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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이 할무니 Nov 28. 2021

집냥이 람쥐의 첫 달

람쥐와 보우네 - 다묘 가정의 시작, 람쥐 (4)

* 최근 '람쥐와 보우'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면서 글 업데이트가 좀 늦었습니다.


엄마와 코인사


엄마는 평소처럼 청소를 하면서 오며 가며 람쥐한테 말을 걸고 손가락을 내밀어 본다. 그런데 갑자기 람쥐가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엄마 손가락 냄새를 잠시 맡고 다시 캣타워 안쪽 깊숙이 몸을 눕힌다.


입양 후 만 8개월이 되기 이틀 전(2021년 11월 25일)에 람쥐는 그렇게 처음으로 엄마의 손가락 냄새를 맡았다. 람쥐가 엄마를 위해 준비한 입양 8개월 기념 선물이었을까?


코 인사만 놓고 보면 8개월은 좀 너무 오랜 걸린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 람쥐의 모습에 (람쥐가 들으면 많이 억울할 일이지만) 엄마도 우리 애는 참 적응이 느리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간의 기록을 찾아보던 엄마는 람쥐한테 괜스레 미안해진다. '8개월 만의 코인사'라는 짧은 문장이 담지 못한 람쥐의 이야기가 엄마의 기억 속에도 많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입양 후 밤이 되어야 나오던 람쥐를 관찰하기 위해 시작한 몰래카메라, 그리고 촬영된 영상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에 지난밤 소식을 올리는 일상이 이어지면서, 인스타그램(@larmgee.bow)에는 그간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소중한 기억의 보물 창고 덕에 엄마는 새삼 람쥐가 얼마나 용기 내주었는지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본다.


첫째 주


람쥐는 첫날부터 부지런히 집안을 탐색했다. 화분을 엎고 낯선 사람(엄마)과 마주쳐서 나름 놀랬을 법도 하지만, 람쥐는 그 밤 내내 씩씩하게 거실을 돌아다녔다. 결국에는 사람 손이 닿지 않을 장소, 냉장고 후면을 찾아내어 아지트 생활을 시작한 람쥐.


매일 밤, 아지트에서 하루 종일 찌그러져 있던 람쥐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내는 우당탕 소리(나중에는 능숙해진 람쥐가 아무런 소음도 없이 아지트에서 나왔다), 싱크대 위에서 거실로 내려오거나 싱크대의 작은 창문을 구경하기 위해 다시 뛰어오르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약한 조명이 비추는 거실을 구석구석 살피던 람쥐는 사료를 오도독 오도독 거리며 먹거나 물을 챱챱챱 먹고, 때론 몸을 쭉쭉 늘여서 기지개를 펴기도 한다. 건물 복도에서 사람 발소리가 들리면 긴장된 얼굴로 거실 안쪽으로 달아났다가, 졸음이 몰려오면 잠시 눈을 붙이러 다시 좁디좁은 아지트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이때만 해도 람쥐가 한밤중에 나와 해뜨기 전에 아지트로 들어갔으니, 하루의 대부분을 냉장고 후면에서 쭈그린 채로 엄마가 집안일하면서 내는 달그락 소리가 궁금했을 터이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르자 변화가 보였다. 엄마 집에 한결 익숙해져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낯선 공간에서 홀로 보내는 밤 시간이 길고 외로웠을까? 가끔이지만, 람쥐가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참고로, 람쥐가 싱크대 아래 발매트 위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이내 뒹굴뒹굴 구르기까지 한 것도 그즈음이다.

2021년 4월 2일 - 람쥐가 처음 울던 날 (입양 6일 차)


둘째 주


2021년 4월 5일 - 람쥐의 구슬픈 울음소리 (입양 9일 차)


람쥐 소식을 접한 한 인친님이 사냥놀이를 추천해주셨다. 일정한 시간대에 사냥놀이를 하면서 사람과 교감을 하면, 나중에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오히려 사냥놀이를 해달라고 먼저 다가올 수도 있다고. 그래서 준비한 엄마의 깜짝 사냥놀이 이벤트. 입양 9일 차에 람쥐는 냥생 처음으로 사람과 사냥놀이를 하게 된다.


엄마는 람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방문을 살짝만 열어두기로 하고 방문 앞에 의자를 놓는다. 의자 밑을 지나 람쥐가 잘 쉬던 전기방석 위로 낚싯대를 늘어뜨리고, 람쥐 밥상은 방석 위쪽에 차려둔다. 준비를 마친 엄마는 방에 자러 들어간 척, 방문 닫는 소리를 크게 내고 다시 슬그머니 문을 연 후 손을 내밀어 낚싯대 손잡이를 당겨 쥔다. 그리고 방문 뒤에 쪼그리고 앉아 람쥐가 아지트에서 나와 거실로 내려오길 기다리는 엄마.


람쥐가 문틈 너머에 앉아있는 엄마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한껏 몸을 구부린 불편한 자세였기에, 사실 엄마는 람쥐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낚싯대의 깃털을 발로 잡아채려는 람쥐의 발동작을 본 엄마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낚싯대를 흔들었다.


