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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May 08. 2022

파리의 축구장 풍경  

Stade Emile Anthoine



지난 겨울 방학에, 남자 아이들은 무료 축구 교실을 다녔다. 친구들이랑 같이 가선지 재밌어했고, 끝나고도 집에 안 가려고 했다. 그렇게 겨울방학의 일주일을 축구와 놀이터로 불살랐고, 내 볼은 더 움푹 꺼졌다. 방학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일년씩 늙는 기분이다. 


이번 봄 방학에도 축구교실에 등록했다. 대신 구장을 바꾸었다. 막내 친구들이 오기도 편했고, 무엇보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나온, 에펠탑 근처 축구장이기도 해서 그랬다. 이왕이면 에펠탑이라도 한번씩 보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파리의 5월인데.

 

하지만 순탄하지 않았다. 게임하면서 형들에게 핀잔을 들은 막내는 두번째 날 이후 가기 싫다고 했다. 아들의 잦은 포기가 걱정된 남편은, 막내에게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연설을 했고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을 반성하라고 했다. 막내는 용기를 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용기를 내겠습니다라고 일기에 썼지만 용기란 것이 턱 하고 생길리는 없었고, 그래서 용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고 끙끙거렸다. 말 그대로 하루는 앓아누웠는데, 그래도 그 하루를 빼고는 다 갔다. 축구할 때 엄마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막내의 부탁이 간곡해서, 나는 그 축구장에서 세시간씩 대기해야 했다. 듣던대로 아름다운 그 축구장에서 나는, 용기란 것을 내보려고 애쓰는 막내의 동그란 어깨와, 뾰족히 솟은 에펠탑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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