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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bia Feb 02. 2017

최은영 「쇼코의 미소」

기어이 놓쳐야만 했던 공감과 유대에 관하여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은 '나'라는 뷰파인더를 통해 상대를 프레이밍하기 때문이다. 나가 기준이 되는 카메라는 상대를 항상 피사체화시킨다. 때문에 상대에 대한 평가나 인상은 나의 위치나 상황, 기분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 된다.

나가 상대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혹은 상대에 대한 열등감에 휩싸일 때 시시때때로 그런 나에 의해 프레이밍 되는 상대의 위치도 함께 추락하거나 상승한다. 나라는 카메라와 상대라는 피사체는 항시 정반대 입장, 반비례 관계이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는 막 등단한 2개월짜리 초짜 신인을 단번에 제 5회 젊은 작가상에 뽑히는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때문에 이 작품은 작가 자신에게는 영광과 함께 책임감을, 독자에게는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대체 어떤 작품이야? 어떤 작품이길래?'


고등학교 시절부터 작가를 꿈꿨음에도 필자는 지금까지 딱 한 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이 있었다. 블로그 초창기 시절, 자식 같은 한 편의 단편 소설이나 동화를 써낼 때 이런 필자와 유사한 꿈을 꿨던 작가 지망생으로부터 이런 조언을 들었던 적이 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려면 처음 20줄에서 판가름 야 한다"고.

그만큼 어떤 글의 서두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비단 신춘문예 응시자들 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일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고민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정답은 아니란 사실을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란 책을 읽으며 느꼈다. 그렇다고 그녀의 책의 서두가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기교나 심사위원들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는데 들이는 시간과 공을 그녀는 진정성으로 대체한 듯 싶다.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특별한 무엇, 도드라지지 않아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무엇.



총 7편의 중단편소설을 관통하는 공감과 유대의 정서, 그러나 놓쳐야만 했던 그 끈에 대하여


그녀의 책은 얼핏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나 한강의 <채식주의자> 속 인물들의 일면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의 작품들 속 정서보단 훨씬 유순하며 유사한 상황에 봉착해 있음에도 인물들 사이엔 한결 온기가 느껴진다. 그것은 언급한 두 작품 속 인물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그저 견뎌내는 수밖엔 달리 도리가 없어보였던) 정서적 유대와 공감이 이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속에는 감지되는 때문이다. 기교와 문장의 화려함을 버리는 대신(실제로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과는 달리 줄을 그으며 읽어야할 부분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인물들에게서 발견되는 한결 같은 정서는 바로 체념도 순응도 아닌 유대감이다.


쇼코의 미소는 2013년 작가세계를 통해 이 쇼코의 미소란 제목을 단 이 소설책의 표제작인 동시에 이 책 속에 수록된 총 7편의 중단편을 묶어서 만든 최은영의 첫 소설집의 제목인 셈이다.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나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예로 들었지만, 인물들간의 감정적, 정서적 유대감이 거세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역시나 해피엔딩은 아니다.

7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유사한 결핍과 결국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지도 모른 채 기어이 놓쳐야만 했던 이런 정서적 유대의 끈 그 반대편 인물들의 삶을 동시소환 한다. 그 방식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각각의 중단편 속 주요 화자와 유사한 색깔과 모양을 띤다.


쇼코의 미소

먼저 쇼코의 미소라는 중편에 등장하는 소유라는 인물과 그녀의 일본인 친구 쇼코의 관계나 그녀들이 처한 상황은 유사하다못해 판박이처럼 닮았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서로 교환학생 신분으로 서로의 존재를 처음 만나 알게 된 이들 사이의  쇼코가 소유의 집에 머문 1주일이란 시간은 이들 두 사람에게 인생의 절대적인 관계의 소멸과 상실의 무게로 서로를 짓누른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라는 말로 단적으로 정의 된다. 그리고 그러한 주제는 나머지 6편의 작품들 속에서도 일관되게 유지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소유의 눈에 비친 쇼코의 첫 인상이자 쇼코라는 인물을 처음 프레이밍한 소유의 뷰파인더의 시선이라 말할 수 있는 쇼코의 미소는 차갑고 어른스러운 것이었다. 그 속을 가늠하기 힘든 서늘한 웃음. 늘상 집에서 할아버지에게 구박이나 받는 초라한 자신과는 다르게 자신 있어보이고 당당한 모습.

