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아니, 여전히 저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몇 달 전 편지를 하나 받았거든요. '카톡~'하는 울림과 함께 날아든 3장의 사진은 워드로 타이핑한 후 인쇄한 것을 카메라로 찍어 전송한 장인의 편지 아닌 편지였습니다.
평온한 일상 속에 날아든 그 편지엔 저에 대한 온갖 비난과 힐난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간 점잖고 사람 좋아 보이던 한 노신사의 마음속에 이런 미움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장문의 글을 읽으며 제 마음은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출처: chatGPT 이미지 생성)
스페인에는 이런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고, 매정한 말은 영혼을 관통한다."
이 말보다 그때의 제 마음을 더 정확히 표현한 말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한마디 말도 이러할 진데, A4 3장이 매정한 화살로 도배가 되었으니 제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시나요?
반년이나 지났지만, 전 아직 그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생각이 나 제 머릿속을 해 집어 놓거든요. 그럴 때마다 생각해 봅니다. 왜 그런 편지를 보내셨을까? 왜?
그분 마음속을 제가 들여다볼 수가 없으니 답은 알 수 없겠으나, 짐작은 하게 됩니다.
남들은 없는 돈이라도 당겨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느라 난리인데, 사위란 놈은 강화도에 땅을 사고 자연농법을 실천한답시고 비닐도 사용하지 않고 풀만 잔뜩 기릅니다. 남들은 경쟁교육에 뒤쳐질 아이 걱정에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려 난리인데, 귀한 손녀를 문제아들이나 가는 대안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고요.
이해가 되실리 만무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게 '보통사람'이 되어달라고 하셨겠지요. 하지만 다른 시대를 살며, 다른 것을 보고 듣고, 다른 생각과 경험을 한 저를 제가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지난 추석에도, 아내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저에 대한 모든 걸 부정하신 분이기에 찾아뵌다 한들 제가 입이나 뻥끗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다 연휴 기간에 인터넷에서 '소통'으로 유명한 강사 김창옥 씨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습니다.
최근 펴낸 그의 책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에 보면 "차라리 사랑하지 마세요"라고 주문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게 무슨 의미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창옥 씨가 그러더군요.
“가족이랑 친인척 사이에 너무 사랑하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사랑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첫 관문은 예의라는 것이죠. 예의 없는 사랑이 가장 폭력적인 것 같아요. 모든 부모는 그렇게 말하잖아요. ‘내가 널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선배도 후배한테 ‘내가 너한테 애정 없으면 이 말 안 했어’라고 말하죠. 그러면서 예의를 안 지켜요. 예의를 안 지키면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결핍이나 얼크러진 욕망을 사랑이라고 잘못 말하는 것 같아요.”
제가 겪은 일 때문인지 이 부분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가족이라도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할 줄 알아야 가족의 화목도 지킬 수 있다는 그의 말, 어떠신가요?
시간이 지나면 오해도 풀릴 수 있을 거라 믿어보지만, 점점 더 여유는 사라지고 사고는 경직되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르게 살아간다는 건 역시나 쉽지 않은 길인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이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 오늘 하루도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