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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bia Feb 07. 2017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해답이 아닌 격려/ 테크닉이 아닌 원론


지속력과 경제적 효용성


 취미와 직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지속력과 경제적 효용성이 아닐까 싶다. 물론 '~싶다'라는 표현처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취미 역시나 직업처럼 오래도록 가져가고 유지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창출가능한 경제적 가치까지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이 이 둘을 구분 짓는 명확한 데피니션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둘의 속성은 여전히 다르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속이는 것은 가능하다. 몇몇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오랜기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직업이라는 속성이 취미와 구별되는 단적인 속성으로 치환해서 해석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다.  

어떤 한 가지 행위를 단기간에 여러 사람을 상대로 혹은 장기간에 걸쳐 몇몇 사람을 상대로 행사할 수는 있으나 여러 사람을 상대로 수십 년 동안 일정한 힘으로 행사하기는 힘들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지속 가능한 힘이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일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지속 한다는 것은 그것을 단순히 열정이나 취미라는 이름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열정이나 취미는 오늘 당장 그것을 손에서 놓는다 하더라도 내 일상이 파괴되거나 흔들릴만한 위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그것을 죽을 때까지 -요즘은 그게 불가능한 세상이니 - 최대한 오랫동안 영위를 하되 그 전과 비교해서 그 지속가능한 힘과 그런 지속력에서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가 처음과 비교해 훼손되지 않는 상태로 계속 유지됨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뒤를 잇는 누군가에게 하나의 좋은 레퍼런스로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직업의 특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적인 소설가로서 살아온 인생이 이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탈고를 마쳤던 2015년을 기준으로 35년이니, 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37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37년 동안 영위하며 무엇보다 그것으로 밥벌이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그의 행위가  직업이라는 속성이 갖는 그 지속성과 경제적 효용가치에 명백히 부합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이 책을 쓸 자격은 충분한 셈이다.



방법이 아닌 방향을 제시한 자전적 에세이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이 소설가를 직업인으로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이 글을 쓴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도, 그리고 이 글을 읽은 필자도 쉽사리 단정하거나 예측하기는 어렵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지난 37년간 걸어온 소설가로서 자신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흔적들을 정리한 일종의 회고록적 성격을 지닌 자전적 에세이에 가깝다.

그래서 소설쓰기를 위한 실질적이고도 기술적인 테크닉을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이 정답이나 길라잡이가 되긴 힘들 듯 하다. 이 책은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 해법책이라기보단 원론집에 가깝다.


 단순히 여가시간에 심심풀이로 쓰는 글이 아니라면 직업인으로서의 치열함은 소설가 뿐만이 아니라 어느 직업에서도 직업인이 갖추어야할 기본 덕목이다. 이런 치열함과 방향성이 없다면 한 가지 일을 여러 사람을 상대로, 수십 년간 행사하기는 힘들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강조하는 것들도 바로 이런 원론적인 것들이다.


 사실 소설가(통칭하여 작가의 범주에 속하는)들만큼 기본적으로 다양한 인간들에 대한 관찰과 인간 내면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일을 수시로 반복해야 하는 직업도 드물다. 그만큼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며 특히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소설가의 경우라면 이런 지난한 작업을 오랫동안 수행할 수 있는 정신적 지구력과 함께 신체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작가 본인은 그런 신체 능력의 향상을 위해 30년을 꼬박 하루도 빠짐없이 한 시간씩 달리기에 매진했다고 한다.

직장인들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듯이 좋든 싫든, 잘 써지든 아니든 매일 일정한 양의 원고를 규칙적으로 쓰는 일도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장편소설의 집필에 들어갈 경우 매일 원고지 20매 정도의 분량의 글을 꾸준하게 규칙적으로 썼다고 한다.


