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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26. 2024

요즘 내가 달고 사는 말, 일단 해보지 뭐

실패의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

평범한 오후, SOS를 청하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샌드위치 카페를 운영하는 절친한 지인의 도움 요청이었다. MT를 간다는 대학생 주말 아르바이트생의 대타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손에 익지는 않은 일이지만 어설픈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라 냉큼 수락하고, 토요일 아침 카페에 도착했다. 일찌감치 도착해 영업 준비를 하는 사장님을 따라 냉큼 앞치마를 둘러맸다. 개업 초 몇 번 가서 거들었던 적은 있지만 오래 손을 놓고 있어서 살짝 긴장됐다. 평일보다 주문이 많은 주말 오전은 이곳의 피크 시간이다. 일주일 매출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말 오전에 선발 등판하게 되니 어깨가 무거웠다. 어설픈 일일 아르바이트생이 구멍을 내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주인장은 복잡한 샌드위치 만들기와 주문받기는 본인이 맡을 테니 상대적으로 단순한 음료 만들기와 포장을 담당해 달라고 했다. 벽에 레시피가 붙어 있긴 했지만 익숙지 않은 내 눈에는 그저 아랍어로 적힌 이슬람교 경전, 코란처럼 보였다. 무궁무진한 이름과 복잡한 재료를 조합해 무사히 음료를 만들 수 있을까? 걱정됐다. 그러다 요즘 내가 달고 사는 말이 떠올랐다. 꽁꽁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처럼 그 말이 입에서 삐져나왔다.    

  

일단 해보지 뭐
  

그 말을 내뱉은 일일 아르바이트생은 어떻게 됐을까? 한꺼번에 최대 17잔의 음료를 만들어 내 기준 역대 기록까지 세우며 토요일을 하얗게 불태웠다. 컵 크기를 헷갈리고 굵은 빨대가 필요한 음료에 일반 빨대를 내놓기도 했다. 에스프레소 2샷을 넣어야 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3샷을 넣었다. 우당탕 실수투성이였지만 (속은 탔겠지만) 너그러운 사장님과 이해심 많은 손님 덕분에 별다른 컴플레인 없이 하루를 마쳤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니까 당연히 실수할 테고, 그 실수 후 이불 킥 하며 쪼그라들 내가 싫어 이전의 나였다면 피했을 일이었다. 그렇게 편협한 생각으로 안전하지만 답답한 내가 만든 감옥 같은 세상에서 평생을 살았다. 완벽할 수 없으면서 완벽하기를 바라는 어설픈 완벽주의자에게 하늘이 내린 벌이었다. 천재라면 처음부터 잘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시작에는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자꾸 부딪히면서 실수를 줄여나가고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놀라울 만큼 세상은 내 시작에 관심이 없다. 고심의 시간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시작이 한결 쉬워졌다. 신중이란 이름으로 우물쭈물할 시간에 시작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러니 헛발질을 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결과물을 만들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경험이 쌓였다. 불안과 걱정이 많은 성격 때문에 시작을 주저할 때마다 주문처럼 되뇐다. 일단 해보지 뭐. 예방 주사를 맞듯 작은 실수를 하고 수습하는 법을 배우면서 나중에 정말 중요한 일을 할 때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실패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수히 부딪히고 깨지면서 삶의 굳은살이 생기는 수밖에 없다.      


실패해도 수습할 시간도 많고, 세상의 눈초리도 너그러운 20대 초반에 이걸 알았다면 난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종종 생각한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결론이 나를 기다린다. 실패의 면역력을 만드는 방법을 지금이라도 안게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무심하게 시작한다. 한 달에 하나씩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기로 한 2024년. 1월에는 인스타​를 시작했고, 2월에는 네이버 인물 정보​를 등록했다. 3월에는 동영상 편집을 시작해 인스타에 업로드 중이고, 4월에는 뭘 도전할지 고민 중이다. 뭐가 됐든 성공보다는 실패 쪽에 가까운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말을 읊조리며 가뿐하게 출발한다.


일단 해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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