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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Jan 12. 2024

'빅'이라는 영화 알아? 어머, 나 옛날 사람...?

미국에서 1년 살기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맑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하늘만 보면 부쩍 가을이 다가온 느낌이었지만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다.

한국은 벌써 긴팔을 꺼내 입고 얇은 겉옷까지 챙겨 입는다는데, 이곳의 날씨는 제주도보다 따뜻한 것 같았다.

지역신문에 NC State Fair 광고가 실렸다.

안 그래도 아파트 소식지에도 나와있고 도서관이나 상가 곳곳에 전단지가 붙어 있어서 궁금하던 참이었다.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날씨도 좋고 유난히 하늘이 맑은 주말을 맞이하여 나들이 겸 다 함께 구경을 가보기로 했다.

제1주차장부터 제5주차장까지 안내되어 있는 전단지를 보니 꽤나 규모가 큰 축제인 듯했다.

'설마 제5주차장까지 주차를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일단 행사장을 향해 차를 몰고 갔다.

행사장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많아지고 저 멀리 차를 세워두고 행사장까지 걸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적한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교통체증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행사장 바로 앞에 있는 제1주차장은 절반 이상이 장애인 전용주차장이었다.

'와, 미국에 장애인이 이렇게 많은가?' 

그래서 그런지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중엔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이대로 제5주차장까지 가야 하나?' 하며 꽉 막힌 행사장 주변을 빙빙 돌다가 운 좋게 근처 건물의 주차장에 자리가 나서 생각보다 행사장 가까이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행사장은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온갖 인종들을 다 모아놓은 멜팅팟'같은 전형적인 미국의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손을 놓지 말고 꼭 붙어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혹시라도 엄마 아빠와 떨어지거나 길을 잃을 경우엔 어떻게 하고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현금만 받는 사행성(?) 게임들 천지에 놀이기구들도 각각 이용권을 끊어야 했다.

'분명 이런데 처음 와 봤는데, 왜 전에 와본 것 같지?'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느낌은 뭘까 생각해 보니 영화에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자기야, 옛날에 톰행크스 나온 영화 있잖아. 그... 점 봐주는 기계로 어른됐다가 다시 어려지고... 뭐지?"

"빅?"

맞다. 그 영화의 배경이 딱 이런 지역축제였다.

그나저나 언제 적 톰 행크스인지...



주차장 한쪽에 각종 트레일러들과 대형 트럭들이 즐비한 걸 보니, 마치 서커스단처럼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런 축제를 여는 것 같았다.

'맞아, 영화에서도 그 타로점 기계를 찾느라 그다음엔 어디서 축제가 열렸는지 막 찾아보고 그랬었어.'

이동하는 곳마다 조립했다 풀었다 하며 놀이기구들을 뚝딱뚝딱 설치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 않은데도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탄다는 게 신기했다.

대형 놀이기구들은 아무래도 이동하며 설치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시시할 정도로 스릴도 없고 재밌어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런 축제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새로웠기 때문에 수많은 먹을거리들과 소소한 사행성게임들 위주로 돌아다니며 축제를 즐겼다.



대기 없이 바로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 중 로프 트램펄린이 있었는데, 타기 전부터 잔뜩 긴장해 있던 아이들은 몸에 매단 줄이 무색하게도 트램펄린 위에서 가볍게 콩콩 대기만 하다가 내려왔다.

다른 아이들은 마치 기계체조를 하듯 힘껏 점프해서 공중해서 앞으로도 돌고 뒤로도 돌고 하다못해 다리라도 벌리고 내려오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더 힘차게 뛰어봐! 그게 뭐야~"하는 말이 나왔다.

조바심에 미리 재촉하거나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주자고 항상 다짐하지만 불쑥 튀어나와 버리는 말에 아차 싶을 때가 많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발견하게 될 때 더 그런 것 같다.

아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기길 바라지만 나도 분명 아이들보다 나을게 없을 텐데...

'너나 잘하세요.'



다트 세 번 던지는데 5불, 공 한번 굴리는데 25센트, 같은 사행성 게임이 정말 많았다.

빼곡한 풍선을 못 맞추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았는데 간신히 세 번째 기회에 풍선 하나를 터트리고 아이는 자그마한 펭귄인형을 상품으로 받았다.

"인형 하나에 $5이네." 하며 시니컬하게 굴던 우리와 달리, 아이는 자기가 다트를 던져서 얻어낸 경품이라며 어찌나 소중하게 여기던지.

정말 허접하고 별 볼일 없는 인형이었지만 이후로 쭈욱 아이의 애착인형들 중 하나가 되었다.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기어올라가 종을 울리면 경품으로 인형을 받는 게임이 있었다.

어른들도 계속 도전을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은지 성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흔들거리다 떨어지는 게 너무 웃기고 재밌어서 한참을 구경하며 서 있었는데, 커다란 인형에 마음을 뺏긴 둘째 아이가 호기롭게 도전을 했다.

직원 아저씨가 처음엔 어린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사다리를 잡아주더니, 생각보다 거침없이 쭉쭉 올라가는 걸 보곤 종을 치기 바로 전에 사다리를 놓아버렸다.

한 계단을 남기고 결국 눈앞에서 실패한 아이는 인형을 받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 재밌었다며 두고두고 이 날을 기억했다.



축제 곳곳에 있는 수많은 푸드트럭에서는 햄버거나 핫도그, 피자, 감자튀김 외에도 처음 보는 간식거리들을 팔고 있었다.

직원에게 코튼캔디라고 몇 번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다가 내가 손가락으로 솜사탕을 가리키고 나서야, "오~ 컷~은 캔~디?" 하며 내주던 굴욕의 순간도 있었지만 솜사탕이 제일 맛있었다.

음식들이 어쩜 그렇게 맛이 없는지, 우리 아파트에 들어오는 푸드트럭들이 그나마 높은 수준의 음식들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공기 중에 가득한 훈제향을 따라가 보니 터키훈제구이 천막을 빙 둘러싸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냄새만 맡아도 얼마나 맛있을지 짐작이 가서 정말 꼭 먹고 싶었지만 다리한쪽 먹겠다고 한 시간 이상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지만 그때 그냥 기다려볼걸 하며 아직까지도 후회되는 일 중 하나다.



해가 저물며 놀이기구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열리는 축제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았지만, 하루종일 아이들을 챙기며 돌아다닌 우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고 더 이상 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이제 집에 가자는 얘기에 아이들도 아쉬워하지 않는 걸 보니 충분히 즐긴 것 같아 야간개장을 뒤로하고 행사장을 나섰다.



행사장 밖으로 나오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그 새 빈자리가 많아진 광활한 장애인 전용 주차장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장애인이 유난히 많은 게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이렇게 많고 그들이 돌아다니는데 어려움이 없다 보니 더욱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길에서 마주치는 장애인들이 많아서 내 눈에는 더 많아 보이는 게 아닐까?

다른 건 몰라도 장애인들에 대한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미국의 이런 문화가 참 대단한 것 같고 많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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