그러나 나중에 대학을 졸업한 후 소유 자신이 쇼코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그녀의 눈에 비친 쇼코의 모습은 처음에 프레이밍된 쇼코의 그것과는 180도 다른 성질로 비친다.

외조부와 엄마, 그리고 자신으로 구성된 소유의 가족관계처럼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쇼코의 할아버지와 쇼코의 가족관계는 소유와 쇼코, 소유의 할아버지와 쇼코 그리고 소유와 소유의 할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유대를 독자의 눈으로 재프레이밍 하게 만든다.


신부전에 걸린 아픈 할아버지 때문에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도쿄라는 대도시로의 대학진학의 꿈이 좌절된 쇼코가 소유에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에 반해 캐나다로 유학을 가고 짬 나는 시간엔 미국 배낭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소유의 눈에, 쇼코의 일방적인 연락의 끊음에 그녀가 보고 싶어 제 발로 일본까지 찾아갔음에도 소유는 집 안에 박힌 채 꼼짝도 않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쇼코의 모습과 그녀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한껏 실망한다. 쇼코에 대한 실망과 나약함의 발견은 이들의 뒤바뀐 위치관계와 상황을 대변한다. 이 대목에서 이미 소유의 쇼코를 향한 공감 능력과 유대감이 소멸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유의 눈에 비친 쇼코의 미소는 더이상 어른스럽지도 서늘하지도 않다. 


쇼코의 미소라는 이 책 속 많은 인물들은 이처럼 어떤 계기, 그러나 사실 또렷한 이유나 계기가 아닌 각자의 달라진 상황으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벌어진 관계의 틈이 어느새 봉합할 수 없는 틈으로 커져버린 인물들 사이의 단절과 이별 과정을 프레이밍 해낸다.

그리고 그들 인물들은 할아버지와 손녀, 할머니와 손녀, 엄마와 딸, 언니와 여동생 등 주로 조손 간의 관계나 두 여성 간의 관계로 집약 된다.


7편의 중단편 속에는 그렇게 아버지라는 존재의 자리가 비어 있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인물들 사이에서 핵심적 위치에 자리잡지 못한다. 감옥에 들어가거나 죽거나 병들었거나 혹은 경제력을 상실한 채 각종 집회현장만을 쫓아다니는 변방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최은영 작가에 의해 의도된 방식이며, 이러한 의도로 인해 주도적인 남성 캐릭터가 부재하는데서 그녀의 작품이 상냥한 폭력의 시대나 채식주의자와 구별되는 여성적인 결을 품게 된다.

여성 간의 결속은 (굳이 구분하자면)남성들의 그것보다 깊고 섬세하며 때문에 그만큼 깨어지기도 쉬운 약점을 지니고 있다.

소유와 쇼코 사이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소유의 할아버지와 쇼코 사이는 여전히 친구란 이름으로 건재했다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한다.

쇼코의 미소 속 소유와 쇼코는 유사한 시기 각자의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평소엔 깨닫지 못했던 할아버지와 자신 사이의 그 결속과 유대를 뒤늦게 확인한다. 이런 여성 캐릭터들을 조력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그녀들의 조부모들이다.



공감과 유대의 단절을 상징하는 죽음이나 이별


인물들 간의 결속과 유대 그리고 단절로 이어지는 최은영의 소설은 <쇼코의 미소>를  제외한 나머지 6편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구현 된다.

또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작품들에서 거의 일관되게 등장하는 외국인의 존재이다. <쇼코의 미소>에는 쇼코가, <씬짜오 씬자오>에는 베트남 가족인 투이와 응웬 아줌마가, <한지와 영주>에서는 케냐의 나이로비가 고향인 아프리카 친구 한지가, <먼 곳에서 온 노래>에는 폴란드 출신인 율랴가, 그리고 <미카엘라>에는 성프란치스카 교황이 등장하는 점 등이다. 그리고 이는 인물들 간의 공감의 한계를 설정하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 한다. 특히 「쇼코의 미소」라는 책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남녀 관계가 묘사되는 한지와 영주 사이에서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한지가 어느날 갑자기 영주에게 차갑게 대하는 장면은 어떤 묘사나 설득력 있는 이유를 동반하지 않은 채 그들이 석 달을 함께 보냈던 프랑스의 수도원 봉사현장에서 한지가 아프리카로 되돌아가는 걸로 막을 내린다. 그들은 누구도 서로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한 채 이별을 맞는다.


