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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Jul 15. 2022

자신감

축구 꿈나무

원래 축구를 좋아했던 둘째는 여기 와서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됐다. 거의 도착하자마자, 프랑스 아이들만 다니는 축구 클럽에 갔다. 시범 수업 후에 등록하면 된다고 해서 데리고 갔는데, 과연 축구의 나라답게 운동장이 크고 좋았다. 그렇지만 말을 못 알아들으니 우물쭈물하는 순간이 많았고, 친구가 없으니 우두커니 서있는 시간이 길었다. 끝나고 나오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어땠어? 여기 등록할래?" 그랬더니 아들은 답했다. "당연하지."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는 인생에서 이 축구클럽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군다. 보통 친구가 없어 안 간다고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니 그 열정이 고맙긴 했으나, 적당한 것이 없는 아이라서 그것 때문에 많이 혼났다. 30분 전쯤 나가면 충분한데 50분 전부터 나가자고 해서 혼나고, 같이 가야 하는 누나와 동생을 사납게 채근해서 혼났다. 선생님이 토요일 경기 장소와 시간을 메일로 보내주는데, 그 뻔한 얘기를 자기가 읽어보겠다고 핸드폰을 자꾸 빼앗아 가서 혼났다.


무엇보다 매일 운동장에 가자 해서 많이 구박을 받았다. 이곳 겨울에는 자꾸 비가 오고 6시만 돼도 깜깜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5시가 넘는데 자꾸 운동장에 가자고 졸랐다. 나는 도시락도 부셔야 하고 저녁밥도 해야 하고 애가 너만 있는 게 아니라고 버텼지만, 30분만 가자, 한국에선 가더니 왜 여긴 안 되냐 등등 끝도 없이 졸랐다. 지쳐서 데리고 가면 깜깜한 운동장에서 비를 맞아가면서 리프팅 연습을 했다. 엄마 추우니 집에 가자 하면 안 간다고 해서 또 혼났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여전히 축구 코치는 이 아이는 원래 이렇게 "timid"하냐고 묻는다. 수줍고 얌전하다는 뜻이다. 학교에선 ‘말이 많고 장난이 심하다’는 코멘트가 적힌 리포트를 받아야 했던 엄마로서 헛웃음이 난다. 그래도 많은 시간을 공들여서 쌓았고, 축구도 많이 늘었다. 학기 끝자락에 토너먼트에 나갔는데, 얘네 팀이 2위를 했다. 그리고 그날 어떤 경기에서 둘째가 골을 넣었다. 둘째는 활짝 웃으며 초록 운동장을 다다다다 달렸고, 빨간 유니폼을 입은 같은 팀 친구들도 신나서 둘째 뒤를 우르르 따라 달렸다. 챔피언스 리그도 이만한 경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축구를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들이 있었다. 무리에서 혼자 저만치 떨어져서 빙빙 돌다가, 마치 다른 나라 말하듯이 더듬더듬거리면서 조심스럽게 뛰고, 뛰지 않을 때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있고. 자랄 틈이 없게 뜯어먹어서 이곳에 와서  번도 손톱을 깎아주질 못했는데 손을 볼때마다 속상했다.


어느 날 우연히 본 TED에 축구 코치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부모들에게 아이가 뭘 잘하냐 물으면 빠르다, 왼발을 잘 쓴다 등을 얘기한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어려운 것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힘이다. 그럼 자신감은 어떻게 배우나? 다른 방법이 없다.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한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더 일찍 가서 버티고 서 있거나 비 맞아가면서 하고 또 했던 리프팅이 다 자기 방식으로 자신감을 쌓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버겁지만 자꾸 다시 해보는 것. 아직 모자란 면이 수두룩한 아이이지만 단단한 마음은 퍽 자랑스럽다.


이번 주도 내내 아침부터 축구 방학특강을 갔다. 어제 즉석에서 성사된 경기를 했는데, 코치가 " 없이 잘한다"라고 칭찬했다. 둘째는 여전히 timid 척하면서 미소지었다.  생각했다.  너를 시련으로 던져 넣었나 걱정했지만 너는 너만의 힘으로 극복했고, 이렇게 획득한 기억이 미래의 성공과 실패에 보탬이 되기를. 그리고 이제 할만하면,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해보고 손톱도 다시 매처럼 길러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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