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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12. 2020

보드게임

요즘 내 일상 속 자리 잡은 게 있다. 바로 '보드게임'. 밤 10시 정도 동생과 보드게임 타임이 시작된다. 우리의 일상에 보드게임이 들어온 건 불과 10일 전, 수도권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강화된 직후였다. 


"루미큐브* 할래?" (*보드게임의 일종이다.)


침대에 엎드려 핸드폰을 하고 있던 동생에게 불현듯 말을 건넨 게 시작이었다. 동생은 그때 매우 뜬금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서 너무 심심했던 나는, 방 정리를 하면서 발견한 루미큐브가 생각났던 것이다. 우리 집에는 루미큐브, 젠가, 더지니어스 호러 레이스, 체스 등 다양한 보드게임이 있었다. '호러 레이스' 빼고는 어릴 적 아빠 회사 야유회에서 타 온 상품들이라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자리 잡았던 보드게임. 그런데 워낙 그 자리에 당연히 있는 것들은 잘 안 찾기 마련이다. 4~5년 동안 안 쓴 고대 유물을 내가 꺼내 온 것.


그중 루미큐브는 간단하지만 중독성 있고, 머리를 써야 재미있는 게임이다. 룰은 말로 하면 복잡하지만, 직접 보면 직관적이다. 1~13이 적혀있는 빨강, 주황, 파랑, 검은색 카드가 2세트씩, 거기에 만능 조커 2개가 있다. 플레이어당 14개의 카드를 들고 번갈아 카드를 내는데, 같은 색 연속적인 숫자 또는 다른 색 같은 숫자의 패 3개 이상을 낼 수 있다. 파랑 2-3-4라던지 빨강, 주황, 검정 4라던지. 그리고 하다 보면 나와 있는 패를 쏙 빼서 자기의 카드를 조합해 내는 게 루미큐브의 가장 큰 재미다.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핸드폰을 오래 할 때와 달리 눈도 아프지 않고, 재미있다. 웃을 수 있고, 승리의 기쁨도 만끽할 수 있다. 한 끗 차이로 이길 때 그 기쁨은 배가 된다. 물론 한 끗 차이로 질 때는 매우 억울하기에 "한 판 더!"를 외친다. 보드게임을 할 때 불을 끄고 향초를 켜고 할 때도 있는데, 그럼 꼭 어디 은밀한 아지트에서 놀고 있는 기분도 든다. 


루미큐브는 2인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tvn 예능이던 '더지니어스'에 나온 호러 레이스라는 게임이 한정판 보드게임으로 출시된 '더지니어스 호러 레이스'는 3인 이상이어야 플레이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문제 되지 않는다. 우리 집은 세 자매이기 때문에, 언니를 부르면 3인 플레이가 가능. 어릴 적부터 그런 건 좋았던 것 같다. 2인 또는 3인 이상 놀아야 하는 경우 언니와 동생이 뭉치면 금세 게임할 수 있는 인원이 되는 것. 그래서 동생과 둘이 할 때는 루미큐브, 셋이서 할 때는 호러 레이스를 꺼낸다. 


어떠한 매개체든 가족과 취미를 같이 하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는다. 물론 같은 TV 프로그램의 팬이면, 함께 TV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때론 게임도 그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보드게임에 중독될 일까지는 없으니까 게임 중독의 위험에서도 안전하다.) 그래서 10일 전 동생에게 "보드게임 할래?"라고 정말 갑작스레 물어봤던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연달아 10일 내내 보드게임 타임을 가진 것 같아 곧 질릴까 봐 무섭기도 하다. 처음에 한 판에 30분 걸린 게 지금은 서로 머리 쓰는 속도가 빨라져 15분 내로 종료되기도 한다. 


세상을 오래 살아본 건 아니지만, 일단 즐거운 게 짱인 것 같다. '인생은 설렁설렁', 어느 소설가의 수필집 제목처럼 설렁설렁, 재미있게 살고 싶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운 듯, 쉽게 생각하면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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