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기억을 더듬으면, 책을 좋아하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 책과의 만남은 달콤하기보다는 쌉싸래했다. 초등학교 1학년 말 전학을 온 나는, 새 학교에서 2학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약하고 몸이 작은 데다가 아마 조용했던 나는 전학 간 학교에서 학기 초에 왕따를 당했다. 기억이 드문드문 나는 것은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한 아이가 내 뺨을 때리고 "또 우냐? 또 울지?"라고 말하던 아주 흐릿한 장면뿐이다. 물론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울었던 것 같다. 그 따돌림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희한한 게 그때 내 뺨을 때렸던 친구와 나중에 친해졌고(?) 따돌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반장까지 하고, 쭉 올백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나머지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따돌림의 기억은 잠깐이고, 잊을 수도 있는 기억이지만 종종 떠오를 때가 있다. 바로 책과 어떻게 처음 친해지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책과의 처음을 떠올리면 그때가 떠오르는 것은, 그 덕분에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거나 뛰어노는 걸 별로 안 좋아했었는지 아니면 친한 친구가 전학 간 초반에 없어서였을까, 자연스레 하교 후 발걸음은 조용한 도서관으로 향했다. 처음 도서관에 발을 들였을 때,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무신경한 고요함에 자연스레 마음이 안정이 되었던 것 같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재미를 알았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나 로알드 달의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등의 책들은 달콤하도록 재밌었다.
첫 발걸음은 조금 외로워도, 그 여정은 아름다웠다. 초등학생 때의 꿈이 작가가 되었고, 나중에 '지은이 : 이지은'인 책은 내 책이니 꼭 사보라며 친구들에게 말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 내 책 표지에 '지은이'라고 적힌 책은 없다만. 어떤 책을 낼 지, 언제 낼 지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다이어리 앞 장에는 '20대 책 한 권 출간하기'가 가장 버킷리스트 1순위였다. 지금은 1인 출판이지만 20대에 책 3권을 출간했다. 새삼 이런 여정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책을 좋아하면, 나도 이토록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이 자연스레 생기나 보다. 내 첫 책은 여행 에세이이고, 두 번째 책은 여행 그림일기, 세 번째 책은 여행 드로잉 에세이이다. 그토록 떠나는 것을 좋아하던 나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을까?
세 달 전, 나의 두 달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를 드로잉 에세이로 남기고, 나는 이제 여행 책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책은 기록하려고 떠난 여행이 아니었고, 자꾸 차오르는 여행의 추억들이 나에게 책을 쓰게 했는데, 두 번째 책부터는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떤 책을 남기고 싶은지 머릿속에 자꾸 떠올랐다. 여행을 여전히 좋아하고, 책을 쓰려고 떠난 건 아니었지만, 마음 한편에 책에 대한 생각이 나의 여행을 순도 100% 여행이 아닌 90% 정도로 떨어뜨렸던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뭐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는 시국이 1년 이상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여행 글이 아닌 일상 글을 적고 싶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작가님이라 불리면서도, 두 달 넘게 글 한 편 안 적었다. 나에게 여행 에세이란 장르는, 신나고 좋던 여행의 기억을 약간의 가치관과 생각을 담아 적어내리는 나름 어렵지 않은 장르였던 것 같다. 거기에 여행 정보를 조금 더 추가해서, 재미와 정보를 더하는, 그런 장르에 익숙해졌는데. 이제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하려니 조금은 어렵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직 어렵다. 그래서 자꾸 써 보려고 한다. 나에 대해서, 나의 머릿속에 대하여. 이야기의 시작은 '어찌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였지만, 마무리는 '앞으로 글을 많이 쓰고 싶다'는 다짐이다. 어떤 이야기라도 좋으니 시작하고 싶어서, 더 이상 안 쓰면 안 될 거 같아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