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성 부른 나무는 떡 잎부터 알아본다? 서스펜스와 유머의 공존
우리가 고전을 읽고 고전명작이라 불리는 영화들을 감상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그것들에 관해 오랜 시간, 오랜 세대를 거쳐 무시하기 힘든 정도의 중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많은 세대에 걸쳐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의 가치에 대해 이렇다할 이견이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할 것이다.
고전은 이처럼 시간과 세대의 바운더리로부터 자유로우며 여러 세대, 오랜 시간을 아우른다.
책에 고전이 있는 것처럼, 영화에도 고전 명작이라 불릴만한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다.
<대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로마의 휴일> 등 이들 작품들은 아무리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 정도는 들어 익히 알고 있을만한 작품들이다.
그럼 고전의 범위를 장르적으로 조금 더 좁혀 스릴러 혹은 서스펜스 장르로 한정지어 이야기를 해본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을 빼고는 논하기가 어렵다. 그는 장르 영화 시장에서, 특히 고전 서스펜스라 불리는 영역에서 거의 독보적인 수준을 이룩한 일종의 고유명사 격의 인물이다.
이미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다수의 그의 작품들에 대한 소개를 해드렸지만 오늘 필자가 소개해드릴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서스펜스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이전의, 그의 감독으로서의 데뷔 초창기 시절의 작품 사보타주(Sabotage)이다.
프랑스어인 사보타주는 중세유럽에서 영주의 부당한 처사에 반발하여 농민들이 일종의 쟁의행위로서 노동을 거부하거나 혹은 기물 등을 고의로 파손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단순한 태업 이상의 구체적인 파손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행위를 뜻한다.
마치 텔레비전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을 당시의 그것처럼, 흑백 화면이라해도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거친 질감의 화면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중후기 작품들의 그것에 비해 확실히 화질과 콘트라스트가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그럼에도 스토리적으로나 사운드적으로나 그의 작품임을 실감나게 하는 서스펜스적 감각은 이 초기 작품을 통해서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다.
사보타주의 오프닝은 암전으로 시작한다.
한 부부(벌록 부부)가 운영하는 영국 런던의 한 작은 극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보타주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늘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그의 작품 스타일은 이 작품을 통해서도 예외없이 구현된다.
갑자기 블랙 아웃(Black Out)상태가 된 극장 매표소 뒤쪽으로 환불을 요구하며 선 관람객들의 긴 행렬이 보이고 그런 입장객들 사이에서 환불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여주인공 벌락 부인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보타주의 오프닝은 바로 이 정전의 이유를 따라가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 <새>를 통해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오브제로부터 가공할만큼의 무시무시한 공포를 구현시켰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어떤 공포의 불길한 징조의 매개체로서 새를 도입하는 방식은 이미 그의 이 초기 전작 사보타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보타주 속에도 공포나 서스펜스의 핵심 기능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서스펜스를 위장하는 도구로서 카나리아 한쌍이 등장 한다. 단지 새에서와의 명확한 차이점이라면 공포를 위한 직접적인 도구화가 아닌, 서스펜스를 위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바로 일종의 맥거핀이다. 실제로 이 영화 사보타주에서 새는 <39계단>의 39계단처럼 영화 속에서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들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한 쌍의 남녀 혹은 부부 역시 이 사보타주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 주체로서 기능한다. 이런 벌락 부부의 주변인물로는 벌락 부인의 남동생 스티브와 함께 벌락 부부가 운영하는 극장 옆에서 작은 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척 이들 부부의 모습을 감시하는 런던 경시청 소속의 경사 테드가 있다.
스티브와 테드, 이들 두 사람은 벌락 부부와 함께 이 영화의 중심 인물들이다.
런던 시내와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목적 삼은 테러 집단이 벌락 부부가 운영하는 극장의 정전 사태와 작은 소요사태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이들은 극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벌락을 이용해 다시 한 번 피카디리 광장에 폭탄을 설치하기 위해 벌락과 재차 접선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또 한 사람, 주저하는 벌락을 돕기위해 테러 집단이 붙여준 인물인 새(Birds) 가게 주인남자가 등장한다. 이 남자는 벌락 부인의 남동생 스티브와 함께 영화의 엔딩에서 중요한 캐릭터로 소비된다.
불과 76분에 해당하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사보타주는 요즘 현대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 영화들의 일반적인 러닝타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까스로 장편영화의 틀을 갖춘 짧은 영화이다. 그럼에도 그 76분이라는 시간 안에는 인물들의 표정과 상황 묘사를 통한 히치콕식 서스펜스와 유머가 촘촘히 자리잡고 있다.
특히 스티브가 벌록의 심부름(말이 심부름이지 테드의 감시로부터 꼼짝할 수 없었던 벌락이 어쩔 수 없는 임기응변식으로 스티브에게 맡김)으로 타임 스위치가 작동하는 폭발물을 들고 피카디리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풍경은 그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소소한 유머를 형성하는 지점을 선사한다.
