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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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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07. 2020

지치지 말고 우리 힘내요


오늘 서울의 한 독립 책방 사장님께 정산 메일을 받았다.

지난 세 달간 팔린 책 권수가 적혀 있고, 세금계산서를 발급해달라는 말과 함께 짧고 따뜻한 말도 적혀 있었다.

3달 전 정산 메일에 다음 정산일에는 마스크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삶을 희망차게 꿈꿨으나,

여전히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지치지 말고 버티자. 대충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해주세요."

일주일만의 외출다운 외출을 했다. 지하철에 교통 카드를 찍자, 저런 음성이 흘러나왔다.

일주일간 거리두기 강화랍시고 정말 집에서 콕 박혀있었다. 답답할 땐 산책을 하고, 인적 없는 자연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나갔다. 내 생활 반경이 작업하러 카페에 가고, 종종 약속이 있는 정도였으니까 작업하러 카페에 안 가고 집에서 하면 되고, 약속은 미루면 되기 때문에 가능한 거리두기였다.


집 밖을 나서 버스 정류장을 향하는 길, 아스팔트 바닥 위에 은행 열매들이 떨어져 있었다. 밟으면 고약한 냄새가 날 것을 직감하고 후다닥 발을 옮겼다.

'가을이구나.'

가을의 맑은 공기, 냄새를 참 좋아하는데, 맡을 수 없었다.


요즘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물론 전염병 탓만 할 수는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두 달간 연이은 작업으로, 나는 내 네 번째 독립출판물을 완성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고, 마음을 졸였다. 멋들어지게 두 달간 완성을 하고, 9월 초 제주로 여행을 갈까나 생각했는데, 다시 탁 터져버린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서울이고, 지금은 서울이 가장 위험한 곳이므로 서울시민인 내가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게 왠지 무례하게 느껴졌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깐.


집에서 쉬고 남은 일들을 처리하며 나는 종종 '지금쯤 제주에 있었다면' 하고 생각했다.

작년 가을 제주 여행의 처음과 끝 나와 함께 했던 '바라나시 책골목'을, 인도풍의 게스트하우스를, 푸른 바다를.

에라이, 여행 못 갔으니 돈 아꼈지 뭐,라고 생각하면서도

제주는 9월에 참 예쁜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책방 정산 메일에 세금계산서를 모바일 앱으로 후다닥 발급하고 답장을 보냈다.

"지치지 말고 우리 힘내요."라고.

장장 8개월간 했던, 어쩌면 닳고 닳아 말의 효력조차 없을 것만 같은 말이지만 그래도 이런 말이라도 해야 위안이 될 것 같아서.


앞으로 언제까지 힘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힘내자는 의미에서 예쁜 공책 하나를 샀다.

앞으로 100일간 내 일상을 기록하며, 부디 지치지 말아달라고. 지쳐도 다시 일어나 달라고.




*카카오 프로젝트 100 <매일 나를 기록하기>의 Day1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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