물론 소설가로서의 어느 정도의 타고난 감각(이 감각의 상당 부분은 많은 책들을 팀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이 밑바탕이 되어야겠지만 그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이런 지속력(성실함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과 강인한 신체 능력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강조한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재즈 가게(기본적으로 음식과 술을 함께 파는, 마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조예가 깊다)를 운영하던 그가 나이 서른이 될 무렵 우연히 만년 골찌를 하던 야구 구단(야쿠르트 구단)의 승리를 지켜보다 갑자기 그의 첫 소설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어떨결에? 등단을 하고 향후 약 37년간 전세계 50개국의 언어로 그의 책이 변역되기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런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직업적인 소설가가 갖추어야할 덕목, 수집할 자료(작품의 소재)와 장편소설 쓰기, 독자층, 그리고 등장시키고 싶은 캐릭터의 구상 등에 관한 원론적인 수준의 그의 사적 견해들이 수록되어 있다.


 국내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 독자들에게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노르웨이의 숲>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이 책에서 노르웨이의 숲에 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첫 등단 후 문단으로부터 박한 대접을 받았던 일화들, 그 자신의 첫 문체나(문학에서 오리지낼러티라고 할만한 자신만의 고유성들)문장들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들, 첫 작품이 나오고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붙은 이후로 줄곧 일본 문학계의 비주류로서 받아야했던 (작가 본인으로서는 약간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는)불공정이나 서러움들에 대한 일화들, 그래서 넓혀갔던 새로운 프론티어들까지...


그래서 이 책이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 어떤 기술적인 부분을 전수하는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면 좋겠다 싶다.

그럼에도 내 나름대로 그가 전하는 말들을 추려 몇 가지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내 안에 있는 뭔가를 믿고, 그것이 키워낼 가능성을 믿어라


2. 지금은 힘들더라도 나중에는 크게 결실을 맺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힘껏 진전하라


3.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을 가져라.


4. 올바른 모럴을 가져라. 아무리 올바른 슬로건이 있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아름다움이나 올바름을 뒷받침해줄만한 영혼의 힘이 없다면 공허한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5. 추론과 단정을 구별해서 사용해라.


6.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탔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학상은 특정 작품을 각광받게 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지는 못한다.


7. 문학의 잠재적인 수용자, 부동표를 확보하라.


8. 자기만의 고유한 오리지낼리티를 형성하라. 오리지널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시간이 증명해준다.


9.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


10. 만트라 주문을 외우듯 매일매일 육체적 운동으로 신체능력을 향상시키자. ( 이것은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기체면)


11. 프론티어의 확장



 이런 기본적인 필요 항목들에 더하여 지속력과 집중력은 어느 직업군에서나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요소들과 함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글감이 될 수 있으므로 항상 책과 사람에 대한 관찰을 놓지 말 것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관찰이란 단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냥 일종의 정보로서 자신의 의식 안 캐비넛 속에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면면들을 저장해두는 차원을 의미한다.


 어떤가?

다 읽고나도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이 책이 애초에 작가지망생들에게 '이러이러한 기술로 글을 쓰세요' 라는 시각에서 작성된 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이란 기본적으로 결국 스스로 익히고 터득해나가야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업적인 소설가에게 있어 어떤 정보를 체계적으로 자신의 뇌 속 저장 창고에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거쳐 되도록 많이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의 필요성만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그렇게 저장된 기억들과 어떤 인물들에 대한 정보들을 꺼집어낼 수 있는 능력.

거기에 지속력과 그 지속력을 뒷받침해줄 체력적인 힘과 인내력.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책은 기술을 전수하는 책이 아닌,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독자에게 혹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건네는 일종의 회고담이자 격려의 책이다. 그리고 필자가 이 책을 다 읽고나서 개인적으로 추려본 저 덕목들은 이 책의 독자나 작가지망생들을 넘어 실상 모든 직업인들 혹은 개인 한 사람, 한사람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사항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 일본 쿄토 출신으로 부모님 두 분 모두 교사 출신의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1979년 그가 재즈 가게를 운영하며 새벽녘 주방 식탁 앞에 앉아서 썼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문단에 처음 데뷔했다.


그후 1981년 <노르웨이의 숲>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을 만들어낸다.

이후 <양을 둘러싼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 감는 새>,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을 빌표하며 그의 책들은 미국, 러시아, 유럽, 동아시아를 포함 전세계 50여개국의 언어로 번역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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