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으로 울고 있는 모두의 현실
겁 많음과 귀찮음 콜라보로 흔하다는 중고 물품 거래를 해 본 적 없다. 사람들이 ‘당근 당근’하길래 뭔가 싶어 앱을 깐진 오래됐지만 딱히 들어가 보진 않았다. 그러다 지인의 부탁으로 한 번 들어가 봤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당근’으로도 부동산도 직거래하고 있었다. (부동산뿐만 아니라 중고차 거래, 알바 구하기 등 많은 기능이 있었다.) 공인 중개사무소 벽면에 A4용지로 빼곡하게 도배된 위치, 금액과 평수만 적힌 매매 정보와는 다른 생생한 느낌이었다. 사진과 지도, 세세한 히스토리까지 더해졌으니 살아 있는 정보처럼 느껴졌다.
종종 생각나면 당근에 올라온 동네 부동산 매물을 살펴본다. 이사나 창업 계획은 없지만 이 동네에 어떤 매물이 나왔는지, 보통 시세가 어떤지 궁금했다. 한 권의 창업기를 담은 책을 읽듯 가게의 시작과 성장, 그리고 종말을 당근 부동산 매물 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평소 오가던 길, 가끔 가던 카페가 매물로 올라온 걸 보고 놀라 클릭해 봤다. 자세한 사정은 밝히지 않았지만 ‘애정을 쏟아 키운 내놓기 아까운 매물이지만 개인 사정이 있어 급히 처분’,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될지 모르지만, 미래의 사장님이 유혹할 정보가 빼곡했다. 내가 봤을 땐 현재 사장님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운영한 건데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걸까?
얼마 후에는 피자집, 술집, 베이글 가게, 순댓국집, 꽃가게, 탕후루 가게 등 동네를 오가며 봤던 눈 익은 가게들이 ‘급매’라는 딱지를 붙이고 대기 중이었다. 당근 부동산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저 열심히 장사 잘하고 있는 줄 알았던 가게들이 모두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애정을 쏟은 가게를 내놓는 경우도 있을 거다. 대다수 경우 매출 부진과 불경기로 인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매매를 결정한 게 아닐까? 장사 잘되고 미래의 수익이 보장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게 사업가의 마인드니까.
당근 부동산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언제나 친절하게 손님을 맞던 사장님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고 있을지 몰랐을 거다. 가게 앞에 ‘임대 문의‘ 종이가 붙는 그 세계의 흔한 새드엔딩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근 안에서는 멀쩡히 영업 중인 가게들도 조용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들 겉으로 웃고 있지만 속에 수없이 많은 고민과 문제를 품고 살겠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흔한 말 뒤에 숨어서 잘 지내려니 짐작하고, 어쩌다 안부를 묻게 되면 평소와 다르지 않은 텐션으로 가볍게 인사했다. 다들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품고 애써 괜찮은 척 살고 있다. 당근에 임대 매물로 내놓고도 손님들에게 티 내지 않고 씩씩하게 영업하는 사장님들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당근에 들어가 봤다. 집에서 5분 거리, 전철역으로 향하는 번화가 사거리에서 본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개업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소품샵이 새 매물로 떴다. 아직 페인트 냄새도 다 안 빠진 가게를 내놓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건강상의 문제였다. 가끔 지날 때면 언제나 귀여운 캐릭터가 프린트된 옷을 입고 있던 사장님이 보였다. 손님이 있던 날보다 핸드폰을 보며 홀로 가게를 지키는 날들이 더 많았던 사장님의 빠른 결정은 사장님 얼굴에 쌓인 그늘을 지워줄까?
당근 부동산의 새 매물을 훑어보고 나올 때는 속으로 조용히 다짐한다. 더 친절해야지. 그리고 까탈 부리지 말아야지.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고 있는 이들에게 ’ 지나가는 행인 1’에 불과한 내가 뭐라고 무게를 더 얹나 싶어서 자중하게 된다. 그래서 뾰족한 마음이 튀어나올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마음 수행하듯 당근 부동산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