그런데 똑똑한 람쥐가 살짝 열린 문틈을 놓칠 리가 없다. 나풀거리는 깃털과 가느다란 철사로 만들어진 낚싯대가 흔들거리는 문틈, 그리고 문틈 뒤로 보이는 검은 형체. 뚫어지게 문틈을 들여다보던 람쥐는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민망한 엄마는 람쥐야 이름을 불러보지만... 람쥐는, 걸음아 날 살려라, 혼비백산해서 아지트로 숨어 버렸다.

2021년 4월 5일 - 람쥐와 엄마의 첫 사냥놀이 (입양 9일 차)

입양 첫날 이후 엄마와 마주친 적도 없던 람쥐한테 조금은 이른 시도이기도 했다. 이후 한 달이 더 지나서, 곤충 먹잇감이 펄럭이는 소리가 제법인 슈퍼롱 낚싯대를 또 다른 인친님이 소개해주시면서 비로소 엄마와 제대로 된 사냥놀이를 할 수 있었다.


첫 사냥놀이 이후, 람쥐는 방문 너머에 사람이 안 자고 있다는 사실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람쥐와 함께 지내면서 츄르도 주고 친해져 보라는 인친님들 댓글이 이어졌다. 문틈이 살짝만 열려있어도 도망가는 녀석이라 아직 츄르 주기는 무리였지만, 이번에는 방문을 매일 조금씩 더 열어 놓기로 한다. 첫날은 아주 미세하게 열어두고 다음날은 조금 더, 그다음 날 조금 더 열어 두는 방식으로. 며칠 뒤에는 주먹 하나만큼 문틈이 커져 있을 것이다.


첫날, 람쥐는 한참을 (20분간 ㄷㄷ) 꼼짝도 하지 않고 미세한 문틈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별일이 없자 그제야 뒹굴뒹굴 눕방을 보여주었다. 매일 커져가는 문틈이 신경 쓰이는 람쥐가 거실로 나와 놀지 못하는 것 같으면 방문을 닫아 놓았다가 나중에 슬그머니 열어 놓는 방식으로,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람쥐가 인기척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방문 열어놓기 연습의 효과였을까, 둘째 주부터는 람쥐가 조금 더 용기를 내주었다. 엄마가 방으로 자러 들어가면 한참 후에나 놀러 나오던 람쥐가 이젠 엄마가 욕실에 있는 동안 나와서 아지트 앞에 차려 놓은 애피타이저 사료(혹시 엄마가 자러 들어가기 전에 배고프면 나와서 먹으라고 준비한 접시 하나)를 먹기 시작했다. 다음날은 애피타이저 사료로는 부족했는지 거실까지 내려와 사료와 습식을 먹은 람쥐.


(고양이는 4~5시간 간격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데, 람쥐는 이때 하루 종일 굶다가 밤에 나와서 하루치 식사를 몰아서 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방문 너머 인기척이 궁금해진 람쥐가 갑자기 엄마방을 깜짝 방문했다. 잠들기 전에 문틈 사이로 람쥐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던 엄마는 람쥐의 깜짝 방문에 놀라, 문틈으로 불쑥 들이민, 람쥐의 귀여운 옆모습을 촬영하지 못했다. 다행히 거실에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엄마방으로 들어가는 람쥐와 놀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담겼다.  

2021년 4월 9일 - 엄마방에 깜짝 방문하는 람쥐 (입양 13일 차)


셋째 주


셋째 주가 시작되자 더 대담해진 람쥐가 한낮에 아지트에서 나왔다.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내는 모래 긁는 소리가 궁금했을까, 다른 고양이가 사는지 확인하고 싶었을까. 아지트 입구에 서서 거실에서 람쥐 화장실을 청소하는 엄마를 내려다보는 람쥐. 이내 아지트로 다시 들어갔지만 잠시나마 나와서 엄마와 눈인사를 나눈 뜻밖의 하루이다.


람쥐가 처음에는 밤늦게 나와서 해뜨기 전에 아지트로 들어갔으니, 한 밤의 몇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아지트에서 웅크리고 있던 셈이다. 입양 후 일주일이 돼가자 어스름 밝아오는 새벽까지 놀다가 아지트로 들어가더니 셋째 주에는 해가 다 뜬 후에도 거실에 남아 밝은 아침 풍경을 즐기다가 아지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셋째 주가 끝나갈 즈음, 람쥐의 구슬픈 울음이 계속되고 급기야 싱크대 작은 창문의 방묘창을 뜯기 시작하자, 엄마는 람쥐가 캣티오에 나가 놀 수 있도록 거실의 큰 창문을 열어주기로 한다. 그동안은 거실 공간에 먼저 익숙해져야 했고, 캣티오에 부착한 나무 선반의 방수를 위해서 약품을 발라 놓은 터라 냄새가 빠지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람쥐가 창문 구경을 하면서 외로움을 잊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얼마간 구슬픈 울음소리도 멈추었고 초저녁과 아침에도 아지트에서 나와 놀기 시작했으니, 고양이들에게 창문 구경은 사람의 'TV'라는 말이 맞는 듯싶다.


