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의 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Sep 09. 2020

아빠와의 시간

"아빠, 도서관 좀 데려다주라."


스물일곱 먹은 딸이지만, 나는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다. 언젠가 운전 면허증을 딸 수는 있겠지만, 차를 구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런 것을 배제하고도 대중교통을 타고 가도 되는 도서관을, 주말에 굳이 아빠 차를 타고 가려는 이유는 비단 '아빠 차 찬스'가 편해서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조금은 있지만.) 


딸 셋을 두고 있는 우리 아빠 입장에서 딸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아빠에게 "아빠는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라는 질문을 한 적이 기억난다.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응."이라고 돌아온 아빠의 대답에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우리 아빠는 평소 딸들 부탁이라면 귀찮은 내색 없이 다 들어주고 동생의 생일에는 동생이 배우고 싶어 한 통기타와 꽃다발을 선물로 주었을 정도로 로맨틱한 아빠다. 


딸 입장에서 우리 아빠를 생각하면, 사실 먼 관계는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가깝다고 말하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에게 무언가 부탁하는 게 언제나 어렵곤 했다. 밤이 늦었을 때 데려와 달라고 말하는 것(주로 대학생 철없는 시절 술을 밤늦게까지 많이 마시고 막차가 끊겼을 때의 상황이었다), 용돈을 달라고 말하는 것(대학생 때는 용돈을 대부분 직접 벌어서 썼고, 알바가 잘려 매우 지갑이 빈곤해지거나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힘들 때도 부득부득이 손을 벌리지 않고 허리끈을 졸라매거나 돈 벌 방법을 찾곤 했다) 등 말이다.


그런 나와는 달리, 동생은 아빠에게 부탁을 굉장히 쉽게 하곤 했다. 어디를 데려달라, 돈이 부족하다, 이런 말들에서 말이다. 막내인 동생이 나보다 예쁨 받는 걸 보는 건 둘째의 숙명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빠의 의견과 무관하게 나는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족이 길었지만, 그랬던 내가 요즘은 조금씩 아빠에게 부탁이란 걸 해보고 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였나, 책에서였나 아빠는 딸들의 부탁을 좋아한다고 보기도 해서(?) 용기를 얻기도 했고. 또, 그런 부탁으로 아빠와의 시간이 만들어지기도, 아니 어쩌면 소통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조금 먼 -약 40분 정도 걸리는- 도서관에 아빠와 차를 타고 함께 가면서, 근황을 나눈다. 언니나 동생의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이제 대학생 딸들을 모두 졸업시킨 아빠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시고, 현장에 나가 계셔서 평일에는 떨어져 살아 평일에는 함께 하는 시간이 없다. 전에는 주말에 같이 등산을 가기도 하고, 코로나 19가 아니라면 같이 외식을 하며 나눌 수도 있는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몸을 조심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 외출' 정도가 아니면 어디 같이 가자고 말하기도 미안한 요즘이다. 주말 내내 같이 집에 있는 가족이라도 모두가 많은 소통을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TV를 앞에 두고 함께 시청하며, 근황보다는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흔한 주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도 외출을 함께 하면, 다른 매체 없이 오롯이 너와 내가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오히려 궁금했던 서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더 좋은 것 같다.


아빠와 차에서 나눈 시간을 떠올려보니, 대학교에 다닐 때는 운 좋게 내가 다니던 대학과 아빠 회사가 가까워 지하철로는 1시간 30분 걸리던 하교 길에 종종 아빠 차를 타고 같이 돌아오기도 했다. (등교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아버지는 저 멀리 경상남도에 계시기 때문에 앞으로는 없을 일이지만, 그 당시 아빠와의 카풀을 하며 집 오는 길에 보던 한강과 동작대교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앞으로 내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나의 가정이 생길지도 모르고, 곧 독립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만큼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질 수 있다. 그때도 어떤 핑계를 대며 아빠와의 시간을 만들지 고민해봐야겠다. 때로는 누군가 조금 더 마음을 쓰고 궁리를 해야 평범한 시간이 조금 더 특별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 일이니. 아, 언젠가 아버지와 페루의 마추픽추를 보러 가자고 약속을 한 적이 있는데, 우선 전 세계가 안전해져야 여행도 갈 일이니. 좋은 타이밍에 장기 여행을 갈 시간과 돈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이번 주에는 아버지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과 함께 먹을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 왔는데, 다음 주에도 슬쩍 아빠에게 도서관 같이 가자고, 물어봐야겠다. 이 비밀 작전이 내 브런치 애독자인 아빠에게 먼저 들킬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녀왔습니다_국내 독립서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