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가 존재하는 이유
미국에 살면서 가장 후진국스러움을 느낄 땐 당연 의료 시스템을 맞닥뜨릴때다. 지난해 7살 큰아이가 어금니가 썩을대로 썩어 발치라는 어마무시한 치료를 해야 했을 때 울면서 덴탈보험에 가입했다. 이후에도 2번의 충치치료와 불소도포 등 한국에선 치과 한 번 안가던 아이가 굳이 미국까지 와서 치과를 뻔질나게 드나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치과뿐 아니라 병원은 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와박이다. 일반 회화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각종 의학용어들이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고 간다고 하는데도 못알아듣는게 태반이다 ㅠ (물론 원하면 통역을 붙여주는 병원도 많지만 이상한 자존심에 또 통역은 붙이기 싫은 이내마음)
항생제(Antibiotics)를 유산균(Probiotics)으로 잘못 알아들어 엉뚱한 소리를 한다거나 잇몸이란 뜻의 Gum을 씹는 껌으로 착각하는 슬픈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대체 내가 왜 넘의 나라에 와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하나 자괴감에 빠진다. 아니 생각해보라. 애델꾸 병원가서 “항생제가 뭔가요?”라고 질문하는 외국인을 ㅋㅋㅋㅋㅋㅋㅋㅋ이불킥 오만번 각이다.
암튼 이렇게나 병원이 끔찍히 싫은 엄마맘도 몰라주고 이번엔 세살배기 둘째놈이 말썽이다. 이를 닦이가 발견한 양쪽 어금니의 검은 점 ㅠㅠㅠ 이거슨 충치가 분명하다. 이곳 보스턴은 한인 커뮤니티가 크지 않아 그런지 소아 한인치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결국 나는 영어만 통하는 소아치과를 뒤로하고 성인들이 주로 가는 한인치과로 향했다.
평소 둘째가 누나랑은 다르게 주사도 잘 맞고 고통을 잘 참는 것 같아 혹시 몰라 일단은 가보자는게 내 맘이었다. 코로나 땜에 거의 사람들이랑 섞일 일이 없는 둘째는 치과에 가는 것 조차 설레했다. 악어처럼 입을 크게 벌려야 한다는 말에 계속 입을 벌리면서 말이다. 한국인 의사는 대번에 충치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며 아직 세살인 아이가 자칫 치과에 대한 공포가 생길 수 있으니 소아치과로 이전하려는 운을 띄웠다. 하지만 큰아이 치료할 때 영어땜에 답답한게 넘나 많았던 난 거의 바짓가랑이 붙잡듯 선생님이 해주셨음 좋겠다고 사정했다 ㅋ
차마 나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던 의사는 그럼 일단 해보자며 조심스레 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찍소리도 안내고 씩씩하게 치료를 받는게 아닌가!!!! 혹시나 했던 의사와 간호사는 모두 세살짜리가 정말 대단하다면서 순식간에 어금니 두개 충치치료를 끝냈다.
정말 놀라웠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자식인데 큰 아이는 7살에 웃음가스까지 마시면서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내 손을 꼭 잡은채 충치치료를 했는데 3살짜리는 웃음가스는커녕 마취도 따로 안했는데 미동도 없이 드릴소리를 견뎌낸 것이다.
그러고보면 아픔을 견뎌내는 임계치는 사람마다 참 다른 건가보다. 누구에겐 엄청난 고통이 다른이에겐 엄살이 될 수도 있다. 그걸 갖고 비난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는 거라는걸 애 둘을 낳고 확실히 알았다.
치료가 끝난 후 아이 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찬찬히 설명해주던 천사같은 한국인 의사슨생님은 아이들 이 닦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걸 설명해줬다. 그러고보면 신이 왜 유치와 영구치, 영어로는 더 직접적인 child tooth, adult tooth를 주셨는지 이해가 간다면서 말이다.
그렇다. 두려워하기 전에 일단 부딪혀보는거다. 뭐든. 한번 실패해도 새로운 adult tooth가 준비돼있을지 누가아나 ㅋ
그나저나 치아 두개 마취도 없이 충치치료를 했을 뿐인데 보험 없이는 500불이라니...다시 한 번 놀라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이다. 임플란트하러 한국간단 얘기가 농담이 아닌게 확실하다....이런 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