그리고 이런 단절은 <씬짜오, 씬짜오>라는 단편소설을 통해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구현 된다. 열 세살의 한국인 여자애와 베트남 남학생 투이의 우정은 이 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른들의 대화로,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서로가 절대로 상대의 입장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인들에 의한 응웬여사 가족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로 산산이 금이 간다. 늘 주말이면 함께 저녁을 먹고 일상을 공유했던 이들이,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열 세살의 무고한 어린 아이들의 우정이 산산이 부서지는 과정은 영주와 한지 사이의 단절과 이별 이상의 무게로 다가온다.

또한 <먼 곳에서 온 노래> 속 두 인물, 소은과 소은이 속한 동아리 사물패의 선배 미진 사이에는 동성이라는 벽이 존재한다.


이들 세 단편 속 두 인물 간의 공감 능력의 상실은 서로가 속한 물리적 세계의 다름과 다른 역사, 혹은 동성과 한 쪽의 죽음이라는 공간의 단절로 인해 좁힐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거리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쇼코의 미소」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단편은 마지막 챕터인 <비밀>이었다.

비밀은 제목처럼, 두 인물 사이에 놓인 어떤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8년 전 이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할머니 말자와 그런 할머니의 딸과 그 딸의 딸인 손녀 지민의 3대에 이르는 한 집안의 이야기는 완치 판정 후에 다시금 재발이 된 할머니의 상황과 오랜 병간호와 중국으로 간 딸의 부재로 마음이 병들어가는 할머니의 딸부부의 일상을 비춘다. 기간제 교사로 중국에 간, 부모의 맞벌이로 외할머니 말자의 손에서 자란 지민의 부재는 다른 여섯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단절과는 또다른 단절을 상징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할머니가 아무리 불러도 그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 그리운 손녀에게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편지를 써보내도 수신인 없는 편지가 될 할머니와 손녀의 사연은 '설마'하는 의심과 함께 마지막 징을 덮는 순간 사실로 확인 된다. 독자가 생각하는 그것이 정답이라는 듯이.

무심히 누군가의 부재를 전하는 최은영 작가의 담담한 문체는 그래서 오히려 그 아픔의 깊이를 더한다. 비밀은 다름 아닌 말자에게 숨겨야만 했을 지민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진실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지만 영영 봉합되지 못하는 관계의 단절(죽음을 포함한)에 직면하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공감과 유대감 대신 비집고 들어온 의심과 무심함,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다름은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고 절망하게 한다.

담담한 필치로 인간관계의 이런 맥락을 짚어가는 최은영의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시선은 어느날 문득 멀어진 우리의 가슴 속에서 죽어가거나 잃어간 그 누군가의 존재를 소환시킨다.


결국 한 사람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그 혹은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의 존재와 그런 대상으로부터 받는 따뜻한 위로와 공감일 것이다. 최은영의「쇼코의 미소」는 그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유대와 정서적 교감의 다리에 한 발짝 다가서게 만든다.





간략평과 의미의 확장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흐르는 정서는 공감과 유대이다.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공감과 유대는 작품 속 주요인물 혹은 그 주변인물들의 죽음과 거의 밀착되어 있다. <한지와 영주>라는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작품에서는 다 일관되게 누군가의 죽음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은 가족, 주변인을 넘어 아무 상관도 없을 거 같은 (등장인물이 찜질방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친구의 딸의 죽음)제 3자에까지 맞닿아있다.

그리고 그런 제 3자의 죽음은 세월호 사건을 뿌리에 두고 있기도 하다. 이는 최은영 작가의 시선이 공감과 유대의 정서를 제 3자에게까지 확장시킨 덕분이다.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감정적 유대감은 넓은 의미로 나와 상관 없는 세계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강조한 대목일 것이다.


신인이라 아직 문장의 세련됨은 떨어지지만 그 정직함과 담담함이 또한 이 작품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 비교 서적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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