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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PD Nov 11. 2020

Epilogue.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퇴사 선언 후의 에피소드 

#1. 인수인계가 더더욱.

그만두겠다고 말한 이후로 시간은 정말 빨리 갔다. 

회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왔고

프로젝트와 더불어 새로 오신 분의 인수인계도 해야 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두배로 바빴다. 

후임자 분은 입사와 동시에 프로젝트와 업무 인수인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입사 일주일째부터 지쳐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나도 군더더기 없이 인수인계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맡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줘야 했다. 방대한 업무 내용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퇴사하겠다고 말했던 한 달 전부터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갔다. 

D-14, D-7.. D-4,3,2

D-1..


후임자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에게 속내를 드러냈다. 

"여PD님 떠나시면 전 어떡해요 ㅠ 여PD님 빈자리가 정말 클 것 같아요."


#2. 사람들의 눈치는 정말 빠르다.

책임이 이렇게 말했다. 

"여PD님 소장님께서 남아있는 연차 이번 달에 다 쓰고 그만두는 걸로 하래요."

그래서 그만두는 달 말에 몰아서 썼다. 

쉬는 시간에 잠깐 쉬러 밖에 나왔는데 

어떤 다른 부서 과장님들이 말했다. 

"여PD님 그만두세요?"

"네"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다 알려질 거니까. 


"연차 몰아서 쓰신 거 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요."

(우리 회사 그룹웨어를 켜면 다른 사람들의 연차 사용한 내역까지 딱 다 나온다.)

최대한 꼭꼭 숨기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려고 한 나의 계획은 단 하루 만에 무너졌다.


#3. 회사도 사람 사는 곳이야.

그만두기 일주일을 남겨두고 수석연구원님께서 나에게 물어봤다. 

"너 언제까지 일해?"

"저 다음 주 금요일까지요."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에 밥 한 번 먹자."

그렇게 수석님과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난 그 자리에서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을 다 말했다. 

그분도 마찬가지로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분도 소장님께 상당한 불만을 보이고 있었고 그 불만은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평소에 업무적인 이야기 외에는 자기 일을 하느라 평소에 말을 별로 안 하고 조용한 회사였는데 

그제야 '이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 만큼 정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수석님은 덧붙여 

"내가 너 나이였으면 당장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한 번 생각해봤을 텐데..

나가서 후회 없이 맘껏 하고 싶었던 거 해봐."라고 말씀했다.

나는 30대 중반이고 퇴사를 선언했다가도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는데 한 번 또 위안이 되었다.


#Last.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책임님은 말했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 퇴사를 하다니 돈이 많은가 봐."라고 

맞다. 코로나 시대라서 고용이 불안하고, 나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서 불안하다. 

그런데도 왜 퇴사를 결심했냐고 묻는다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지금처럼 일했다가는 그저 회사라는 기계 안의 작은 톱니바퀴 하나로만 남을 것 같아서."
"지금껏 한 분야에서만 일해왔는데 양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시야를 좁게 살아온 것 같아서. 다른 세상은 어떨까 지금이 아니면 평생 알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갈 것 같아서." 

이제 퇴사를 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이렇게 자아를 성찰하는 시간도 나에게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말 후회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꿈꾸고 

놀고 

사랑하고 

노력하고

인내하고 

성취하고 싶다.

내 인생이 빛나도록.

P.S :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글을 쉬는 사이사이의 기간도 많았지만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사실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 느꼈던 감정을 많이 끌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있었는데 꾸준히 라이킷을 눌러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또 쓰고 싶은 글감이 많은데 조금 힘을 빼고 자유롭게 써볼까 합니다. 다시 한번 끝까지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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