처음 나온 듯 한 치약을 스티브를 상대로 시범을 보인다거나 샴푸처럼 보이는 세정제를 스티브의 머리에 바르며 판매에 열을 올리는 상인의 모습과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빙 에워싼 런던 시민들의 모습은 영화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게 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스티브가 이 상인에게 붙잡혀 지체된 시간만큼 그의 가슴팍에 든 필름 뭉치 속에서 째깍째깍 흘러가는 타이머는 이 웃기는 상황 속에서도 고스란히 서스펜스를 형성하게 한다.
한 장면 연출을 통해 유머와 서스펜스를 다 잡고 있는 이러한 설정은 히치콕이기에 가능한 장면들이다.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이렇듯 스티브가 이동하는 길에서 목격하는 상인의 모습, 재밌는 구경거리, 도심의 차량정체 등 간접적인 상황 묘사만으로도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티브 빨리빨리'를 저절로 외치게 되는 긴박한 상황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런 폭발물의 타이머는 극장주라는 벌락의 신분에 걸맞게 영화 필름과 함께 스티브의 손을 거쳐 해리에게 전달된다.
긴박한데 웃기고, 웃긴데 긴박한 상황에서 오는 재미...
이런 재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구현된다.
'폭발물이 터지는 소리를 듣기 전에 남편 벌락이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갸우뚱하는 테드의 상사의 모습은 이 영화의 해피엔딩적 결말에 우스꽝스러운 방점이 찍힌다.
<39계단(1935)>, <사보타주(1936)>, <레베카(1940)>, <현기증(1954)>, <다이얼 M을 돌려라(1954)>,<이창(1957)>,<싸이코(1960)>, <새(1963)> 등 무수한 서스펜스 걸작을 남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 히치콕이 왜 히치콕인지, 고전 서스펜스 영역에서 히치콕이란 이름이 왜 하나의 상표이자 고유명사처럼 인식되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만든다.
수십 년을 건너뛰어 세대와 시대의 바운더리를 파괴할 수 있는 거장 감독은 많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한 영화의 유통기한이 짧은 현대 영화들의 생명력을 감안한다면 그가 이룩한 업적들은 가히 독보적인 수준이다.
프랑스의 평론가이자 영화감독, 각본가인 프랑수아 트뤼포,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로 활동하다 1959년 한 소년의 자전적 영화 《400번의 구타》라는 작품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후, 장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등과 함께 누벨바그 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1962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게 그의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를 제안했다. 그것이 영화화되어 나온 것이 바로 2016년 개봉된 히치콕 트뤼포이다.
그러나 트뤼포는 안타깝게도1983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얼마 안 돼 파리에서 향년 52세에 별세했다.
* 누벨바그(Nouvelle vague) 운동: 1950년 후반부터 1962년 사이에 주로 형성된 프랑스 내의 새로운 영화 운동의 일환으로 새로운 물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운동은 주로 기존의 영화 촬영기법을 거부하고 당돌하고도 비전통적이며 비전형작 인물을 최대한 감상을 배제한 채 인물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으며 경량 장비의 사용. 소형 촬영기와 장비를 사용해 우연적이고 사실적인 영상과 음향을 구현하였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영화계의 현실에 반대하며 혁신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젊은 신예 감독들을 중심으로 형성 되었다.
낭만적 경향의 트뤼포를 비롯, 정치적 급진주의 성향의 고다르, 레네의 구조주의적 실험, 로메르의 도덕적인 감수성, 리베트 영화의 연극성, 루이 말(Louis Malle)의 절충주의에 이르기까지 주로 이들 감독들에 의해 추구되었다. 그리고 1951년 앙드레 바쟁의 주도하에 세워진 '카이에 뒤 시네마'라는 영화 비평사가 그들의 주요 활동 터전이 되었다.
* 카이에 뒤 시네마 :
1951년 앙드레 바쟁, 자크 도니올 발크로즈, 로 뒤카 등이 창간한 프랑스 영화 비평지로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영화 저널이다.
이후 영화감독이 된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같은 젊은 비평가들의 비평 작업을 통해 1950년대 중반 작가주의 비평을 발전시켰으며 세르주 다네, 파스칼 보니체 등의 평론가를 배출하면서 당대 영화의 경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래 링크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들의 역시대순입니다.
새(1963)
http://m.blog.naver.com/iris7756/40124866203
싸이코(1960)
http://m.blog.naver.com/iris7756/220910860040
이창(1957)
http://m.blog.naver.com/iris7756/40104256656
레베카(1940)
http://m.blog.naver.com/iris7756/40124483959
39계단(1935)
http://m.blog.naver.com/iris7756/40109629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