기 잡아타고 열두 시쯤 김포공항에 떨어졌어요. 가는 내내 옆 사람 붙잡고 이거 꿈 아니냐고, 미친놈처럼,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던 게 기억나.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힘들어요. 



3.

바로 택시 잡아서 경찰서로 갔죠. 현장 다 처리했다고, 일단 거기로 오라는데 내가 그 집에 가서 뭘 더 하겠어요. 갔더니 형이랑 형수가 조사 받고 있는 거야. 왜 그 시간에 그 집에 갔냐. 친한 동생이 전화해서 가 봐 달라고 해서 갔더니 그렇게 돼 있더라. 거기에 걔 엄마도 있었는데 역시 조사 받고 있더라고. 그 다음이 내 차례구나, 하고 구석 자리에 앉았죠. 그런데 막상 서울에 오고 보니까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순식간에 가라앉더라고. 아마 이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 거짓말이라고, 나 여기 있다고, 장난이었다고, 그런데 도가 좀 지나쳐서 여기까지 왔다고, 그러니 화내지 말라고. 그 얘기 듣고 차라리 화냈으면 싶었어. 너 때문에 모처럼 떠난 제주도 출장 다 망쳤다고, 나 이제 거래처 사람들 어떻게 보냐고, 몇 년을 같이 해 온 사람들인데 내 입장이 뭐가 되냐고, 횟집에서, 택시에서,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다시 택시에서 얼마나 지랄 발광을 하며 왔는지 네가 아느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조사를 받기 시작하니, 아니더라고. 다 사실이더라고. 그 애 유서가 경관 앞에 복사돼 있더라고. 한눈에 보기에도 그 애 글씨체더라고. 술 잔뜩 먹었던 그날 새벽에 썼을 법한, 딱 그렇게 마구 갈겨쓴, 바로 그 애 글씨더라고요.



4.

시월인데 콧잔등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더라고요. 뭐가 잘났다고 저만 혼자 한겨울인 건지. 이 미터쯤 되는 차디찬 철판 위에 가만히 누워 있는 그 모습을 보는데, 처음에는 밀랍 인형 아닌가 싶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이고, 진짜구나, 가슴이 무너져 내렸죠. 걔 엄마는 이미 고개를 돌렸고, 천안에서 택시 타고 날아온 친동생은 고개를 떨궜고, 나마저 피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등을 한 번 보였다가 다시 그 애 쪽으로 돌아섰어요. 가로세로 두 뼘만 한, 그 시커멓고 깊은 구멍 안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어요. 그리고는 동네 병원 장례식장을 알아보니 자리가 꽉 찼대요. 내일이나 빠진다나. 하릴없이 그 애 집으로 갔죠, 셋이서. 갔더니 술병들이 사방으로 뒹굴고 있고, 거실 한편에는 그 애 수습할 때 자르고 남은 옷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쪽도 난리였어요. 그 정신에 얼추 정리를 끝내니까 새벽 다섯 시야. 동생은 출근해야 한다고 다시 천안으로 내려가고, 그 애 엄마랑 나랑 나란히 침대에 누웠죠. 그 애 죽은 곳에서 그 애 엄마만 홀로 놔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잠이 오나. 피곤에 절어서 잠깐 눈 붙이면 목이 조여 와서 깨고, 안 자려고 부단히 애쓰면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고.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졸며 깨며 반복했어요. 그런데 그때 마지막 꿈에 뭐가 보였는지 알아요? 콧잔등 서리, 그 서리가 보이더라고. 그걸 치워줬어야 했는데, 코 시릴 텐데, 가뜩이나 추운 곳에 있는 앤데, 그 콧잔등에 손을 뻗을 용기를 왜 못 냈을까. 오 년 동안이나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것만 털어줬어도 마음이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5.

그 뒤로 사흘은 내리 정신없었어요. 장례식장 잡으랴, 우리 부모님한테 알리랴, 부고 전하랴, 상주 노릇하랴, 장내 물품 관리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지. 혼자 버둥거리다가 하도 안 돼서, 조문 온 아는 동생 한 명 붙잡았어요. 너무 힘드니 방명록이라도 좀 붙잡고 있어 달라고. 안 돼 보였는지 선선히 그러겠다고 해 줬어요, 그 녀석. 지금도 늘 고마워요. 


