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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Aug 28. 2018

상실

썸day 스물세 번째 날



1. 

장대비가 몰아쳤다. 나는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수족관 속 광어의 크기는 전만 못했다. 흐물흐물한 움직임, 느릿느릿한 뻐끔뻐끔, 초점 없는 눈동자. 누가 봐도 양식이었다. 자연산만 고집하던 평생 촌부가 갑자기 장삿속이 늘었을 리 없었다. 전에 없던 이물감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래, 마땅히 보여야 할 게 보이지 않았다. 닳고 닳아 듬성듬성한 이가, 시간이 켜켜이 쌓아 놓은 검은 주름이, 연두색으로 빛바랜 새마을운동 모자가, 알싸하게 짓쳐들어오는 술 냄새가,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서 사람 좋게 웃던 그의 의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남편은, 죽었다.



2. 

우리가 오면, 그는 유난히 활짝 웃었다. 술 깨나 마시는 네 식구 옆에서 알짱거리면, 우리는 어김없이 잔을 내밀었다. 소주, 막걸리, 맥주, 알코올이 함유된 액체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넙죽넙죽 받아 마셨고, 때로는 숭어회며, 멍게며, 개불이며 우리 식탁에 놓여 있던 것들을 마치 제 것처럼 입에 넣었다. 우리는, 나는 그가 싫지 않았다. 평생 바다를 누비며 그을린 거뭇한 피부가 멋졌고, 늘그막에 손님과 어울리기로 소일거리 하는 넉살이 부러웠으며, 또 술 마신다고 횟집에 쳐들어와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고 가는 그의 평생지기의 걱정 어린 역정이 정겨웠다. 그가 자인하든 안 하든, ‘저렇게 늙어 보고도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인네였다.



3. 

고로 그 항구는 곧 그였다. 그는 곧 그녀였고, 둘이 운영하는 수산물 점포였으며, 늘 거기 가면 있는,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 있으면 그녀에게서 술 마시는 근황이라도 전해 듣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일 년 됐어요. 이틀 전에도 그이 친구들이 왔다 갔는데….” 그녀의 말줄임표를 어떤 말로 채워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붉은 눈시울이 흐느낌으로 변했다. “열흘 내내 밥도 안 먹고 술만 마시더니, 어느새 쓰러져서는 세 시간 만에 갔어요.” 옷깃으로 눈가를 훔친 그녀가 소곤거렸다. 누가 들으면 안 되는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더 이상의 헛된 위로를 거부하듯이, 나만 겨우 들릴 듯 아주 조심스럽게.



4. 

수족관 속 광어는 앞으로도 양식일 것이다. 

그녀의 자연산은, 이미 일 년 전에 멸종됐다.



5. 

“조만간 가족이랑 다시 올게요.” 수산물 도매시장 한편에서는 어느새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일이 시작됐다는 신호였고, 나는 가야 했다. 어떻게 대화를 끝맺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무심결에 이 말이 나왔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인 뒤 돌아섰다. 습기 먹은 비린내가 어깨를 짓눌렀다. 멍하니 일터로 걸어가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뼈저리게 후회했다. 


“아, 괜히 꺼냈다, 가족이라는 말.”





자유기고가 강진우

blog.naver.com/bohemtic

bohemt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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