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락 Feb 20. 2024

그동안 우리가 배운 것들을 보러 오세요

미국에서 1년 살기

이제 곧 방학이니 이번학기엔 더 이상 학교에 방문할 일이 없을 거라 마음 놓고 있었는데 1학년인 둘째 아이의 반에서 학부모들을 초청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Rock Project Culmination'

아이에게 물어보니 이번 텀 동안 배웠던 것들을 학부모들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라고 했다.

1학년이라 그런 걸까? 한국에서보다 학부모가 학교에 갈 일이 훨씬 많은듯한 느낌이다.

애들 학교에 가는 건 여전히 긴장되고 편하지 않은데......


이번 학기의 주제가 'Rock'이라는 건 아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지난번 워싱턴에 갔을 때 박물관 기념품샵에서 산 색색의 돌멩이들을 아주 소중하게 들고 학교에 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친구들에게도 이 돌들을 보여주고 싶다며 내가 알려준 간단한 영어문장을 포스트잇에 적어 계속해서 되뇌었다.

"이건 워싱턴 DC에 있는 박물관에서 사 온 여러 가지 색의 광물들이야."

아이들 앞에 서서 암기한 문장을 말하며 돌들을 보여주고 온 아이는 친구들이 너무 예쁘고 신기하다고 했다며 신이 났다.

정말 아끼던 돌들이었는데 그중 몇 개는 갖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데......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훨씬 더 많았을 텐데, 미처 다 하지 못하는 말들 때문에 얼마나 답답할까 안쓰러웠다.


오후 2시.

아주 어중간한 시간이었음에도 엄마들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함께 온 집들이 많았다.

아무리 봐도 아빠들이 이렇게 학교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미국은 이렇게 아이들에 관한 일에 대해선 반차나 월차가 자유로운 걸까? 

덕분에 오피스에서 방문자 등록하는 줄이 길어져서 여유 있게 미리 갔음에도 2시 10분이 넘어서야 아이의 교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실 앞에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지켜야 할 사항들이 적혀있었다. 

부모들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부탁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대로 돌아가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 같았다.

각 조마다 맡은 주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한창이었다.

먼저 도착한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설명을 들으며 그동안의 결과물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스포츠센터나 마트, 생일파티에서 마주쳐 얼굴이 익숙한 몇몇이 보였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한창 발표를 하는 중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걸 모르는 눈치라 담임선생님과 먼저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구글번역기까지 사용하며 아이와 소통하려고 노력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아이가 덕분에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요즘에는 자기가 번역기를 안 써도 될 정도로 알아듣고 잘 따라오고 있다며 걱정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동안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통해 미국학교의 선생님들 중에 인종차별이 심한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어 혹시라도 그런 선생님을 만날까 걱정이 되었었다.

가까운 지인의 아이도 미국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부터 등교거부를 해서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도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자꾸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스트레스일 것 같아 아이가 간간히 해주는 학교 얘기에 귀를 쫑긋하고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셨다, 친구가 뭘 해줬다, 보조선생님이 뭘 도와주셨다, 하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얼굴은 누가 봐도 잘 적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첫인상부터 씩씩하고 다정했던 담임선생님이 계셨기에 아이가 더욱 잘 적응한 것 같아 막상 선생님의 웃는 얼굴을 보니 감사한 마음에 울컥해졌다.



시작시간이 넘었는데도 우리가 도착하지 않자 불안했던지, 교실에서 우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웃는 얼굴로 다가와 품에 안긴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미안. 사무실에서 등록하는 줄이 너무 길어서 한참 걸렸어. 엄마 아빠 안 올까 봐 걱정했어?"

"빨리 와봐요. 우리 조는 저쪽이에요."

3~5명씩 짝을 지어 그룹마다 주제가 달랐는데, 5명이 한 조인 아이의 조는 주제가 다이아몬드였다.



나와 남편이 보드판 앞에 서자 아이들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자신이 맡은 부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둘째 아이도 자신의 순서가 되자 달달 외웠던 문장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비록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오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외웠을지 눈에 선했다. 

발표가 모두 끝나고 프레젠테이션 보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내 곁에 선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글씨를 쓰고 그림은 자기가 그렸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이 각자 잘하는 것들을 나눠서 하며 서로 격려하고 배려해 주는 모습이 참 예쁘고 고마웠다.

아이와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아이들 하나하나 이름을 물어보며 얼굴을 눈에 익혔다.

여전히 내 눈엔 다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나중에 집에 가서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고 꼭 이름을 외워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옆 부스로 이동하며 다른 조의 발표도 들었다.

생일파티 때 만났던 아이들은 이제 얼굴을 알아서 그런지 수줍어하면서도 먼저 인사를 해주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이 아이가 저 아이 같고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 구별이 안 됐는데, 어느 정도 눈에 익으니 아이가 얘기해 줬던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되기 시작했다.

학교에 오는 건 여전히 두렵지만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아는 얼굴들이 늘어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편안했다.

아이가 요즘 친하게 지낸다는 아이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쏟아낸 설명들을 알아듣기는 매우 힘들었지만,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설명해 주는 아이들에게 호응하려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발표를 듣고 난 후에 간단한 질문으로 피드백해 주는데, 나는 그저 엄지 척하며 참 잘했다는 칭찬밖에 해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도 나의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진심은 전해졌으리라 기대하며 다음 조로 이동했다.


마지막 조는 반에서 제일 장난꾸러기 세 명이 모여 한 조를 이뤘다.

얼굴을 보고 나니 아이를 통해 들어왔던 그동안의 일화들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그 유명한 장난꾸러기들이 너희였구나.'

장난꾸러기 조 답게 발표하면서도 서로 툭탁툭탁.

니 차례잖아, 내 차례잖아, 옥신각신하면서 후다닥 발표를 끝내더니 나를 보며 "우리 사진 찍어도 돼요." 라며 나란히 포즈를 취해줬다.

내가 그 전의 조들 발표를 보며 연신 사진을 찍는 걸 본 모양이었다.

이런 장난꾸러기들 같으니라고.  



이번 학기가 시작되고 열흘정도 지난 후에야 입학했기 때문에 더욱 짧게 느껴지는 학기였지만 그래도 그동안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재밌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마음이 놓였다.

담임선생님도 보조선생님도 같은 반 아이들도, 그리고 아직 잘은 모르지만 학부모들도 친절하고 다정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는 걸 보면 남은 학기들도 큰 무리 없이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https://go-with.tistory.com/category/%EB%AF%B8%EA%B5%AD%EC%97%90%EC%84%9C%201%EB%85%84%20%EC%82%B4%EA%B8%B0



작가의 이전글 한국의 단풍나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