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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기고가 강진우 Jul 30. 2015

술 기운에 횡설수설

썸day 일곱째 날인가-머리가 어지러워서 잘 모르겠다

늘 정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줍잖은 프로 행세를 하면서도, 프로의 글은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정제는 필시 감정의 축약을 가져온다. <삼시세끼>의 이서진이 양봉틀을 꺼내, 꿀벌들이 정성껏 지은 육각형 집을 칼질 한 번에 밀어버리고 면 보자기에 담아 맑은 꿀을 수확하듯. 그런데 글을 아주 조밀한 거름망에 거르다 보면 이것이 내 글인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인지 구분이 안 가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자괴감이 온몸을 덮친다. 


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 


내가 글을 통해 바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빌어먹을. 맥주 다섯 캔의 힘을 빌려 얘기하자면, 나는 인정받고 싶다. 그래서 내 글이라고 끄적였으면서도, 늘 당신의 눈치를 살핀다. 물론 글쟁이에게 독자는 원자력 발전소의 연료봉이며, 동시에 냉각수임에 틀림없다. 허나 나는 그대를 위해 글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나를 위해 이 길을 택했을 뿐. 행복해지고 싶어서. 안 쓰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안색을 살핀다. '내 글을 읽고 감동 받았나? 혹시 아무 감정 들지 않으면 어쩌지?' 끊임없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그것이 마치 내 글의 절대적 잣대인 것마냥. 댓글 내용에 기분이 이리저리 오가고, 반응이 없으면 세상이 날 버린 것처럼 지독한 우울에 빠지곤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나를 자각할 때면, 어머니의 무한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 또 한 번 나에게 실망한다.


몇 달 전, 돼지고기를 먹다가 문득 클라이언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사실 자존심은 더럽게 강한데, 자존감은 말도 못하게 낮은 사람이에요." 그 전까지 속 얘기를 주고받지 않아서인지, 그녀는 흠칫 놀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마치 다 안다는 듯 내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함께 일해온 1년여 간,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저 안 된 사람이라고 안쓰러워하며, 아니꼬운 내 행동들을 질끈 눈감아 준 것은 아닐까.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이렇게까지 떨어진 인간이구나.


"이해해요." 그저 익숙지 않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던진, 의미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심코 말한 네 글자가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는 줄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사람들의 한 마디가 나에게 이리도 큰 용기와 영감을 준다. 뒤집어 말하면 그런 말 한 마디에 생사를 걸 정도로, 나라는 존재는 연약하다는 것이다.


글쓴이가 하늘하늘하니 그가 쓴 글은 말할 것도 없다. 매가리 하나 없다. 주장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그저 '어떻게 쓰면 당신에게 잘 보일까'하는 고심뿐이다. 결국 글 한 편을 완성했음에도 일말의 만족감도 느끼지 못하는 '카타르시스 불구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마땅히 느껴야 할 오르가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신호다. 찌꺼기가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사이렌이다. 그것을 걷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어이 썩는다. 썩은 심장을 가진 자는 진실된 이야기를 쓸 수 없다. 진심이 없는 글을 독자는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 이런 과정 후에 남는 것은 '작가'라는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추레한 인생을 생기 없이 살아가는 몹쓸 글쟁이일 뿐이다. 


나는 결코 그리 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발행하는 순간,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제대로 된 거름망 하나 거치지 않고 써 내려간, 날것 그대로의 수세미 같은 글이다. 맨정신인 내가 이를 남에게 보여줄 리 없다. 따라서 나는 술을 전우 삼아 스스로에게 쿠데타를 거는 셈이다. 12. 12 군사 반란보다도 명분 없는 최악의 쿠데타다. 잠에서 깬 다음날, 나는 분명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며 고개를 푹 숙일 것이다.


허나 동시에 밀려오는 후련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를 옥죄고 있던 그물망을 벗어나고야 말았다는 성취감인가. 아니다. 술에 절은 지금도 나는 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키보드 위 손가락들을 쳐다보며 '이러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거는 중이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손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의심할 여지없는 내 손가락인데도, 나는 그들의 진군을 막을 수 없다. 


새벽 세 시에 허튼 글을 마구 지껄이는 데에는 어떠한 인과관계가 작용하는 탓일 거다.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머리가 굵은 후 깨달은 첫 번째이자 마지막 진리다. 하지만 지금 나는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지 모르겠다. 어떤 존재가 감기는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고, 충혈된 눈으로 뚫어지게 모니터를 쳐다보게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다. 이 덧없는 행위가 감정의 찌꺼기를 마음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것. 왠지 모르게 명치께가 후련하다는 것.


후회는 때로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던가.

이건 방금 내 무의식이 지은 말 같으니 믿지 마시기를.


어쨌든 술 기운에 횡설수설, 아주 가끔씩은 해볼 만도 한 듯.


비록 후회하더라도, 모든 경험은 언젠가는 쓸모 있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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