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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Nov 25. 2020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자아실현의 시대

브런치 작가이자, '이기적인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의 저자로, 정치성향 테스트에 기반한 정치SNS인 OXOpolitics를 창업한 유호현님이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1년 만에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호현님과의 대화 내용이 하나 둘 떠오르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특히 요즘 시대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우리는 모두 일을 한다. 이건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새벽 이른 시간에 출근하더라도 '나보다 일찍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하고 놀라고, 밤늦게 퇴근하더라도 '저 빌딩은 아직도 불이 환하게 켜 있네?'하고 놀란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자신이 회사의 부속품과 같이 느껴진다고 푸념한다. 부속품이 빠지면 다른 부속품으로 교체하는 것처럼, 나 하나쯤 회사에 없어도 나를 대체할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 밖에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다. 


일을 대하는 자세는 세대 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아버지 세대들은 육체적으로 고생하며 일했다. 피, 땀, 눈물로 일을 했다고 해야 할까. 우리 사회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던 때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하고, 대신 고생한 만큼의 결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상대적으로 육체적으로 덜 고생하지만 정신적으로 고생하며 일한다. 근면 성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고도화되어서 고생하더라도 그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금의 Z세대나 밀레니얼 세대들은 어떠할까? 육체적으로 고생할까? 정신적으로 고생할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로 고생할까? 나는 그들이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해 고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내가 Z세대나 밀레니얼 세대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그들의 고민을 통해서, 그리고 간접적으로 듣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의 세대는 일에 있어서도 자아실현을 중요시하더라. 내가 현재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납득하고 싶어 하고, 장밋빛 미래 이야기보다는 오늘 현재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고, 본인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일을 했을 때 자신에게 엄청 화가 나는 세대이다. 이상이 큰 만큼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어느 세대보다 고통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나 우리 세대는 그들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세대이다. 


그런 면에서 더욱 이 질문이 지금의 젊은 세대와 그 윗 세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30초. 30초만 시간을 내어 이 질문에 스스로에게 답해보자. "저는...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해보자. 만족하는가? 누구는 본인이 더 대단한 일을 하는 거 같은데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누구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의하기 어려워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는 답변을 하려다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사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을 나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회사에서 나에게 원하는 역할, 요구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일을 나열하려고 보니 그건 내가 아니었다. 언젠가 나를 대체하는 사람이 왔을 때 그 사람도 똑같이 답할 수 있는 내용이다. 비단 젊은 세대뿐 아니라 70년대생인 나조차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대답할 때, 그냥 하는 일만 나열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하물며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더 그러할까.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인생을 살아가고픈 사림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길 원하는가.


'저는 왕년에 전교 1등 했어요.'

'저는 아이비리그 출신입니다.'

'저는 S전자 다녀요.'

'저는 전략컨설팅펌 출신이에요.'


이런 말들이 쓸데없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남들과 똑같지 않은 자신만의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남들이 뭐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이 생겨나고 또 그것이 본인의 브랜드가 된다. 


나는 과연 내 커리어 동안에 이 질문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봤다. 


PR 매니저 시절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자 했다. 보람을 느꼈던 적도 많았다. B2B 중심인 회사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 회사 직원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는 기사나 사보 기고문을 통해 회사에 대해서 열심히 알렸다. 좀 더 쉽고 기억에 남는 글을 쓰고자 했고 결과도 좋았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결국엔 내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80%는 주어진 정보를 가공해서 읽기 쉽게 전달해야 했고, 나머지 20% 범위 내에서 내 생각을 담았지만 내 글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글을 썼어도, 지금에 와서 '이 글은 제 글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은 하나도 없다. 내 꿈을 펼치기에는 전형적인 한국 기업에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았다. 3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평생 홍보쟁이로 살 수는 없겠다'라고 결론지었다.  


컨설턴트 시절

MBA를 다녀와 컨설턴트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알던 컨설턴트와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내 주위에서 컨설턴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먹튀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잘 포장해서 결과를 보여주고, 책임지지 않고 떠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와 직원들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 어디인지 파악해서 그 부분을 해결해주고 결과를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회사 각 사업부의 영업 역량을 강화하는 컨설팅 프로젝트였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 분명했던 나는 항상 두 가지에 신경 썼다. 하나는 컨설팅 받는 사업부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컨설팅 이후에도 사업부 스스로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었다. 팀 멤버들의 생각이 대부분 비슷해서였을까?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더 확대되어 이제는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전략 매니저 시절

내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햇수를 일한 만큼 아직도 전문 분야가 뭐냐고 물으면 지체 없이 전략이라고 답한다. 그런 전략 매니저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나는 소수만 전략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전략을 알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게 전략 매니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경영진을 비롯해 일부만 알고 나머지는 관심 없는 전략 말고, 살아 있는 전략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 전략 매니저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웠다. 경영진이 원하는 전략 매니저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서 늘 좋은 고과를 받았지만, 나 스스로는 조금 불행했다. 왜냐하면 내가 추구했던 모습의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법인으로서의 한계, 모든 것이 영업 중심이었던 조직의 한계라는 변명거리가 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실망도 많이 했다. 이러한 유리 천장과도 같은 한계를 깨부수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 자괴감이 들면서 내가 유리 천장을 깰 수 없다면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임원 시절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중 하나인 '스타트업' 스토리처럼 나도 꽤 괜찮은 스타트업 임원이고 싶었다. 하지만 드라마 역시 포장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스타트업 임원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스타트업에서 내가 오늘 일하고 의사 결정한 것이 바로 반영되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로 이어지는 일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어지럽혀진 상황을 정리하고, 복잡해 보이는 일을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자 했다.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이다.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회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늘 고민하고 실행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나 스스로가 태생이 스타트업이 아니다 보니 기초 체력이 약해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이 너무 더디 온다는 것이다. 3년 정도 일찍 이 곳에 왔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든다. 


이처럼 내 커리어를 슬쩍 돌아봐도 항상 자아실현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꼭 Z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아니어도 우리는 일을 통해 돈도 벌고 경험도 얻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을 원한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고, 또 그것이 거꾸로 나라는 존재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70억 넘는 인구 중에 나만 할 수 있는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정의를 내려보자. 그리고 다음부터는 누가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대답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자.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질문 앞에서는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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