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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Jan 03. 2021

그토록 바쁜 직장인이 이토록 글 쓰는 이유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변함없이 글을 쓸 것이다. 아니 올해는 더 가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내게 글쓰기는 사치였다. 직장인이 글을 쓴다는 것은 워라밸이 확실하거나 몸과 마음이 편한 직장을 다닐 때만 가능하다는 편견이 있었고, 과거에 내가 썼던 글을 이제 와서 읽어보면 어디론가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글이 많아서 새롭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바쁜 직장인이라고 하더라고 더욱 치열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남는 것이 사진인 것처럼 직장 생활에서 남는 것은 글쓰기이다.


딱 두 번, 여행 사진을 통째로 날린 적이 있다. 그중에 한 번은 첫 해외여행이었던 2003년 미국 여행이었다. 미국의 여러 도시를 돌며 디지털카메라로 하루 종일 찍고 그것을 후배 컴퓨터에 옮겨 놓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첫 여행의 모든 기록은 후배 컴퓨터에 저장되었다. 귀국 후 내 USB에 저장하려고 후배에게 연락했으나 후배는 '여행 끝나고 바로 연락이 없길래 필요 없는 줄 알고 다 지웠어요'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전했다. 그렇게 내 첫 해외여행의 기억은 사라졌다.


다른 한 번은 놀랍게도 두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첫 회사에서는 입사 후 1년이 지나면 동남아로 2주간 연수를 보내줬다. 나는 동기들과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다녀왔다. 산업단지도 둘러보고 현지 시장 조사도 하고 틈틈이 관광도 하는 일정이었다. 조별로 움직이다 보니 동기 한 명이 사진 찍는 역할을 맡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마지막 장소인 베트남 호치민의 맥도날드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는데 사진을 맡은 동기가 주문하다 잠시 카운터에 올려둔 카메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베트남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카메라를 찾을 방법은 없었고 그렇게 내 두 번째 해외여행 기록도 사라졌다.

인생에서 남는 것이 사진인 것처럼 직장 생활에서 남는 것은 글쓰기이다

인생에서 남는 것이 사진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사진이 없다 보니 첫 번째, 두 번째 해외여행에 대한 기억은 파편화가 되어가더니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내가 직장 생활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느꼈던 결정적인 계기도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었던 경험들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이다.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했던 경험, 선후배와의 멘토링을 통해 주고받은 인사이트,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을 때 마주했던 실패와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험, 그리고 소소하지만 내게 큰 깨달음을 줬던 모든 순간들이 하나 둘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글쓰기까지는 아니어도 메모하는 직장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일기를 쓰는 이들도 종종 발견한다. 내 경우는 브런치를 택했지만 꼭 브런치가 아니어도 자신의 직장 생활을 기록하고 싶은 형태에 따라서 플랫폼을 정하면 된다. 다만 내가 브런치를 택했던 이유는 단순히 사실을 나열한다든지, 느낀 점만을 기록하는 글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이다. 기록하는 동시에 사회 초년생부터 모든 직장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책임감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담기에는 브런치라는 공간이 적합했다.


운동이 신체 건강에 좋듯, 글쓰기는 정신 건강에 좋다.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췄지만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새벽 운동을 한다. 아무리 회사 일이 바빠도 잠을 줄여서라도 새벽에 일어나 테니스를 한두 시간 치면 머리가 맑아진다. 힘든 프로젝트를 맡거나 회사에 큰 이슈가 생기면 24시간 그 생각에 매몰되기 쉽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고민을 잊게 된다.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내 몸이 건강해지는 시간인 것이다.


글쓰기 전에는 몰랐다. 글 쓰는 시간에는 잠시 직장 업무를 잊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 생활에 관한 글을 쓰는 데도 글쓰기에 몰입을 하다 보면 당장의 현실에 대한 고민은 잠시 뒤로하고 글쓰기 주제에 집중하게 된다. 무아지경이라고 말하면 조금 과하지만 평안하게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때는 정말 내 정신이 힐링되는 기분이다. 이걸 여러 차례 느끼다 보니 아무리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른 아침이나 밤늦은 시간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글을 쓰면서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기도 했다.


