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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락 Feb 13. 2024

사탕 사냥을 떠나봅시다

미국에서 1년 살기

기다리고 기다리던 'Trick or Treat'을 위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5th grade인 반 친구들은 이제 그런 건 시시해서 안 할 거라며 쿨내 풍긴다는데, 첫째 아이는 혼자라도 온 동네를 돌아다닐 거라며 신이 났다.

아이들의 기대만큼이나 커다란 호박바구니는 마트에서 보자마자 오늘의 트릭오어트릿을 위해 마련해 두었다.

호박바구니를 가득 채워 돌아오자며 호기롭게 집을 나선 아이들은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나의 사진요청에 흔쾌히 익살스러운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우리 아파트엔 핼러윈 장식을 해 둔 집들이 별로 없었고, 현관등을 켜둔 집도 없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제대로 핼러윈 기분을 내기 위해건너편에 있는 타운하우스단지로 향했다.

단지 안의 거의 모든 집들이 각종 핼러윈장식들로 현관 입구를 꾸며놓고 현관등을 환하게 켜둔 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예 사탕을 나눠주려고 집 밖에서 분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이 분장을 하고 트릭오어트릿을 위해 돌아다닌다면 좀 큰 아이들은 분장을 하고 집에서 그 아이들을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단지를 한 바퀴 돌며 구경하던 아이들은 정작 초인종을 눌러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잔뜩 긴장을 해서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단지의 끝에 다다러서야 현관불이 환하게 켜진 비교적 소박한 핼러윈 장식의 집을 첫 목표로 정했다.

서로 초인종을 누르라며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가위바위보에 진 첫째 아이가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Trick or treat!"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에서 나온 여자분이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사탕과 초콜릿을 나눠주었다.

무사히 첫 번째 미션을 마친 아이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알고는 본격적으로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아이들 모두가 슈퍼마리오 의상을 맞춰 입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집도 있었다.

방문하는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도 해주며 가족 모두 한껏 즐기는 듯했으나 막상 어른들까지 코스튬을 갖춰 입고 입구에 나와있으니 오히려 아이들은 선뜻 다가가질 못했다.

"엄마, 이 집은 좀 부담스러운데...... 그냥 지나가면 안 돼요?"





초인종을 누르고 트릭오어트릿을 외치며 사탕과 초콜릿을 받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분장을 하고 집 앞에 서서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아이들을 통과해서 사탕을 집어오는 것도 스릴만점이었다.

혼비백산하며 달려 나오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 아이들을 보니 구경하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트릭오어트릿에 참여하는 집들 중엔 아예 밖에 의자와 테이블을 펴 놓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을 기다리는 집들도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한참을 서서 서로 근황을 묻거나 훌쩍 커버린 동네 아이들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등을 켜 둔 집마다 초인종을 울리며 정신없이 동네를 돌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어두워질수록 조명이 하나 둘 켜지며 핼러윈장식들은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장식한 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집은 작정하고 헌티드하우스 콘셉트로 장식을 해서 아이들이 감히 접근하기조차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트릭오어트릿을 외치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어쩌다 보니 처음 보는 아이들과 동선이 겹쳐서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그게 또 재미있었는지 여태까지 받은 사탕과 초콜릿들을 서로 자랑하며 함께 다음집으로 뛰어갔다.



호박바구니가 점점 무거워져서 이젠 들기조차 어려울 정도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의 트릭오어트릿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의 호박바구니는 단연 가장 크고 시선을 끌어서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마다 첫마디가 "와우, 정말 큰 호박을 들고 다니는구나. 이걸 다 채우려면 오늘밤을 새워야 할 것 같은데?" 라며 웃었다.

소박하게 한주먹 집은 아이에게 그 호박을 채우려면 한번 더 집어가라며 권유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바구니 크기에 비례한 듯 한 번에 받는 사탕과 초콜릿의 양도 더 많았다.



따라다니던 우리가 지칠 정도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아이들은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는 말에 "한집만 더요, 딱 한 집만 더요."라며 집으로 돌아가기를 미뤘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와서 밤에 이렇게 돌아다녀본 건 처음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렇게 여유롭게 동네를 걸어 다니다니.

그동안은 날이 어두워지면 왠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며 혹시 모를 위험을 겁내고 위축돼 있었던 것 같다.

미드에 익숙한 나에게 미국의 밤거리는 범죄가 난무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는데.

가을로 접어든 선선한 날씨는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예쁘게 장식된 핼러윈 풍경은 반짝이는 조명이 더해져 너무 낭만적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인 듯 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상황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안전한 주택가 안이기도 했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특별한 날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무거우니 들어준다고 해도 끝까지 둘이서 낑낑대며 들고 온 호박바구니엔 온갖 사탕과 젤리, 그리고 초콜릿이 가득했다.

"엄마, 우리 진짜 많이 받았죠? 우리가 제일 많이 받았을 거예요. 앞으로 일 년 동안 먹어도 다 못 먹을 거 같아요."

흠. 글쎄? 과연 그럴까? 한 달 안에 다 먹어치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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