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수토 Jan 19. 2022

아들이 코로나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다. 지난주 월요일 하교 후 누워있기 시작했고 딱 일주일 만에 학교에 다시 갔다. 얘네 반은 스무 명이 안 되는데 5명이 걸렸다. 이 나라에선 독감보다 흔한 거 같은데 그래도 아직 역사적으로 증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병이니 일지를 기록해볼까 한다.


D+0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힘든 거 같애’라고 한다. 과연 얌전해졌다. 그래도 괜찮다고 축구 간다고 우긴다. 열도 없다. 아프면 가면 안된다 하니 아니 나 괜찮아 갈 거야 한다. 십분 만 있다가 다시 결정하자고 하고 뒤돌아 있었더니 땅에 엎드려있다. 들어가서 자라 했다. 그제야 들어가서 누워있는데 열이 안 나서 헷갈린다. 그렇지만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있다. 타이레놀을 먹이고 저녁에는 죽을 먹였다.


D+1

타이레놀은 4시간마다 약기운이 떨어진다. 밤새 자다 깨다 했다. 새벽 5시에 마루에 기어 나와서 힘들어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다른 가족은 방에서 아침을 먹었다. 9시에 깨서 누워 못 일어난다. 누워서 크루아상 가루를 줄줄 흘리며 몇입 먹고 부루펜 약을 먹였더니 겨우 일어나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약국 가서 받으면 30분 내로 문자가 오는데, 이번에는 전화도 왔다. 포지티브라고. 역시.


아이 본인도 놀라서, 자기 어떡하냐고 그러길래 그냥 쉬면 된다 했다. 한국에 있었음 병원에 갔으려나. 어쨌든 아이는 하루 종일 집에서 롱패딩을 입고(춥다며) 소파에 드러누워서 티브이를 봤다. 목이 약간 아프다 했고 기운이 없이 축 쳐졌다. 열은 별로 안 났다. 체온계가 거짓말을 하는가. 특이한 건 코피가 무섭게 났다. 그게 코로나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다.


D+2

밤에 만져보니 애가 난로처럼 뜨거웠다. 아침에 열을 재보니 38도가 나왔는데, 내 느낌으론 더 심하게 뜨거웠다. 목이 더 아프다고 했다. 아침에 타이레놀을 먹였다. 다시 롱패딩을 입고 소파에 누웠다. 디즈니 플러스에 어벤저스 관련 시리즈를 정주행 했다. 약 먹고 나서 열이 내렸다. 어제보다 덜 힘들어하기에, 아침에 한번 먹고 그 후론 약을 안 먹었다.


오늘도 코피가 여러 번 줄줄 나고 큰 핏덩어리 같은 게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 세 번 났는데 쓰레기통이 의료폐기물 수거함처럼 변했다. 소독제랑 항균 물티슈로 얼마나 닦았는가 모르겠다. 저녁은 입맛이 없는지 깨작거렸다. 그래도 냄새는 맡았다.


D+3

아침에 열없이 일어났다. 목이 약간 아프긴 해도 몸은 괜찮다고 했다.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도 한다. 누룽밥을 끓여 한 그릇 가득 먹였다. 다시 소파에서 디즈니 플러스에서 무슨 팔콘 나오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하나도 안 아파 보여서 공부를 시킬까도 했다. 그랬더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며 50미터를 9초 컷 할 수 있을 때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그럼 그때 축구도 보내주마 했다. 점심때 미역국을 끓였는데 약간 골탕 먹이는 기분으로 잔뜩 펐는데 다 먹었다. 저녁은 닭고기 줬더니 깨작거렸다. 오늘은 코피가 안 났다. 약도 안 먹고 지나갔다.


D+4

밤에 코가 막힌다고 잘 못 잤다. 콧물은 안 나는데 코피 덩어리가 뭉쳐서 그런가 싶다. 오전에 코피가 많이 났다. 벌레처럼 생긴 시커먼 덩어리가 나오고 나서야 멈추는데 시각적으로 매우 끔찍하다. 다른 증상은 없는데  팔팔하지는 않고 그저 티브이만 본다. 디즈니 플러스의 팔콘 앤드 윈터 솔저 시리즈를 끝냈다. 겉보기에 말짱해 보이는데 행동이 무기력해서 아빠한테 공부 안 한다고 혼났다.


D+5

11시까지 자고 일어났다. 몸이 어떠냐고 채근하면 아직 목이 약간 아프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보기에는 말짱하다. 평범한 아이 같다. 코로나 걸리기

전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평범한 아이 같지 않았다. 그러니까 예전 같지는 않다. 텔레비전만 계속 보다가 아빠한테 또 혼나서 학교 숙제를 시작했다. 오늘도 코피가 또 났다.


D+6

말짱해졌다. 동생이랑 까불기 시작했다. 월요일이 도래할 예정이라 자가 테스트를 해봤다. 두줄이 나오면 양성이고 한 줄이 나오면 음성이다. 음성이다! 좋아서 방방 뛴다. 그러나 한참 후에 들여다보니 또 한 줄이 생겨있었다. 양성인 것이다. 다시 풀이 죽었다. 보기 딱했다.


D+7

다시 월요일. 아직 잔기침을 한다. 하지만 멀쩡하다. 테스트를 위해 약국을 갔다. 벌써 이 약국만 몇 번째. 지난번에 뇌를 채취하듯 후벼 넣던 청년이 검사해준다. 다행히 오늘은 별로 안 넣었다고 한다. 집에 다시 가서 한 십분 더 기다리니 결과가 왔다. 초록색. 네거티브. 드디어!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오늘 아침에는 저도 몸이 너무 가뿐한지 아침부터 우줄우줄 춤추며 까분다. 뒤늦게 찾아보니까  아들 증상은 오미크론보다는 델타 변이에 가까운 듯하다.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드러누웠을  적잖게 고통스러워했다.


기왕에 무섭게 퍼지는 마당에, 빨리 걸려버린 게 낫다. 너는 이제 면역이 생겨서 별 걱정이 없지 않으냐,라고 그랬더니 아들이 말한다. 위로하려고 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안 걸리는 게 제일 좋아.


그건 그렇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강아지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