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도착한지 열흘이 지났다. 시간 참 빠르다. 매일 정리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습관의 힘은 무섭다. 앞으로 남은 연수 기간을 헛되지 않게 쓰기 위해, 오늘이라도 지난 열흘을 되돌이켜본다.
1. 8월 31일 - 입국, 쑤저우로...
도착 인증샷
2시간 넘게 기다린 승차장
해가 질 무렵, 상하이 홍치아오 공항에 도착했다. 약속했던 디디가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중국 오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공항 승차장에서 기다렸다. 중국에 오니, 불만이 있어도 욕을 할 수가 없다. 인성이 좋아지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백주와 안주
밤 늦게 쑤저우에 도착했다. 아들과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다. 백주 한 잔과 안주로 두 종류의 허기를 동시에 해결했다.
2. 9월 1일 - 가족 외식, 그리고 휴식
1시간의 시차이지만, 뭔가 피곤하다. 오전에 카페에 가서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좀 나누고, 점심은 아들도 함께 홍콩식 퓨전 요리를 먹었다. 식당의 구인 공고를 한참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었다. 각종 복지는 그렇다 쳐도, 점원 초봉이 월 5천 위안 수준이면 어떻게 다들 집도 사고, 애도 키우고 하는지 의문이 든다. 지나다 본 집값들은 서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식당 구인공고
3. 9월 2일 - 첫 달리기, 버스타기 연습
새벽에 일어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5km를 뛰었다. 사실 뛰었다기보다는 걷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뛰는 모든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 4개 정도를 도니까 5km 가 나왔다. 인도도 넓고, 이륜차 전용도로도 있어서 달리기에는 좋은 환경이다. 뛰고 나니 몸에 에너지가 솟... 기는 커녕 방전되어서 쉬었다.
처음으로 탄 버스
오후에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는 것은 보통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 날은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저 멀리 버스가 보일 때부터, 스마트폰 웨이신 앱의 카드의 바코드를 켜둔다. 결제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주머니 속의 현금도 만져본다. 카드를 댄다. 싱겁게 성공했다. 자리에 앉아서 창 밖을 한참 구경한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난 목적지가 없으니 앉아있는데, 버스 기사가 소리친다. 내리라는 뜻 같다. 종점인가보다.
오강 방송국?
버스에서 내려서 무작정 걸어본다. 방송사로 보이는 안테나가 보인다. 가보니 방송사가 맞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경비원이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다시 정해진 방향 없이 걷는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리고 순식간에 굵어진다. 폐업한 것 같은 가게의 좁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어깨 폭 남짓의 처마 아래에서 기약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기억이 떠오르고 좋았다.
4. 9월 3일 - 중국은 일하는 날, 나는 혼자 여행
아내와 아들은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아침 일찍 집을 떠났다. 나는 아내의 띠엔동(전동 오토바이)을 빌렸다. 무작정 어디론가 가보려 했다. 도심과는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향했다. 리리구진(명리고진)이 가깝고 괜찮다는 말에 휴대폰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리리구진
평일의 관광지는 한산하다. 사람이 몇 없기도 하거니와, 중국 상점들은 대체로 불빛이 어두워서 문을 열었는지 닫았는지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물길 옆의 집들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물가에 나와서 빨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텅 빈 거리를 걸으며, 한가함을 한참 즐겼다.
띠엔동 식사중
나도 식사중
돌아오는 길, 띠엔동의 배터리가 걱정되어서 충전 스팟을 찾았지만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에 그냥 집으로 네비를 찍는다. 갑자기 시간 부자가 된 느낌이라, 가다가 멈출 수 있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띠엔동이 점점 느려진다. 시내에 도착해서 띠엔동 가게에 충전을 맡긴다. 그리고 나도 뱃속을 충전하기 위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음식도 그냥 아무거나 시킨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맛이 있다. (뜨거운 물 주는 것만 빼면 대만족)
결국 띠엔동은 집을 2km 남기고 멈춰서 끌고 갔다. 끌고 가는 운동까지... 만족스러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