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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16. 2024

허투루 오는 건 없으니까

내게 오는 것들에 담긴 마음에 대하여

얼마 전, 지인의 카페에서 일일 알바를 할 때였다. MT 가는 대학생 알바 대타가 필요하다는 지인의 도움 요청에 토요일 오전, 가벼운 마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개업 초기 몇 번 가서 쉬엄쉬엄 도와준 적은 있지만 정식알바는 아니었다. 작고 귀여운 그때의 경험도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앞치마를 둘러맸는데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주말 오전은 그 카페의 피크 시간이다. 밀려드는 배달 주문과 종종 오는 홀 손님을 동시에 응대하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빨리빨리 민족을 만족시키기 위해 좁은 음료대와 픽업대 사이를 바쁘게 움직였다.      


참을성도 인내심도 사라진 시대에 자칫 꾸물거렸다가는 손님들이 쥐고 흔드는 별이 날아갈 수 있다. 그러니 주문 알림음이 울리면 총알처럼 튀어 나간다. 배달의 경우 주문 내용과 수량을 파악하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담을 컵을 준비한다. HOT/ICE를 구분해 뜨거운 물이나 얼음을 담고 물을 채워 실링기에 올린다. 실링이 붙는 사이 음료를 담을 비닐과 끼울 컵 슬리브, 빨대와 냅킨도 챙긴다. 제조 음료라면 더더욱 복잡하다. 음료 레시피가 익숙지 않은 나는 벽에 붙은 레시피 표를 커닝하듯 훔쳐보며 음료를 만들었다. 그사이 사장님이 샌드위치나 브런치 메뉴를 완성한다. 포장 용기에 담긴 음식과 음료를 차곡차곡 담고, 뽑아둔 주문서를 포장 비닐에 붙이면 끝! 배달 기사님이 와서 픽업하면 임무 완료다.       


그런데 내가 포장해 놓은 음료와 음식 중 빠진 게 없는지 마지막으로 체크하던 사장님은 배달 기사님이 도착하기 전 내가 포장해 놓은 내용물을 꺼냈다. 흐트러진 냅킨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감자튀김 봉지의 밀봉 스티커를 떼어 새 스티커로 다시 붙였다. 속으로는 생각했다. ‘빨리 만들어서 기사님이 빨리 손님한테 가져다주면 더 좋은 게 아닌가? 어차피 가다가 다 흐트러지는 게 일상일 텐데... 사장님의 책임감은 역시 달라도 다르구나.‘ 의아해하는 대타 알바생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사장님은 말했다.     


이래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평소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지 않는 나는 그런 디테일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나보다 배달 음식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사장님에게는 속도에 쫓기느라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 거다. 바르게 정리된 냅킨 하나에, 정방향으로 다시 붙인 스티커 하나에 음식을 보내는 사장님의 마음이 담겨 있었을 줄 몰랐다. 어느 하나 그냥 보내는 게 없었다.      


포장을 풀어 단정하게 다시 내용물을 정돈하는 사장님의 손길을 보면서 내게 왔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퇴근하며 받은 알바비로 닭똥집을 사려고 치킨집에 들어가 주문했다. 사장님은 튀겨진 닭똥집을 상자에 담으며 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가운데 부분을 산처럼 수북이 쌓는 데 정성을 들였다. 상자를 열고 기분 좋게 닭똥집 튀김을 먹을 손님을 생각하며 마지막 한 조각까지 보기 좋게 담았다. 어디 그뿐일까? 봄맞이 운동복을 사러 들어간 SPA 브랜드 계산대 직원은 바쁜 와중에도 옷을 구겨지지 않게 차곡차곡 예쁘게 개서 봉투에 담았다. 등산 중 숨이 가빠 한 사람 겨우 지나가는 좁은 길 직전에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인데 마침 그 길을 지나던 등산객 부대는 양보해 줘서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했다. 내 곁의 가까운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따뜻한 위로를 아낌없이 보내줬다.      


반면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걸 보내고 있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구실로, 귀찮다는 핑계로 함부로 건넨 건 없을까? 돌아봤다. 보내기에 급급해 방향이 비뚤어진 채 붙은 감자튀김 봉지의 스티커처럼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은 부끄러운 순간들이 숏폼 릴레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금세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심함과 속도에 지쳐 지나쳐 온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 허투루 오는 게 없었다. 내게 오는 건 건네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마음이 느슨해지고, 자세가 흐트러질 때 사장님의 그 말을 떠올려 본다.      


이래야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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