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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Feb 07. 2024

풀사이드에서 열린 핼러윈파티

미국에서 1년 살기

핼러윈 일주일 전, 아파트 리징오피스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동안에도 소소한 이벤트들이 참 많았는데, 이번 파티는 규모가 꽤 큰 이벤트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와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마련하는 걸 보면 어쨌든 관리사무소(?)가 참 열심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아파트만 유난히 그런 건지 미국 아파트들이 원래 그런지 궁금했다.

그동안 많은 이벤트들에 열심히 참여하며 주말을 보내온 우리들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핼러윈 파티에 코스튬을 입고 오라는 공지에 첫째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해리포터로 둘째 아이는 캣우먼으로 변신했다.

트릭오어트릿을 위해 보름 전부터 아이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의상이었다.

비록 아마존에서 가장 저렴한 해리포터 가운과 마법봉세트였지만 첫째 아이의 곱슬곱슬한 헤어스타일과 안경이 더해져 꽤나 싱크로율이 높은 귀여운 해리포터가 되었다.

둘째 아이도 평소에 입고 다니던 귀달이 카디건이었지만 고양이가면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핼러윈 코스튬이 되었다며  튀는 듯 튀지 않는 의상을 마음에 들어 했다.



핼러윈파티는 리징오피스의 다이닝룸과 연결된 수영장에서 열렸다.

오오, 이런 게 바로 풀사이트 파티 아닌가?

입장하는 순서대로 경품 추첨을 위한 행운권 번호를 받았는데 과연 당첨이 될까 싶으면서도 살짝 기대가 됐다.



파티입구엔 페이스페인팅 업체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 벌써부터 아이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 전체가 호박이 되고 있는 아이, 마블 주인공으로 변신 중인 아이,  공주처럼 예쁘게 화장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너희도 받아보라며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지만, 해리포터는 분장이 필요 없고 캣우먼은 가면 써서 분장할 게 없다며 멀뚱멀뚱 구경만 할 뿐이었다.

적극적인 파티분위기에 괜히 내 마음도 들떠서 생얼에 운동복차림으로 나간 게 살짝 후회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챙겨 입을 코스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런 파티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니까.' 하는 생각에 비슷비슷한 차림의 엄마들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다이닝룸 안에는 가볍게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인도요리가 대부분이었다.

아파트 입주자 비율로 볼 때 압도적으로 인도인이 많았기에 그런 것 같았다.

우리야 뭐 가리지 않고 잘 먹으니 뭐든지 땡큐였지만 예상외로 음식들이 맛있어서 결코 가볍지 않은 만찬을 즐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볍게 평상복으로 참석한 우리가 민망할 정도로 분장에 진심인 코스튬의 어른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우리만 유별나게 코스튬 입고 가는 거 아니냐고 쭈뼛대던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의 의상을 보고 잔뜩 기가 죽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블랙의상은 코스튬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했다.

주최 측에서 페이스페인팅 업체를 섭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깨알같이 준비한 소품들에 페이스페인팅까지 더해지니 핼로윈 코스튬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다.

둘째 아이의 코와 뺨에도 내가 고양이 코와 수염을 그려줬지만 전문가의 솜씨에 비하면 그냥 낙서 수준이었다.

자신의 캣우먼 의상에 만족하던 둘째 아이는 그나마 가면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다른 아이들의 분장을 그저 감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녁이 되며 날씨가 꽤나 쌀쌀해졌는데도 아이들은 빙수를 하나씩 받아 들고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줄지어 받는 걸 보고 덩달아 하나 받아온 둘째 아이는 몇 번 먹어보더니 맛도 없고 너무 추워서 도저히 못 먹겠다며 얼음과 색소 가득한 시럽뿐인 이 얼음과자가 인기 있는 걸 신기해했다.



한쪽에선 아이들을 위한 기념촬영도 해주고 있었다.

너희도 기념인데 한번 찍어보라며 다시 한번 등을 떠밀었지만 이번에도 아이들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이런 파티문화가 아이들에게도 생소하고 낯설었는지 편하게 즐기지 못하고 겉도는듯한 느낌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좋은데 왜 자꾸 눈치를 볼까 속상하면서도 어느새 사람들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어이없어 웃음만 났다.

'나 조차도 뻘쭘해하고 있으면서 애들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막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파티의 인싸가 될 수는 없을지언정 계속 이렇게 구석에 처박혀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며 아는 사람을 찾았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얼굴을 익힌 엄마 몇몇이 보였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시작한 스몰토크는 음식얘기와 아이들 의상 얘기로 옮겨졌다.

몇 년 동안 이 아파트에 거주했던 엄마의 말에 의하면 매년 음식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주로 인디언음식이 많다고 했다.

나는 음식이 다 맛있었다며 사실 평소에도 카레나 난 같은 인디언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인도인 엄마가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메뉴들을 소개해줬다.

내가 아는 인도음식 이름들이 고갈될 무렵 아이들의 의상을 칭찬하며 화제를 전환시켰다.

우린 온통 검은색이라 너무 칙칙한데, 다른 아이들은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차려입고 왔는지 놀랐다고 하니, 핼러윈 시즌엔 쇼핑몰에도 코스튬행사를 하는 곳들이 많아서 아이들 옷은 매년 준비하는 편이라고 했다.

덕분에 근처 쇼핑몰에서 하는 이벤트들에 대한 정보도 얻으며 스몰토크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알고 보니 입구에서 경품추첨표를 나눠주던 여성분이 우리 집에 수리를 하러 왔다 갔다 하는 맥가이버아저씨의 부인이었다.

서부 카우보이 복장을 입고 나타난 아저씨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던 와중에 만난 아는 얼굴이라 그런지 더 반가웠다.

함께 기념촬영도 하고 지난번에 수리된 욕실에 별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근하게 대해주는 아저씨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 거의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이 파티의 진정한 인싸는 맥가이버아저씨였다.


줄곧 우리 옆에만 붙어 있던 아이들은 어른들끼리 얘기가 길어지자 심심했던지 그제야 따로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했다.

페이스페인팅 줄에 서서 이마에는 해리포터 상처를 뺨에는 부엉이인지 올빼미인지 모를 귀여운 동물도 그렸다.

풍선으로 강아지나 꽃을 만들어주는 코너도 있었는지 어디선가 풍선아트를 받아와 자랑하기도 하며 조금씩 파티분위기에 동화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기나긴 스몰토크에 점점 지쳐가던 사이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직원 하나가 화단에 올라가 사람들의 이목을 불러 모으고는 오늘 파티에 참여해서 함께 즐겨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행운권 번호를 추첨하기 시작했다.

별 기대 없이 서있던 우리의 번호가 연속해서 두 개나 불렸다.

두 번이나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경품을 받아온 아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엄마, 우리 두 번이나 당첨이에요!" 



경품은 집 근처 쇼핑몰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의 상품권이었다.

처음엔 이 쿠폰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당첨됐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던 아이들은 음식점 쿠폰이라는 걸 알고는 당장 내일 다녀오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엔 쭈뼛쭈뼛 대며 어울리지도 못했으면서 언제 그랬었냐는 듯 오늘 파티가 너무너무 재밌었다는 아이들을 보니 '그렇지.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다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핼러윈에는 또 어떤 새로운 일들이 생길까?'

들뜬 아이들과 함께 나도 덩달아 기대가 높아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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