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오히려 여럿 모이면 해야 하는 일도 '누군가 하겠지'라고 미루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난 집안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람 다섯에 강아지 둘, 총 일곱 식구가 사는 우리 집에는 항상 일거리가 넘쳐난다. 매일 강아지 물을 주고, 사료를 먹이고(이것도 잘 안 먹어서 꽤나 애를 쓴다), 똥을 치우고. 빨랫감은 3일 정도면 통에 가득 찬다. 설거지거리는 먹자마자 해치우곤 하지만, 조금이라도 미루면 금방 지저분해지곤 한다. 다섯 사람 중 여자만 넷이라, 청소기를 며칠만 안 돌려도 금세 방바닥에 머리칼들이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사실 집안일이란 게 그렇다. 열심히 해도 썩 티가 안 나지만, 안 하면 금세 티가 나는,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또 사람이 다섯 정도 되면, 모두가 개미와 베짱이의 개미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한두 명의 개미가 있으면 서너 명의 베짱이가 있는 법. 즉, 세탁기를 돌리는 거야 여럿의 빨랫감을 모아 한 명이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한 명이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거니깐. 빨랫감이 쌓이면 더 급하거나 못 참는 사람이 돌리고, '이번에 내가 했으니, 다음에 네가 해.'라고 말한 들, 집안일이란 게 꼭 공평하게 분담되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람이 참 그렇다. 받은 것보다 준 것을, 네가 한 것보다 내가 한 것을 먼저 기억하기 마련. 집안일을 하다 보면 괜히 나 혼자 여러 번 한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억울한데, 또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나 혼자만 억울할 필요는 없다. 안 보이는데서 남들도 다 그 정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으니, 주의.)
어제는 갑자기 새벽에 비가 많이 쏟아졌다. 빔프로젝트로 흰 벽에 영화를 쏘아보고 있었던 나와 동생은 고작 창문을 누가 닫느냐로 옥신각신했다. 나와 동생은 평소 자주 다투지 않는다. 오히려 다툼이나 서운한 말은 정말 두세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고, 친구처럼 사이가 좋은 편이다. 그런데 나는 평소 동생이 엉덩이가 무거운 점, 은근히 얌생이같이 집안일에서 자기 것만 하고 쏙 빠지는듯한 느낌이 마음속에 쌓여 겨우 '창문 닫는 일'로 동생에게 볼멘소리를 냈다. 동생은 창문은 언니가 연 거라며(정말 아닌데! 이거로 또 여러 번 입씨름을 했다) 결국 창문은 내가 닫았다. 그런데 오늘은 또 동생이 빨래를 두 번 연달아 널었다며 생색내는 카톡이 왔다. (아마 어제 내 말에 대한 복수였으리라.) 머쓱한 이모티콘을 답으로 대신했지만, 사실 어제의 서운함은 이미 풀리고 앞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평소 내가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다른 가족들도 똑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 남이 하는 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아버지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계셨다.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말씀 없이 묵묵히 하고 계셨다. 아마 내가 방에만 있었다면 아빠가 화장실 청소를 한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 언니는 잠이 안 왔는지 주방 베란다를 아주 뒤집어놓듯이 청소를 했다. 오늘이 마침 분리수거 날이었기에 새벽에 분리수거까지 깔끔히 해 놓았다. 이 역시 내가 목격하지 않았다면, 깨끗해진 베란다를 보고도 잘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 밥을 내가 직접 해 먹고, 빨래를 돌리고 넌다는 이유로 엄마는 왜 빨래를 안 하냐고 볼멘소리를 냈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강아지의 대소변을 치우고, 강아지들에게 밥을 먹이고, 밥을 해놓으시고, 열심히 장을 보신다. (맙소사, 이렇게 적고 보니 내 투덜거림이 정말 철없이 느껴진다.) 또 동생도 동생 나름 잡다한 일들을 하리라.
그러니까, 어차피 같이 사는 가족들인데 '나 혼자 하는 집안일'은 없다. 각자 조금 더 거슬리는 집안일을 담당하고, 내가 이것, 네가 저것, 굳이 역할을 나눈 적은 없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하고 있다. 물론 집집마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고, 그 집에서 역할상 집안일을 전담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집은 서로 도와가며 집안일을 하는 가정이고, 나는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아니기에 이 또한 행복한 비명일 수 있다. (1인 가구로 빨래, 설거지, 요리, 청소까지 전담해야 하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언젠가 독립하겠노라 말하지만, 어쩌면 아직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족들과 함께 사는 수혜를 톡톡이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적는 건 내 여태까지의 태도를 반성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 살다가 집안일 분담으로 불만이 생길 때 누군가는 내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더 많은 일을 했을 수도 있음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ps. 그래도 가끔씩의 생색은 필요한 것 같다. 왜냐하면, 누누이 말했듯 집안일은 그리 티가 나지 않고, 가끔은 본인의 노력을 어필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부작용일 수도 있는 점은 본인의 생색에 "나는 어제 너 잘 때 더 많이 했어!"란 말이 돌아올 수도 있다.
집안일을 할 때, 희생의 정신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번에 냉장고 청소를 함으로써 기쁨 가득한 엄마의 미소를 보거나, 언니가 음식을 꺼내먹기 더 좋아졌다며 좋아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는. 숭고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집안일에 적용하는 그런 자비로운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사람은 옹졸한 지라, 때로는 객관화를 통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알아차리게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의 옹졸함에 대한 반성문을 이 긴 글을 통해 적어보았다. 무어라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