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Oct 08. 2024

돌아보는 자가 범인이다

과거에 발목 잡힌 당신에게

평범한 가을 오후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자 좌우로 고개를 돌려 오는 차가 없는지 확인했다. 경찰차가 신호등 바로 앞에 선 게 보였다. 잘못한 건 없지만 왠지 살짝 긴장됐다. 최대한 바른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때, 횡단보도 양 끝에서 출발해 각자의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 사이로 전동 킥보드 한 대가 미꾸라지처럼 헤엄치듯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철옹성 같은 이어폰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뚫고 다급한 경찰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킥보드 타고 가시는 남성분 정지하세요.
  

코앞에서 전동 보드의 불법 주행 장면을 목격한 경찰차에서 마이크로 남자를 불러 세웠다. 헬멧을 쓰지도 않았고, 횡단보도에서는 전동 킥보드에서 내려 차체를 끌고 이동하지 않았으니 명백한 불법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였다. 경찰에게 곧 범칙금 딱지를 떼겠구나 싶었다. 곧 정의의 심판(?)을 받겠구나 하고 가볍게 지나쳤는데 상황은 이상하게 흘렀다. 이어진 남자의 행동은 상식 밖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 바로 킥보드를 멈춰 세울 거라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느긋하게 한 블록을 더 지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경찰을 기다릴 거라는 내 예상은 한 번 더 비껴갔다. 전동 공유 킥보드 앱의 사용 종료 버튼을 조작하는지 핸드폰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리더니 아무 일 아닌 듯 킥보드에서 내려 유유히 자기 갈 길을 갔다. 뛰지도 않았다. 도망가는 티를 안 내려고 그랬는지 도로를 걷는 평범한 시민 중 한 명처럼 자연스럽게 인파 속으로 사라지려고 했다. 경찰차는 신호가 바뀌지 않아 바로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뛰어가서 저 사람을 잡아야 하나? 저렇게 철면피인 사람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어쩌지? 체급 차이도 있는데 자칫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나? 아니야 어쩌면 용감한 시민이 될 기회일지도 몰라! 갖가지 망상에 젖어 우물쭈물하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는지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이 가까이 다가오며 남자를 멈춰 세우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거기 검은 옷 입은 안경 쓴 남성분 멈추세요.


선량한 시민인 양 갈 길 가던 남자가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왜?‘라는 듯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어폰을 빼며 경찰을 기다렸다. 경찰도 보고, 나도 보고, 거리를 걷는 시민들도 본 장면. 차량 블랙박스와 도로의 CCTV 렌즈도 기억하는 그 범법 행위를 정작 본인만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그가 자신도 잘못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의 행동이 증명하고 있었다. 경찰이 처음 불러 세운 그 순간부터 그는 자주 뒤를 돌아봤다. 앞을 보며 가는 것 같았지만 종종 뒤를 돌아보면서 경찰의 동태를 예의주시했다. 정말 잘못한 게 없다면 앞길만 보며 간다. 하지만 뭔가 당당하지 않고 껄끄러운 부분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본 거다.      


4N 년 차 습관성 되돌아봄증 일인자는 안다.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뭔가 찝찝함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끈적한 미련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신은 그렇게 움직이도록 인간의 몸을 설계했다.


살다 보면 갈 길 바빠 죽겠는데 자꾸 과거로 나를 데려가 내 행동을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바꾸지도 못하는 과거 속에서 허우적거려 봤자 몸과 시간만 축날 뿐이다. 그런 상황이 닥쳤다면 ’그때 만약 그랬더라면‘같은 가정을 깔아두고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 게 아니다. 냉정함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정리 정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잘못한 건 깔끔하게 인정하고 정리 후 갈 길을 가야 한다. 잘못하지 않았다면 발목을 휘감고 있는 미련의 끈을 끊어 내고 갈 길 가면 된다. 어쨌든 우리가 해야 할 건 전진이지 후진은 아니니까.     

 

나도 갈 길이 바빠 경찰에게 잡힌 그 남자의 엔딩 신이 어떤지 확인하진 못했다. 다만 잘잘못을 따진 후 잘못한 부분에 대한 응당한 처벌을 받았을 거라 믿는다. 과연 그 남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전동 킥보드를 탈 때는 헬멧을 꼭 쓰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내려서 걸어가는 사람이 될까? 부디 먼 훗날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적당히 뭉개면서 순간만 지나치면 불편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습관이 바로잡힌 의미있는 하루가 됐길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다방 붙박이 그 손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