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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05. 2024

무단투기하는 마음

국도변 곰탕집 앞 쓰레기산을 보고서

경기도민이 일과 사람이 모여 있는 서울로 오가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다. 대체로 도착시간을 예측할 수 있지만 답답한 전철(+지하철)과 도착시간은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지만 버스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일반 도로가 있다. 보통 서울로 갈 때는 전철을 이용하고, 집에 올 때는 느긋하게 국도를 택한다. 내향형 인간에게 한적한 국도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기다란 도화지 같다. 매일 사소하게 바뀌는 창밖 풍경을 눈에 담으며 온갖 망상에 젖는다.      


몇 해 전 겨울, 국도변 가까이에 커다란 가마솥을 내걸고 하얀 수증기를 펄펄 내뿜으며 곰탕을 끓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끌벅적한 개업식의 여흥이 사라지지도 않은 봄 문턱에 곰탕집은 문을 닫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배턴 터치하듯 새 주인이 새로운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곰탕집 주차장에는 여름이 되자 잡초가 성인 남성 허리 높이만큼 자랐다. 가을 태풍 비바람에 간판과 외벽 페인트가 떨어져 나갈 때쯤부터 식당 앞에는 조금씩 폐기물이 쌓여갔다.      


한동안 그 길을 잊고 지내다 얼마 전 그곳을 지나게 됐다. 마지막 기억으로는 불법 투기한 폐기물이 몇 개 쌓여 있던 곰탕집. 이제 그곳에는 자기 발로 걸어올 리 없는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미니 냉장고, 트럭 타이어, 정수기, 전기압력밥솥, 세발자전거, 아기 욕조, 각종 건축 폐자재가 담긴 포대까지 쌓여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곳이 영업을 하던 곳이라는 걸 상상도 못 할 만큼 폐허가 됐다. 물론 폐업 후 초반에는 외부인 출입을 막는 접근금지선이 있었다. 나 하나쯤 버리는 건 티도 안 난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켜보는 눈이 없으니 몰래 가져다 버린 쓰레기가 점점 쌓였다. 어느새 접근금지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쓰레기는 무한 증식했다.      


관리자가 없는 폐건물에 빠르게 폐기물이 쌓이는 것처럼 지켜보는 이가 없는 인생에는 쓰레기 같은 나쁜 습관이 빠르게 쌓인다. 나건 남이건 깎아내리는 건 쉽다. 절망과 비난은 가깝다. 부정적인 생각은 거리낌 없이 쓰레기 같은 습관을 자신에게 무단투기한다. 하나가 버려져 있으면 두 개 째부터는 마음의 짐도 없다. 작은 걸 버렸으니 큰 건 더 쉽다. 무엇이든 버리니까 죄책감 없이 투척한다. 끊임없이 관리하지 않으면 쓰레기 같은 습관이 쌓여 정신과 몸이 폐기장이 된다.      


한동안 숨 쉬는 것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모든 것에 손을 놓고 지낸 적이 있다.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것, 글 쓰는 것, 사람 만나는 것,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좋아하던 것들이 다 싫어지면서 나를 방치하는 날들이 쌓였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건 나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뿐이라는 다짐이 덜컥 잘려 나간 듯 사라지고 나니 남는 건 나쁜 습관뿐이었다. 운동은커녕 잘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자기 비하에 젖어 있을 때, 가장 쉬운 건 나를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부서진 습관은 나를 찌그러뜨리고, 파손된 몸과 마음은 다시 부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길바닥에 사탕 껍질 하나 버리는 것도 조심했던 사람이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대형 폐기물을 무단투기하는 사람이 된 거다. 하나쯤이야에서 시작한 나쁜 습관 불법 투기가 피폐한 몸과 마음을 만들었다.      


눈 뜬 시체처럼 침대 위에 며칠을 누워 생각하니 내 방이, 내 일상이, 내 삶이 무단투기 된 폐기물로 엉망이 된 국도변 곰탕집 같았다. 당장 치우지 않으면 쓰레기 이자가 불어날 거 같았다. 이미 차고 넘치는 쓰레기장에 폐기물 하나 더 한다고 달라질 거 없다는 나약한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들까 봐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널브러진 쓰레기 같은 나쁜 습관들을 하나씩 치웠다. 망가진 루틴을 제자리로 돌리고, 무너진 멘털을 다잡고 있다. 회복은 천천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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