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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Dec 08. 2022

노부부의 사랑법

친정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신다. 벌써 한달째다. 처음 중환자실로 가실 때는 병원에서 곧 돌아가실 듯이 말을 했다. 남편이랑 같이 먼길을 운전해서 친정에 도착했다. 코로나라서 안된다는 면회를 사정사정해서 했다. "머 할라고 왔노?" 호흡기를 목에 끼우고 있어서 말은 못하지만 입모양으로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많이 아프지요? 기도할께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이틀 뒤에는 미국에 있는 남동생이 급히 비행기를 잡아 타고 부랴부랴 도착했다. 쉽사리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하릴없이 일주일을 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이주일 만에 의식이 돌아와서 그래도 깨어 있는 어머니를 보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머니는 올해 팔십셋이다. 아버지는 팔십 다섯이시고. 아버지는 "마이 살았다!" 하시면서 처음에는 어머니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가족 납골당에 세울 어머니의 비석도 마련하시고 하나씩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하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의식을 찾으셨고 입에 꽂고 있던 호흡기를 목에다 옮기는 시술도 이겨내셨다. 이제는 휠체어를 타고 의사선생님과 함께 일어서는 연습도 하고 있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강하다! 괜찮다!" 한달 전 쯤 응급실에서 잠깐 뵀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어머니는 진짜 강하셨다. 대수술을 이겨냈고 중환자실에서 모든 힘든 시술과 아픔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다.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갑자기 아버지가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어머니가 있을 때는 외식을 할 때도 항상 함께 였지만 지금은 혼밥을 하신다. 남동생이 있을 때는 남동생이랑 함께 식당에서 밥을 사드셨는데 지금은 혼자다. 어제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식당을 찾았다고 좋아하셨다. 그 식당은 간판이 희끄무레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서 매일 굴국밥을 드신다고 하신다. "그래요? 굴 몸에 좋은데 잘 됐네요!" 지금은 단골 식당에 소고기 국밥을 사 드시러 간다고 하셨다. "내라도 정신 바짝 차려서 건강해야 안되겠나?" 갑자기 혼자 남게 된 아버지는 혼자 잘 버티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하고 계셨다.


아버지도 연세가 있으셔서 여기저기 아픈데가 많다. 며칠전에 병원에 갔더니 모든 수치가 좋아져서 병원에서 깜짝 놀라더라고 자랑하신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으니 정신이 바짝 나셨나보다. 아파서 흐느적거리던 아버지의 몸도 덩달아 바짝 긴장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아버지! 아버지라도 건강하셔야죠! 아버지는 이번 주 토요일 어머니 면회를 위해서 코로나 검사를 하러 간다고 하신다. 저번 주에는 10분밖에 시간을 안 줘서 쫓겨났다고 하셨다. 이번 주 토요일에도 또 면회를 가신다. 면회를 가서 새로 만든 비석 사진도 휴대폰으로 보여 줄거라고 하신다. 다음 주는 나도 srt를 타고 내려갈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투닥거리며 다투셨다. 결혼하고 나서도 별일 아닌 일로 자주 투닥거리시는 했다. 그러다 내가 친정을 떠나온지 삼십년이 될 쯤에는 서로 늙어가면서 아픈 몸을 의지하고 사이좋게 사시는 듯했다. 주된 일과는 병원과 약국 순례! 하루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또 다른 날은 어머니가 아프셔서! 응급 상황에는 서로서로 119를 불러서 응급실행도 몇 번 하셨다. 그럴 때마다 멀리 사는 딸에게 연락하기를 꺼리시고 당신들이 해결하기 위해 애쓰셨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된 셈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허물을 다 덮고 이제껏 보호자 노릇을 착실하게 하셨다. 같이 늙어가면서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말로 백번하는 사랑 고백보다 힘들 때 같이 있어주고 보호자가 되어 주는 것! 그것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큰 사랑임을 절절히 느낀다. 그것이 노부부의 사랑법이었다. 함께 병원을 가주고 응급 상황에서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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