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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변잡기

러닝하면 살 빠진다는데, 왜 나는 그대로일까?

달릴수록 어깨는 펴지고, 마음은 덜 흔들린다

by 호사

남들은 달리면 살이 쑥쑥 빠진다는데, 나는 왜 안 빠질까?

매번 러닝을 마칠 때마다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러닝을 시작한 지 4개월째. 꿈쩍도 안 하던 체중계 숫자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 3개월은 적응기이자 테스트 기간이었다. 내 몸에 맞는 러닝이 뭔지 알아가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발톱이 빠지고,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비를 맞고, 진흙 웅덩이에 빠지기도 했다. 병원에서 염증 주사를 맞으면서까지 그만두지 않고 회복되면 다시 뛰었다. 평소의 나라면 ‘3개월이면 충분히 했지, 나랑 안 맞네’ 하며 빠이빠이했을 거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살은 안 빠졌지만, 예전보다 잠을 잘 자게 됐다. ‘잠이라도 잘 자면 됐지’라는 마음으로 계속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기적 같은 변화가 찾아왔다. 러닝 루틴이 잡히고, 호흡이 길어지고, 다리 근육이 단단해졌다. 찜통더위도, 얼굴로 날아드는 벌레의 공격도, 갑작스러운 폭우도 이제는 나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러닝 선배들이 말하길, “여름을 게을리하지 않은 자의 가을은 선물의 계절이다”라고 했다. 그 말은 진짜였다.


신기하게 몸무게가 변하기 시작했다. 40대의 체중감량은 20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땐 밥 한 끼만 굶어도 2kg이 줄었는데, 지금은 밥을 반만 먹어도 그대로다. 먹는 양을 줄이고, 건강한 음식을 골라 먹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해도 숫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허리가 꽉 끼던 바지가 느슨해졌다. 일주일에 3일은 보는 요가센터 데스크 선생님이 물었다.


“회원님, 요즘 뭐 새로운 거 하세요? 얼굴이 좋아졌는데요?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어.”

“네? 변한 거 없이 매일 똑같은데... 아! 얼마 전부터 러닝 시작했어요.”


변화는 나보다 남들이 먼저 알아챈다. 러닝 5개월 차.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가 봤다. 드디어 앞자리가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 근 10년 만에 보는 숫자다. 들뜬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곧 인바디 인증 간다. 체중 앞자리 4자 얼마 안 남았어!”


이런 부분에 있어서 나는 안다. 나는 나약하고,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인간이다. 이런 사람은 말이라도 크게 질러놔야 수습하려고 뭐라도 한다. 그래서 일부러 떠벌렸다. “일단 질러놨으니 49.9kg이라도 만들자.”

체중계에서 내려오며 생각했다. ‘남들은 달리면 살이 쑥쑥 빠진다는데, 나는 왜 안 빠질까?’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의 거의 모든 순간에 이런 식의 질문으로 나를 괴롭히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남들은 손대면 뭐든 척척 해내는데, 나는 왜 뭐든 어렵지?

남들은 꾸준히 하는데, 나는 왜 금방 포기하지?

남들은 낯선 사람들과도 금세 친해지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하지?

남들은 인생의 숙제를 단계별로 잘 해결해 가는데, 나는 왜 늘 제자리 같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나를 깎아내렸다. 열등감은 잠시 자극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바짝 마른 장작이 되어 내 안의 불안을 활활 태웠다. 시작은 어렵고, 과정은 지루하고, 결과는 미미했다.


러닝을 하면서 처음으로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내 기록’에 집중하게 됐다.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따려고 달리는 게 아니니까. 남의 속도와 나의 속도를 비교하지 않고, 어제보다 1분만 더 뛰면 그걸로 충분했다. 달릴수록 어깨가 펴지고, 마음이 덜 흔들린다. 살은 더디게 빠졌지만, 대신 내 안의 꾸준함은 근육처럼 붙었다. 포기하지 않은 날들이 내 자신감의 재료가 됐다. 오늘도 달린다. 결국 나를 바꾸는 건 기적이 아니라 습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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