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day 여덟째 날
불면증에게 괴롭힘 받다가 문득 눈을 뜬다. 으레 집어 들곤 하는 리모컨의 고무 감촉이 지겹다. 한동안 미뤄뒀던, 먼지 한 페이지의 무게가 더해진 책 한 권을, 켜켜이 쌓인 책무덤 한가운데서 겨우 끄집어낸다. 형광등을 반딧불 삼아, 따스한 이불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망막에 새겨나간다.
하는 일이 그런지라, 감히 대문호의 문장을 이리저리 고쳐보기도 한다. 여기는 주어를 빼면 문장이 더 간결해질 텐데. 이 단어 대신 저 단어를 집어넣으면 어땠을까. 건방진 눈빛으로 진도를 빼나가다가 한순간 명치께가 뻐근해진다. 뜨겁게 달궈진 쇠꼬챙이가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기분이다. 이럴 땐 어쩔 도리 없이 컴퓨터를 켜야 한다. 노곤함으로 발그레해진 눈알의 뻑뻑함도 전원 버튼으로 향하는 왼쪽 검지를 막을 길 없다.
세월의 마찰력으로 여기저기 해진 의자에 털썩, 소리가 나게 앉는다. 왜 나는 이 새벽에 이곳으로 향했는가. 내 손가락은, 내 전두엽은, 나의 뜨끈한 명치께는 무엇을 쓰려 하는가. 윈도우 로고가 명멸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묻는다. 늘 그랬듯 답이 안 떠오른다. 허나 여유 모르는 본성은, 맹수가 맹렬히 짓쳐드는 듯 허겁지겁 몸을 놀려, 컴퓨터가 채 안정을 찾기도 전에 한글 프로그램을 더블클릭한다.
무(無).
LED 모니터가 출력해낸 화면은 휑하기 그지없다. 텅 빈 무언가를 대변하는 순백의 바탕과, 그 위에서 외로이 깜빡거리는 커서만이 존재할 뿐이다. 뭘 써내려가야 할지 이정표를 정해놓지도 않았으면서, 분명 키보드에 열 손가락만 올려놓으면 뭔가를 순식간에 써내려갈 줄 알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아니, 그 무엇보다 고되고 지친다.
하필 이런 발작적 행동은 꼭 몇 시간 뒤 일이 있을 때 일어난다. 일이 있기 전까지의 수많은 시간들은 TV, 우쿨렐레, 나노블럭, 유튜브, ‘오늘 뭐 먹지?’에 저당 잡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근원적 회의와 현실적 고민이 머릿속을 마음껏 헤집어놓는다. ‘나는 도대체 뭐하는 놈인가.’ 싶다가도, ‘일하려면 자야 되는데.’ 한다. 그 사이 어리숙한 글로나마 묘사하려던 무언가는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정녕 나는 뭐하는 놈인가 말이다.
팔천 원짜리 자명종 시계가 초침을 움직이며 시간 감을 알려온다. 다한증 앓고 있는 손발이 땀으로 제 몸을 한 꺼풀 두른다. 초조함이 극에 달한다. 괜스레 정수리가 가렵고, 시선이 허공으로 향한다. 애꿎은 앞머리를 자꾸만 배배 꼰다. 자존심이 눈꺼풀과 함께 무너져 내려간다. 아, 부질없어라. 뭔가를 써보겠다고 기꺼이 뜨뜻한 이불을 박차고 나오고야 만 그 의지가. 잘 구워져 일렬로 주르르 도열한 닭갈비 살점들을 한 치 망설임 없이 주르르 입구녕으로 처넣던 그 추진력은, 도대체 왜 글 앞에서만큼은 발휘되지 않는가.
이럴 땐 객기를 부려야 한다.
앞뒤 재지 말고 써 갈겨야 한다. 그르렁거리는 냉장고 소음을 음악 삼아, 열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서 춤추게 해야 한다. 화려한 무대 위의 우아한 발레든, 여덟 살 때 어른들 앞에서 즐겨 췄던 개다리춤이든, 아무 상관없다. 그저 무언가를 쓴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의지박약인 내게,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나 진배없다. 그제야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과정들을 뚫고 겨우 여기까지 왔다. 글이 이제야 A4 한 페이지를 향해 다가간다. 한숨이 나온다. 누구는 한 시간에 열 페이지를 내리 써내려간다는데, 하는 식의 회의적 잡념들이 관자놀이를 쿡쿡 찌른다. 이렇게 쓰기 어려워해서야, 정녕 내 글로 밥벌이나 할 수 있을까. 백만금 따위 꿈꾸지도 않는데. 그저 내 글로 나와 내 가족들 먹여 살릴 수 있으면 그뿐인데. 새벽 한순간의 치기로 인해 삶의 고뇌를, 밥벌이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윽고 불길이 잦아든다. 그 위에 얹혀 있던 냄비의 부글거림도 서서히 줄어든다. 그 안에서 끓던 밥이 비린내를 풍긴다. 뜨끈하던 명치께는 결국 설익은 밥을 지어냈다. 난감하다. 압력밥솥의 화끈함도, 전기밥솥의 정교함도, 뚝배기의 진득함도, 나의 냄비에는 담겨 있지 않다.
하아, 이놈의 남루한 냄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