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슐리 Jan 03. 2023

D-378 | 결혼의 시작은 예식장을 잡으면서부터

예약하기 치열한 예식장을 한 번에 덜컥 잡아버렸다


5월의 신부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완연하게 무르익은 봄을 만끽하며 한 손에는 반지를, 다른 한 손에는 예비신랑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버진로드. 이런 로망이 누군가에게는 있을 법한 일이지만, 5월에 생일이 있는 나는 좀 달랐다. 1년이 12개월이나 되는데 하필 그중 5월에, 그것도 내 생일 근처에 결혼식이라니? 이때 식을 올리게 되면 아마 평생 케이크 1개로 결혼기념일과 생일을 동시에 챙김 받게 되지 않을까?라는 불안이 엄습해 왔다. 사실 봄 예식 못지않게 가을 예식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데, 굳이 봄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5월의 신랑이 되고 싶은 로망이 있어 보였다. 또 우리가 한창 결혼 이야기를 나누던 때는 가을 예식까지 정말 6개월도 안 남은 시점이기도 했다. 가을 예식은 좀 촉박할 것 같다란 생각이 들던 찰나, 1년이면 여유롭게 결혼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괜히 설득력 있게 들려왔다. 그 말을 다시 되새겨보니 내년 5월이 예식을 올리기 적당해 보였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바로 달려가서 예약을 할 수는 없는 법. 우리가 2번이나 사전방문을 해보고 마음에 점찍어 두었던 예식장은 한 달에 딱 하루만 내년도 해당 월의 한 달간의 예약이 가능했다. 내년 5월 1일~31일까지의 예식이 올해 5월 1일에 열리는 방식. 이 예식장을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대망의 예식장 수강신청하는 날  PC방에 들려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번도 수강신청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그를 끌고 예식장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마치 대학교 학부 수업을 잡기 위해 만반을 준비할 때처럼 서버타임까지 화면 한쪽에 띄워두고, 미리 적어놓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복사 붙여 넣기 하는 연습도 해보았다. 기다리는 내내 제법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 놓친다면 언제?'라는 생각이 머리를 빠르게 스쳤다. '난 과연 내년 겨울까지 이 사람을 기다릴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자문해보았을 때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가 너무 좋고, 하루빨리 그와 함께 하는 매일의 일상을 보내고 싶어 지는데, 굳이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되는대로 당장 하기는 싫었다. 우리 둘만의 준비 속도가 있는데, 결혼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주객전도가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순순히 우리 둘의 힘과 의지로 하나씩 부딪혀가면서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둘이 어떻게 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지도 궁금해졌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예식장을 예약했다. 극성수기인 5월 예식이다 보니 훨씬 예약이 치열할 것이라는 예식장 담당 직원의 경고가 무색할 정도로, 나와 남자친구 둘 다 1개씩 서로 다른 날짜로 잡았다. 남자친구가 잡은 날짜는 내 생일인 2023년 5월 20일 토요일 오후 4:30 타임, 그리고 나는 그보다 1주일 앞인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오후 4:30 타임을 잡았다. 이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둘 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인데 딱 1주일 차이가 났다. 하루는 내 생일이고, 다른 하나는 내 생일보다 1주 앞이고. 진퇴양난의 느낌. 중복 예약은 불가해서 하나를 빠르게 취소했어야 했기에, 그 짧은 찰나에 엄청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의 생일날 결혼하는 게 얼마나 로맨틱한 것인가를 예찬하는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나는 결국 생일보다 1주일 앞인 5월 13일 예식을 택했다. '적어도 생일은 신혼여행지에서 보내자!'라는 마음가짐 하나로.


예약을 확정하고 나니 문자가 하나 왔다. 계약금을 넣어달라고. 예식장 대여금액과 최소 보증인원의 식비를 합한 금액의 10%를 계약금으로 입금하고 나면, 예약이 확정된다는 문자였다. 미리 개설해서 공동 자금을 모아둔 모임통장에서 해당 금액을 송금했다. 이렇게 예식장 예약 대첩은 끝이 났다. 남자친구와 둘이 이 난리를 마치고 친구가 양도해준 파스타집 예약권을 들고는 이태원 경리단길 쪽으로 이동했다. 햇살이 되게 좋고 남산타워가 살짝 보이는 맑은 날씨였는데, 생면 파스타와 맥주 한잔을 가볍게 기울이면서 계속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진짜 결혼준비를 시작했다란 게 실감 났다. 햇살이 너무 좋길래 내친김에 덕수궁 돌담길과 내부를 산책도 다녀왔다. 추후에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더니 양가 모두 놀라시는 눈치셨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생면 파스타집 egg & flour
덕수궁 석조전. 이날 정말 날씨가 좋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덜컥, 아니 계획적으로 예식장을 쟁취했다. 여전히 내 생일 1주일 앞인 게 많이 걸리긴 하지만.


어쩌면 정말 큰 그림은 내가 아닌, 남자친구가 그린 것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D-327 | 눈물의 본식 스냅/DVD 예약 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