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로 돌아가서, 만약 과감한 정책적 변화를 통해 전 세계가 합의하여 모두가 하나의 지구 생태용량 안에서 생활하기로 결정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처럼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도 오지 않았을 겁니다...)
<디컨슈머>란 책에 따르면 한국인이 지구 생태용량에 맞게 생활했던 마지막 해는 1979년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한국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전 세계인이 생활한다면 지구가 1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이죠.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1970년이 지구의 생태용량에 맞춰 생활하던 마지막 해였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모두가 1979년으로 돌아가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상상을 한번 해보자는 것이죠.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23년 현재 지구 생태용량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라의 예를 들어드리면, 아시아에는 라오스(1.1개), 미얀마(1개), 캄보디아(0.9개) 등이 있고 중남미에는 쿠바(1.1개), 에콰도르(1.1개) 등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이 나라들로 이민을 가서 살아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 '거길 어떻게 가서 살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의외로 살만한 것도 사실입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떠올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이란 시간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가족과 함께 보냈습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캄보디아사무소에서 일하며 캄보디아의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된 일을 했었는데요.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연결된 깨끗한 아파트에 살았고, 작은 차도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 보냈고, 주말이면 마트로 장을 보러 다녔죠.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곳곳에 있었고, 한강공원과 같은 워터프런트도 있었습니다. 물론 불편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문봉사단원(International UN Volunteer) 신분이라 많은 돈을 받지도 않았고 한국에서는 내지 않았을 월세도 내야 했지만 삶은 더 여유로웠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쿠바는 탈성장의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수십 년간 지속된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성장을 거세당했지만, '순환형 사회'라는 새로운 대안체제의 모색을 통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개발의 조건을 충족시킨 나라가 되었죠. 쿠바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의료 시스템이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로 의료진을 파견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인당 GDP가 1만 달러에 불과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G7의 일원인 이탈리아(3만 5천 달러) 지원에 나선 것은 꽤나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여전히 비관적이신가요?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탈성장을 한다고 해서 현재의 한국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하루 아침에 캄보디아나 쿠바와 같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우선은 분배를 늘려 불평등을 줄이고 공공서비스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테니, 오히려 행복지수 상위권을 석권한 북유럽 국가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물론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나라도 한국처럼 지구가 4개나 필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소비하는 자원의 양을 1/4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 숙제는 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