지금 와서 또렷하게 생각나는 건, 정확하게 두 번 울었다는 거. 입관식 할 때 그 애 이마에 손 얹고 한참을 쓰다듬으면서 오열했고, 장례미사 때 이제 정말 가는구나 싶어서 미친 듯이 눈물이 나더라고. 그리고 또 하나, 그 애가 마지막으로 남긴 하얀 재가 담긴 나무상자를 두 손으로 잡았는데 자칫 놓칠 뻔했어요, 너무 뜨거워서. 몇 시간 전에 너무 울어서 눈물은 안 나는데 마음이 무척 아리더라고요. 입관식 때 그렇게 차갑던 애가 그때는 한없이 뜨거워져서 나오니까, 그 극명한 온도 차이, 너무도 이질적인 손끝 감각이 서글퍼서. 사실 난 굉장히 겁쟁이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항상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 무서움이 사라진 것 같아요. 아, 죽음이란 이런 거구나. 한없이 차가워졌다가 한없이 뜨거워져서 가는 거로구나. 사람이 죽어서 불타면 남는 건 그저 재 한 줌뿐이로구나. 이제 이 세상에서 나에게 무서운 존재는 딱 세 가지밖에 없어요. 사람, 돈, 그리고 벌레. 마지막 게 좀 튀나? 어쩔 수 없죠, 사실인데. 그런데 그 애의 죽음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진짜는 그 뒤에 있었어요. 내가 알고 있던 그 애가, 사실은 그 애가 아니었다는 거. 난 그 애를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십중팔구는 내가 전혀 모르던 또 다른 그 애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거였어요. 



6.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여기까지예요. 더 이상은 말하기 싫어요. 당신이 대답을 나에게 강요할 권리도 없고요. 딱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그 애의 삶이 너무나도 가여워서. 그리고 그 애를 안다고 자신했던, 교만하기까지 했던 나 스스로가 쪽팔려서. 마지막으로 그 일을 입에 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작업이라서. 앞으로도 절대 말 안 할 거야, 절대.



7.

그 죽음 이후 내 삶이요? 많이 바뀌었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가장 큰 변화는 불안감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 어떤 일에 관계된 것이건 상관없이 이제는 불안하지 않아요. 설령 죽을병에 걸린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할 것 같아. 물론 막상 닥치면 어떨지 모르지만, 아무튼 불안하지 않아요, 모든 측면에 있어서. 하도 말이 안 되는 일이 겹치고 겹쳐서 갑자기 들이닥쳤기 때문에,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난들 이보다 불안해질 수 있을까 싶은가 봐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불안함이 사라지니까 일이 더 잘 되더라는 거야. 프리랜서의 최대의 적은 일감 줄어드는 것도, 갑질도 아닌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인데 이제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면 그뿐이지. 그러다 보니 결과물도 보다 빨리, 보다 퀄리티 높게 뽑아낼 수 있는 것 같고요. 자연스럽게 일거리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일 겪으면서 느낀 점 하나가 더 있다면,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좀 있구나, 하는 거였어요. 내가 원래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보니 친구가 별로 없는데, 그 별로 없는 친구들이 그래도 힘이 돼주더라고. 워낙 사이좋은 우리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 된 건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고요. 그래서 그 일 겪고 나서 참 불행했는데, 지금은 일도 최선을 다해 할 수 있고 나름대로 사랑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행복해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만 더해진다면 딱 좋을 텐데. 그 애 죽은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아직 이른 거 아니냐고요? 당신이 내 상황을 그대로 겪어본 뒤에도 그 소리를 할 수 있다면, 그 반론 겸허하게 받아들일게요. 그런데 아마 쉽지는 않을 걸요, 그 누구라도. 누가 욕해도 난 당당해요. 그렇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나 애인 생겼으면 좋겠고, 만약 생기면 정말 모든 마음 다 바쳐서 사랑해 줄 자신 있어요, 진심으로. 



8.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얘가 왜 이제야 이런 소리를 늘어놓을까 싶겠죠. 어차피 지났는데 좋은 일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면 어때서,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느꼈어요. 이 일을 어떤 형태로든 글로 풀어내야만 내 상처가 진정으로 아물 수 있다는 걸. 결국 내 본류가 글이니까 치료제도 글인 셈이죠. 그래서 내 치부라면 치부일 수 있는 이 이야기를 두서없이 주절거리는 거예요. 


이 고단한 이야기를 듣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고민도 약간은 했어요. 안 했다면 사람이 아니지.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이 일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되면 뭐든지 시도해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고, 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예요.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떠들어 봤자, 그런 큰일을 당했는데 작은 트라우마 정도는 있을 것 아니에요? 물론 지금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그래도 좀 더 열심히, 더 멋있게 살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다른 이유나 의도는 티끌만큼도 없어요. 만약 이런 기미를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내 앞에서 대놓고 날 욕해도 좋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이 친구가 잘 살아보려고 버둥거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냥 나 만났을 때 어깨 한 번 툭 다독이고 지나가 줄래요? 그러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아. 물론 애원하는 것도,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만요. 그냥 내 심정이 그렇다고요. 




자유기고가 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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