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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장장 Jun 22. 2023

조선시대 카드깡, 환 돌리기

세종 일기

1443년 추수를 마친 가을인데도 평안도 창고에는 식량이 모자란다. 부족한 곡식을 하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가져오는데, 운송하는 길이 험해서 배로 운송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날씨가 안 좋으면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기에 이 방법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에만, 평안도로 가던 배 65척이 파손됐고 물에 빠진 군인 4명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인구가 늘어나니, 소비하는 양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서 국경은 옷과 생필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전부인 사람이 부지기 수다. 이 부분을 간파하고 있는 장사꾼(興利人 홍리인)들이 옷과 생필품을 가지고 국경 마을을 몰래 돌아다니며 곡식과 바꿔간다. 잡상인은 바꾼 곡식을 국경 인근 관청에 주고 확인증을 받아서 서울로 돌아오면, 다시 쌀로 바꿔준다.


장사꾼은 이 과정에서 운송비를 들이지 않고 큰 차익을 얻는다. 나라에서 곡식을 바꿔주는 이 제도는 국경까지 쌀을 운반하기 힘들어서 만든 특별한 제도인데, 장사꾼이 선한 목적으로 만든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오래전 태종 때도 이런 장사꾼이 있었고, 최근에는 중국 상인이 옷감을 가져와서 좁쌀로 바꿔 가서 열 배나 되는 차익을 남긴다는 소문도 있다.


결론적으로 나라에서 얻은 이익은 없는데, 장사꾼은 국경에 있는 쌀을 몰래 사서 다시 파는 불법적인 매매로 이익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불법거래를 환(換) 돌리기라고 부르는데, 환은 나라에서 빌린 곡식인 환자곡을 한 글자로 줄여 부르는 말이다. 환 돌리기는 백성이 나라에서 빌린 곡식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니, 빚으로 빚 갚기 또는 빚 돌려 막기와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상인들이 카드 깡을 부추기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달콤한 말로 꾀어서 사게 하니, 무지한 백성은 빚이 계속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결국 백성은 가진 것을 모두 소비하고 다음 해 추수 때 나라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나라는 굶어 죽지 않도록 또 곡식을 빌려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결과, 국경의 창고는 아무리 채워도 텅 빈 상태가 계속된다.


내가 상인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다고 환 돌리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국경과 산속 마을에 사는 백성이 옷과 생필품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다 보니, 무턱대고 금지할 수는 없다. 나도 신하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내 힘만으로 문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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