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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30. 2024

스콘이 하는 말

P의 스콘, J의 스콘

혹시 J세요?     


트레이 위 내가 만든 스콘 반죽을 본 선생님이 물었다. 2024년, 한 달에 1가지씩 평생 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하나씩 해 보는 중이다. 일명 ’ 월간 <난생처음> 프로젝트‘! 4월 도전분야는 베이킹이었다. 베이킹 계에서 난이도 ’ 하급‘인 스콘을 만들기 위해 평일 오전 망원동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로 향했다. 그날 수업 참여 인원은 총 3명. 계란빵 만드시는 분이 한 분, 나를 포함한 총 2명이 스콘 만들기를 했다. 선생님의 지도 아래 계량된 재료를 섞고 반죽을 만들었다. 빈대떡 모양으로 반죽을 도톰하게 펴고, 8등분 했다. 작은 피자 모양의 스콘 8조각이 나왔다. 반죽을 휴지 시키기 위해 냉장고에 넣기 전 트레이에 가지런히 올렸다. 뾰족한 삼각형 부분이 하나는 위로, 다음 거는 아래로 가도록 간격을 두고 4개씩 2줄로 놨다. 대문자 J인 나는 선생님의 질문에 허를 찔린 듯 놀랐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저 J인데...


아! 보통 J 성향인 분들이 그렇게 줄 맞춰 놓더라고요.  

   

수년째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선생님. 요즘 시대에 MBTI 만큼 좋은 스몰토크거리가 없다는 걸 잘 아는 분이었다. 평생 구두를 닦아 온 <생활의 달인> 구두닦이 편 주인공은 구두 굽 닳은 상태만 봐도 신은 사람의 성향을 유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베이킹 선생님은 수강생이 만든 반죽만 봐도 그 사람의 성향을 대강 파악했다.       


조용히 자기 스콘을 만들던 오늘 처음 만난 짝꿍 수강생도 화들짝 놀랐다.      


아... 그래서 내 건 이렇구나.     


고개를 돌려 짝꿍의 트레이를 보니 크기도 배치도 자유분방한 스콘 반죽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각자 베이킹에 집중하며 쌓은 둘 사이 침묵의 벽이 깨졌다.      


혹시 P 성향인가요?


네 맞아요.


역시 P의 스콘이네요.     


그 대화를 시작으로 물꼬를 튼 두 사람은 수업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소개팅하듯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이어갔다. 공통점이라면 내향형 인간이고 평일 오전이 자유로운 프리한 사람이라는 점. 그 외에는 다른 점이 많아서였을까? 선생님이 나눠준 레시피 종이를 보며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도구를 이용해 똑같은 시간에 스콘을 만들었는데 완성품은 달랐다. 부재료로 말차와 대파 스콘을 택한 나와 달리 짝꿍은 얼그레이와 기본인 플레인을 택했다. 덕분에 완성된 후 서로의 스콘을 종류별로 바꿔 시식해 봤다. 부재료의 맛을 제외하고서라도 성향의 차이로 생긴 맛이 분명히 있었다.      


빠르고 규칙적인 걸 좋아하는 내가 만든 스콘은 윤기를 스콘 윗면에 바르는 계란 물을 꼼꼼하게 바르지 않아 윗면이 얼룩덜룩했다. 반면 자유롭고 (비교적) 느긋한 성향인 짝꿍의 스콘은 계란 물을 충분히 골고루 바른 덕분에 윤기가 자르르했다. 훨씬 먹음직스러웠다. 줄 맞추는 걸 좋아하는 성향 덕에 비슷한 크기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구운 덕에 내 스콘은 비슷한 맛이 났다. 크기도 조금씩 다르고 간격도 불규칙한 짝꿍의 스콘은 같은 오븐에서 동시에 구웠는데도 바삭한 스콘도 있고, 촉촉한 스콘도 있었다. 8개씩 2판, 총 16개의 스콘이 완성됐다.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스콘을 몇 개 나눠 먹으며 못다 한 수다를 떨면서도 머리 한쪽에는 이런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같은 시간, 같은 재료, 같은 온도로 만들더라도 사람에 따라 결과물은 완전히 다르잖아?

 이 스콘들처럼 말이야.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어떻게 매만지느냐에 따라 얻는 결과물은 달라지는 거라고 스콘이 말하는 거 같네'


우리가 수다를 떠는 사이 선생님은 분주하게 다음 수업 준비 중이었다. 곧 수업이 임박했다는 분위기를 느끼고 서둘러 베이킹 공방을 나왔다. 두둑한 스콘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어가며 조잘조잘 수다를 이어갔다. 개찰구를 넘은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무릎 위의 스콘 봉지를 한참 내려다봤다. 투명 봉지라 봉지를 열지 않아도 내용물이 훤히 보였다. 본격 수업이 아니라 체험에 가까운 베이킹 찍먹이긴 하지만 ’이 걸 내가 만들다니!‘ 뿌듯했다. 스콘을 찬찬히 스캔하던 중 짝꿍이 나눠준 두툼한 얼그레이 스콘이 보였다. 짝꿍이 큰 스콘 챙겨 가시라며 일부러 넣어 준 마음이었다. 오늘의 결과물, 비쩍 마른 내 스콘과 통통한 짝꿍의 스콘을 보니 다리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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