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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26. 2024

오늘도 삽질했습니다

삽질하며 헤맨 만큼 내 땅이 되니까

두 배우가 조용한 시골에 가서 삼시 세 끼를 차려 먹는 프로그램을 보던 엄마가 말했다.     


”남자가 뭔 요리를 저렇게 뚝딱뚝딱 잘하냐?”     


엄마 곁의 가장 가까운 남자, 아빠는 손수 밥을 차려 먹느니 나가서 사 먹거나 굶는 편을 택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그런 아빠의 밥상을 신경 쓰느라 외출도 편히 못하는 엄마의 눈에는 그게 신기해 보였나 보다. 멍하니 티브이를 보며 밥을 먹던 내가 말했다.      


"평소에도 자주 하니까 그렇겠지?"

     

사람의 행동에는 많은 게 담겨 있다. 물론 처음 하는 일도 잘하는 척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배우처럼 십 년 가까이 몇 시즌을 이어갈 만큼 자연스럽게 요리한다는 건 평소에도 요리를 즐겨한다는 증거일 거다. 지금의 실력을 갖추기까지 요리를 망친 적도 있을 거고, 불에 데고, 칼에 손을 다치는 일도 허다했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능숙한 현재의 모습만 보고 부러워한다.      


타고난 재능 부자라 처음부터 척척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일도, 운동도, 글쓰기도 수없이 시도하고 깨지고 부딪히면서 서서히 실력을 쌓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손만 대면 술술 해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내 인생에는 필수인 시행착오 없이 단기간에 목표 지점에 닿는 것 같아 부러웠다. 나는 삽질하며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결과를 맡겨 놓은 사람처럼 자기 몫을 챙겨가는 게 질투가 났다.     


헤맨 만큼 내 땅이 된다.     


어디선가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삽질이라고 생각하며 헤매던 날들이 떠올랐다. 결과 없이 무한 반복하는 단순 동작 같았던 삽질은 사실 근육을 만드는 일이었다. 꾸준히 요가와 등산을 병행하며 서서히 체지방은 빠지고, 그 자리에 근육이 찼다. 굽은 등도 점점 펴졌고, 줄어들기만 하던 키도 조금 자랐다. 일기처럼 꾸준히 쓰던 글이 쌓여 출간 기회를 만들고, 책이 됐다. 기쁨보다 괴로움이 더 많았던 날들을 돌이켜 보면 과거에 나에게 미안하다. 어떤 결과로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비슷한 일을 반복할 때는 지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는 삽질이 내 땅을 넓히고, 근육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면 조금은 더 즐겁게 하지 않았을까?     


오늘도 나는 삽질 중이다. 처음 해 본 일에 우당탕탕거리며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수정과 퇴고를 반복한다. 안 되는 요가 밸런스 동작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매트에 구른다. 당장 백스페이스 바를 눌러 고심해 쓴 문장을 지우기도 하고, 주말 내내 머리를 쥐어짠 아이디어를 쓰레기통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 흑역사들이 쌓여 언젠가 나의 하이라이트를 만들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즐겁게 삽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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