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땅 Dec 27. 2023

12. 지방소멸 대신 탈성장

지방소멸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지방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 고향 문경은 석탄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는 인구가 16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7만 명이 채 되질 않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줄고 있어 인구소멸 위험지역 중 한 곳으로 분류되죠. 그러면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을까요? 영, 정조 시대에도 한반도 전체 인구가 800만 명이 되질 않았으니 지금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이 살았을 것입니다. 엉뚱한 소리인지 알지만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인구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것이고, 여기서 인구가 더 준다고 해서 문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지금보다 줄어도 문경은 그곳에 있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문경새재'를 찾아 문경을 방문할 것입니다. 


물론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나 국토의 균형 발전 측면에서는 분명 지방소멸이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문제인가요?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를 쓴 이동호 님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농촌은 도시가 커지는 만큼 피폐해졌다. 강준만 교수는 '지방은 내부 식민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농촌은 젊은이와 식량을 도시로 보냈고, 도시는 농촌으로 혐오 시설과 쓰레기를 보냈다.


도시에 사시는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깨끗한 아파트에 살며 에너지는 마음껏 쓰고 쓰레기는 재활용장에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그 사이 모든 환경적 부담은 지방으로 전가되어 왔습니다. 전국에 산재한 발전소나 시멘트 공장, 쓰레기산 등의 위치만 확인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이 글은 저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다 차츰 정말 심각한 건 지방소멸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 도시가 지방을 약탈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 그래서 지방소멸에 대한 성장 일변도의 대응 대신, 이러한 시스템을 깨뜨리는 지방의 탈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지방소멸 위험에 빠진 전국의 소규모 지자체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내용의 지원책을 가지고 도시의 한정된 귀농귀촌 인구를 대상으로 경쟁할 필요가 뭐가 있나요? 환경을 오염시키는 공장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굳이 경쟁에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 또한 일종의 자원 낭비 아닌가요? 오히려 지방이라도 탈성장적 정책을 통해 슬로 시티,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데 집중해 보자는 거죠! 


인구야 좀 줄면 어떻습니까?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광역 단위로 묶어서 관리하면 됩니다. 한국과 같은 IT 선진국에서 그걸 못해 낼 리 없습니다. 대신 지방을 잘 관리하여 보다 삶이 여유롭고 자연은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금도 문제가 되는 빈집들을 체계적으로 잘 정비하고, 공공의료도 확충하고요.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언제든 내려와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겁니다. 일종의 1국가 2체제처럼요. 


이미 이러한 실험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탈성장으로 포장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서는 5년 간의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정주 인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청산면에 거주하는 주민 모두에게 월 15만 원(연 18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사업인데요. 사업 덕택에 청산면 인구가 2021년 말 3,895명에서 2023년 2월 4,241명으로, 시행 1년 만에 346명(8.9%)이나 늘었다고 합니다. 소규모 점포도 늘고 지역 내 소비가 살아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감지되고 있고요.  


(정치인 여러분,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지방소멸 걱정하지 마시고 지방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연천군청


전라남도 화순군에서는 '만원 아파트'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보증금 없이 월 1만 원만 내면 최대 6년 간 지역의 20평 아파트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업인데요. 2023년 상반기에 처음으로 50세대를 모집하였는데, 경쟁률이 10:1이 넘을 만큼 신청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사업이 성공하자 전라남도는 해당 정책을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도내 16개 군으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고요.


화순군 만원 아파트 전경


물론 연천군이나 화순군이 '탈성장'에 동의했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저출산이 문제라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