람쥐가 창문 구경에 빠져서 낮에도 아지트에서 나오기 시작하자, 엄마는 수시로 람쥐를 거실로 불러내려고 애를 썼다. 람쥐는 마음이 내키면 바로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고양이랑 몇 달을 지내보니, 이 녀석들은 낮에 잠을 '차~암' 많이 잔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좁은 아지트에 구겨져 있을 람쥐가 안쓰러워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려 했으니, 람쥐의 단잠을 너무 자주 방해했던 건 아닌지.


2021년 4월 17일 - 첫 아침 나들이 (입양 21일 차)

깨방정 람쥐


창문 구경이 시작된 이후, 거실에 나와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 외에도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람쥐가 좋아하는 전기방석 위에 장난감을 놓아두어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는데, 이때부터 장난감 특히 오뎅꼬치를 만나면 온 거실을 돌아다니며 깨방정을 부렸다.

2021년 4월 17일 - 오뎅꼬치와 한 판 승부 (입양 21일 차)


고양이 나이 2세이면 사람 나이로 24세 장성한 청년이라고 한다. 제법 성숙해진 고양이가 '아깽이 파워'를 잃어가면서 움직임도 줄고 더 이상 장난감에 반응하지 않아 서운하다는 집사님들이 계시다. 그래서 람쥐의 장난감 사랑은 더욱 의외의 모습이다.


산에서는 나뭇가지나 풀잎을 굴리고 던지며 놀았을 람쥐. 람쥐가 산에만 있었다면 다 큰 아기, 우리 람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고양이들은 작은 변화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까지 아파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는데, 조심성 많은 람쥐는 의외로 입양 후 (기생충이 발견되어 약 먹느라 홍역을 치른 것 외에는) 잔병 치례 하나 없었다. 엄마와 단 둘이 지내면서 그리고 나중에 보우가 입양 오면서, 람쥐 입장에서는 냥생 최대의 위기와 격변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이 여린 람쥐 안에 깨발랄한 람쥐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 달 즈음


한동안 창문 구경과 장난감 사랑에 푹 빠진 람쥐는 귀여운 깨방정으로 엄마를 기쁘게 해 주었고, 구슬픈 울음소리 대신에 밝은 노랫소리로 (아마도 엄마가 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잠이 들면 가끔 엄마방에 들어와 몇 분 동안 머물다 나가기도 하고, 엄마방에 불이 환하게 켜있는 채로 방문이 제법 많이 열려있어도 방석 위에서 뒹굴뒹굴 눕방을 했다.


2021년 4월 17일 - 엄마가 자는지 확인하는 귀여운 람쥐 목소리 (입양 21일 차)


2021년 4월 23일 - 엄마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도 방석 위에서 뒹굴뒹굴 눕방 하는 람쥐 (입양 27일 차)


지금도 람쥐가 웃음 유발 포인트라고 말씀해주시는 인친님들도 계시는데, 람쥐한테서 개그냥의 소질을 발견한 시기도 이 즈음이다. 천천히 집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람쥐 딴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겠지만 지켜보는 엄마는 시트콤을 보는 듯, 개그냥의 몸개그를 보는 듯, 저절로 웃음이 났다.

2021년 4월 20일 - 아지트로 안 가고 캣타워에서 쉬다가, 창문 닫으러 온 엄마에 놀라 혼비백산하는 람쥐 (입양 24일 차)


하지만 람쥐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창문 구경의 약효가 떨어졌는지, 장난감을 신나게 가지고 놀아도 온 밤을 홀로 보내는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지, (보우와의 묘연이 여러 번 엇갈리면서) 한동안 람쥐가 혼자 지내야 했기에 엄마의 고민이 깊어졌다.


2021년 11월 28일



[ 람쥐의 집냥이 도전기 ]

D+6    람쥐의 서글픈 울음소리 (보우 입양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D+7    거실에서 처음으로 꾸벅꾸벅, 뒹굴뒹굴

D+9    첫 사냥놀이 후 혼비백산

D+12  아지트 앞 사료 냠냠 (엄마가 거실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와서 먹음)

D+13  엄마방 깜짝 방문

D+16  화장실 청소 소리가 궁금해서 낮에 나와본 람쥐, 엄마와 첫 눈인사

D+18  해가 뜬 아침 풍경을 즐기고 아지트로 자러 가는 람쥐

D+20  첫 저녁 거실 나들이 (해진 후 풍경 구경)

D+21  첫 아침 거실 나들이 (아침 풍경 구경)

D+21  첫 장난감 놀이 (오뎅꼬치와 한판 승부, 약 20분간)

D+21  엄마가 자는지 확인하는 귀여운 목소리

D+24  캣타워에서 쉬다가 놀라서 혼비백산하는 개그냥

D+27  엄마방에 불이 켜져 있는데도 그 앞의 방석에서 눕방

D+28  다시 시작된 서글픈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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