생각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은 많이 다르다.


이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생각하는 것은 형식이 제한이 없는 반면 글 쓰는 것은 나름의 형식이 있다. 그 형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 굉장히 낯설 수밖에 없다. 또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글로 옮겨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바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은 한 가지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겼는데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거나 무슨 말을 전하고자 하는지가 불명확할 때가 많다.


거꾸로 말하면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정리된다. 이것이 글쓰기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때 글을 써보면 자신의 정말 말하고자 하는 바, 주장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힘든 과정을 거쳤을 때 정말 글다운 글이 탄생한다. 


글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도 글을 쓰기 위해 많이 읽게 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생을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보면 전반전에는 걸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책을 들고 다녔다면, 후반전에는 1년에 완독하는 책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나서는 다른 작가분들의 글과 여러 책들을 부지런히 읽게 되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나의 글쓰기 실력에 만족하지 못하다 보니 제대로 글 쓰는 분들의 실력을 접하고 싶었다. 진짜 작가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내 현재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가 분간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책임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대단한 자만심의 발로일 것이다. 글을 읽는 만큼, 경험과 생각을 많이 하는 만큼, 누군가를 위해 가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글은 100% 자기 콘텐츠이며 자기 브랜드이다.


자기 브랜드라는 표현이 유행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여전히 '어떻게 자신을 브랜딩 할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인의 콘텐츠로 쓰는 글은 그 자체로 자기 브랜드가 된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책을 출간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내 깜냥으로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출간은 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경험과 정리된 생각과 인사이트가 녹아들어 있는 글은 충분히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는 브랜드이다. 누군가가 내 글을 접하고 저자를 확인했을 때 나라는 것을 알고 인식한다면 그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실제로 내 글 역시 여러 채널을 통해 알려지면서 지인들이 우연히 내 글을 접하고 연락 주기도 하고, 여러 웹진이나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곳에서 재발행 제의를 해오고 있다. 

글은 100% 자기 콘텐츠이며 자기 브랜드이다

글쓰기의 장점은 이런 자기 콘텐츠와 자기 브랜드가 축적이 된다는 점이다. 글은 어떤 점에서는 영원하다. 본인이 지울 수는 있어도 이미 퍼져나간 글을 모두 없앨 수는 없다. 나의 글 목록에 계속해서 남게 되며 그것이 축적되면서 어느 순간 그 글들이 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글 하나만 놓고 보면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의 여러 글을 읽게 되면 비로소 글쓴이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작가 본인도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다가도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아, 내가 이런 방향으로 글을 쓰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자기 브랜드가 되는 과정이다.


글을 쓸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욕심이다.


아직도 내 '작가의 서랍'에서 완성되지 않은 글들이 수두룩하다. 언젠가는 완성하고 싶은 글도 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언젠가 지워질 글들도 있다. 그런 글들은 처음에는 '와 이거 정말 좋은 글감인데?'라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아 이런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하고 멈추게 되는 글들이다. 이 경우는 대개 좋은 글감인 것은 분명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 욕심이 들어가게 된 경우이다. 욕심이 들어가면 무리하게 내 주장을 하게 된다. 특정 대상에게 가르치려는 꼰대 마인드가 들어가거나 과정과 상관없이 결론을 이미 내 마음속으로 내리고 써 내려가는 글이 된다. 이때는 절반 정도 글을 쓰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면 전혀 엉뚱한 글이 되어 버린 걸 발견하고는 글쓰기를 멈추게 된다. 


글쓰기에는 나의 생각이 들어간다. 때문에 나의 생각과 나의 욕심을 분간해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 가끔은 나의 생각을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적정선에서 이야기하고 나머지 판단은 독자분들에게 맡기는 방법을 사용한다. 아니면 썼던 글을 다 지우고 글감을 떠올렸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쓰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안되면 그 경우는 아쉽지만 발행할 수 없는 글이 되고 만다.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글감이 언제까지 떠오를까?'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글감이 샘솟듯이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올 것 같다. 우선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기보다는 지금의 글감을 나만의 글로 잘 담아낼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겠다. 나의 부족한 글을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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